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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임진아·황한나·정가희 ① “너무 행복하고…행복해요”

[Pair Play 인터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임진아·황한나·정가희

입력 2021-01-04 18:00 | 신문게재 2021-01-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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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정영주(오른쪽부터),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 막달레나 임진아와 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그 등장부터 강렬하다. 검은 의상을 차려 입은 열 캐릭터들이 플라멩코(Flamenco) 리듬에 맞춰 사파테아도(Zapateado, 반복되는 스텝과 회전을 특징으로 하는 발구름)와 팔라마(Palma, 12박자가 기본인 손뼉리듬)로 무장하고 무대를 런웨이하듯 돈다.

2018년 등장부터 센세이션했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1월 22~3월 14일 정동극장)가 3년 만에 돌아온다. 남성 위주의 서사가 주류를 이루면서 여자 캐릭터들은 남자 캐릭터들 성장의 밑거름이 되거나 각성의 발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한국 뮤지컬계에 10명의 여자 배우들로만 꾸리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등장은 그야 말로 파격이었다.


◇18명의 배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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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배우 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하는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한국 뮤지컬 역사 60년 동안 여자를 위한 공연이 아예 없었다는 게 참…하지만 그 60년의 첫 작품이 ‘살짜기 옵서예’였어요. 여성의 사랑과 모랄에 대한 이야기죠.”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로 제작자로 변신하는 배우 정영주는 “한국뮤지컬 60년 역사에 조화와 균형을 맞출 여자얘기가 없다는 건 제작자들, 작가와 연출 등 창작진들이 게을렀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때늦은 제작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결국은 사람 공부예요. 1998년부터 극작을 전공하기도 했는데 공연에 관련된 어떤 공부든 결국 ‘사람에 대한 관찰’이었어요. 제작자든, 연출이든, 작가든. 뮤지컬이 상업예술이다 보니 그간 너무 편협한 공부들을 해왔고 작품 선정 기준도 편협했죠. 고민 보다는 일찍 타협하고 쉬운 방법을 택하고….”

이렇게 출사표를 던진 정영주의 뮤지컬 제작자 데뷔작 ‘베르나르다 알바’는 프랑코의 군사독재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에스파냐의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유작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베르나르다 알바’는 현실적으로 돈이 되는 공연은 아니에요.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면 진즉에 포기했을, 집만 안내놔도 다행인 작품이죠. 초연에는 우란문화재단이, 이번엔 정동극장이 함께 해주셔서 할 수 있는 공연이에요. 결정적으로 배우들이 마음을 먹어주지 않으면 못가는 공연이죠.”

이렇게 전한 정영주는 “현실적으로 제작환경도, 개런티도 대단한 작품이나 톱 남자 배우들을 기준으로 하면 열악한 수준이지만 누구 하나 토 달지 않고 함께 해준 배우들의 힘으로 가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한마음 한뜻으로 18명의 배우들이 모여 함께 가는 중”이라는 정영주의 전언처럼 초연 배우 중 합류를 확정했지만 경력 확장 기회를 얻은 앙구스티아스 정인지, 일신상의 문제로 함께 하지 못하게 된 막달레나 백은혜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빠짐 없이 흔쾌히 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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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2018년 초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DB, 우란문화재단 제공)

 

뮤지컬 ‘씨유왓아이워너씨’로도 잘 알려진 마이클 존 라키우사가 대본·가사·음악을 꾸린 작품으로 한국 프로덕션은 ‘시라노’ ‘살짜기 옵서예’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의 구스타보 자작과 플라멩코 안무가 이혜정, ‘마마돈크라이’ ‘록키호러쇼’ ‘에드거 앨런 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의 김성수 음악감독이 함께 꾸려 2018년 초연됐다. 이번 재연은 초연 당시 조연출이었던 연태흠 연출이 함께 한다. 

 

둘째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으로 집안 내 최고 권좌에 오른 미망인 베르나르다 알바(정영주·이소정,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각자의 방식으로 폭압적인 그녀에 맞서는 다섯 명의 딸 앙구스티아스(김려원·최유하), 막달레나(임진아·황하나), 아멜리아(김환희·정가희), 마르띠리오(전성민·김국희), 아델라(오소연·김히어라)의 이야기다.

더불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알바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황석정·강애심), 충직하지만 묘하게 갈등을 주도하는 집사 폰시아(이영미·한지연), 베르나르다 일가에 대한 제3의 시선과 적절한 간섭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하녀와 동네사람들(이진경), 어린하녀(이상아) 등이 또 다른 갈등과 이야기를 꾸려간다.

당시 공연계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 10명이 함께 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전회차 매진행보를 이어가며 사랑받았다. 여성 서사극의 가능성을 입증한 ‘베르나르다 알바’로 정영주는 2019년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임진아·황한나·정가희 이구동성 ‘베르나르다 알바’라면 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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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1 경쟁률의 오디션에서 발탁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왼쪽부터), 막달레나 임진아·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정말 ‘베르나르다 알바’라면 뭔들이었어요. 무대 크루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작품이었죠.”


다섯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 5명을 뽑는데 지원자는 500명을 넘어섰던 오디션에서 막달레나로 발탁된 임진아는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뭔들”이라고 표현했다.

“초연을 보면서 여자들 이야기, 여자들만 나오는 뮤지컬도 관객석이 꽉 차는구나…충격이었고 기뻤어요. 이 작품이 다시 공연된다는 걸 오디션 마감 당일에야 알았어요. 부랴부랴 (백)은혜한테 조언을 받아 폰시아 역할에 지원했죠. 오디션 당시에는 막달레나 역할을 뽑지 않았었고 (정)영주 언니의 딸 역할을 하기엔 제 나이가 걸렸거든요.”

그리곤 박장대소를 하는 임진아는 “막달레나를 연기해 줄 수 있냐?”는 정영주의 전화에 “언니 뭔들요. 무대 크루라도 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고 너무 좋은 배우들만 모여 있고…지금도 계속 놀라요. 내가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임진아 뿐 아니다. 174cm의 큰 키, 벨팅(진성 고음)을 많이 쓰는 소리 등으로 “항상 맡을 수 있는 역할에 한계를 느끼던” 황한나는 앙구스티아스로 오디션을 봤지만 막달레나 역할을 받아 들고는 “딱 내 역할이었고 마냥 기뻤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노래, 연기, 움직임 어느 하나만 누락돼도 너무 힘든 작품이에요. ‘베르나르다 알바’로 함께 하는 배우들은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각 요소 간) 밸런스들도 너무 잘 맞아요. 이 대단한 배우들 사이에, 제가 서 있다는 게 영광스러워요.”

황한나의 말에 정가희 역시 “마냥 행복하다”며 “아델라 역으로 오디션을 보긴 했지만 주어지면 뭐든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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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2018년 초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DB, 우란문화재단 제공)

 

“아멜리아를 제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저에겐 생소한 캐릭터였거든요. 고민 끝에 아델라 역으로 오디션을 준비했지만 ‘내가 열심히 하면 어울리는 걸 선택해주시겠지’ 싶었어요. ‘베르나르다 알바를 함께 하면 좋겠다’였지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었거든요.”

그렇게 오디션에 임했던 정가희는 스스로도 몰랐던 소리를 찾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2차 오디션 막바지쯤 김성수 음악감독이 아멜리아 넘버를 불러주기를 요청했을 때 “될까 싶었다”는 정가희는 “막상 해보니 소리가 나더라”며 신기해했다.

“아멜리아의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더라고요. 부르고 나서 저도 모르게 ‘어? 나네’ 했어요. 진짜 기분이 좋고 감사하고….”


◇연습실의 긍정적 괴리들 “좀 쉬라고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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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배우 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하는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좀 쉬라고 이것들아!”

절실하게 원했던 작품인 만큼 오전부터 밤까지 18명이 모여 있는 연습실의 온도는 그야 말로 끓어 넘칠 지경이다. 정영주의 비유처럼 “우리 (연태흠) 연출은 아침에 뽀송뽀송 통통하고 뽀얗게 만나는데 밤쯤 되면 얼굴이 반으로 줄어서 갈 정도다.”.

“쉬는 시간이 없어요. 쉬라고 하면 저마다 플라멩코 스텝을 밟고 있고 노래 연습을 하고…귀에 피가 날 것 같아요.”

까르르거리며 연습실 분위기를 전한 정가희의 “교복에 체육복 바지 입은 애들만 모여 있는 느낌”이라는 말에 황한나는 “누가 한 마디 던지면 여기저기서 반응하면서 까르르 웃고 너무 재밌다”고 동의를 표했다. 이어 임진아는 “쉬는 시간에 쉬질 않는다. 옆에서 추면 또 같이 추게 된다”고 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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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오디션에서 발탁된 막달레나 임진아(사진=이철준 기자)

 

“쉬는 시간에 한참 플라멩코 스텝을 연습하고 있는데 영주 언니가 소리를 질렀어요. ‘쉬라고 이것들아!’ 연습에 정신이 팔려서 시간 가늠을 못하고 있었나 싶었죠. 후다닥 움직여 ‘저희 (연습대형으로) 줄 맞춰 섰다’ 했더니 영주 언니가 ‘아니 쉬라고! 좀 쉬라고!’ 성화를 하시기도 했어요.” 

 

임진아가 전한 에피소드에 정가희는 “그 와중에도 끄트머리에서 언니 세명은 또 ‘원투쓰리, 원투쓰리’ 하면서 춤 연습하고 있고…정말 웃음과 열정이 넘치는 연습실”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에 정영주는 “저 역시 덩달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플라멩코 슈즈는 그냥 서 있기도 힘들어요. 하물며 바닥을 콱콱 디디면서 해야 하다 보니 팔, 다리, 허리 어디 한 군데 안아픈 데가 없어요. 엉덩이도 짝짝이가 될 지경이죠. 그런데도 딸들이 너무 열심히 하니 저도 더 힘을 내게 돼요. 생애 처음으로 양말의 엄지발가락이 뚫어질 정도였죠. 누구 하나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배우들 스스로가 연습실에 들어오면 그 분위기가 장착돼요. 다들 미간이 딱 서 있죠. 예민하고 섬세하고 날이 서 있달까요. 공격적인 게 아니라 서로 조화를 맞추고 에너지를 쌓아가려는 결연한 의지죠.”


◇행복하고 행복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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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오디션에서 발탁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사진=이철준 기자)

 

“다들 ‘여자 18명이 모여 있는데 분위기는 험악하지 않냐?’고 물어요. 도대체 그런 선입견과 편견은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전한 정영주는 “초연 배우들, 처음 하는 배우들이 섞이면서 생기는 긍정적인 괴리들이 있다. 서로 타협하고 새로운 걸 실험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걸 지켜보는 일이 너무 재밌다”고 덧붙였다.

“분명 속에 부글부글 끓는 경쟁의식, 질투가 있어요. 하다 못해 엄마 역할인 제가 어느 딸한테 애정을 주면 다른 딸이 와서 들러붙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선배 정영주, 후배 누구여서가 아니라 이미 캐릭터를 입고 있어서죠. 그런 에너지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원동력이 되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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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오디션에서 발탁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막달레나 역의 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이어 정영주는 “같은 역할을 하는 두 배우가 사건, 캐릭터, 관계성, 갈등구조 해결에 대해 맘껏 풀어놓고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실험을 한다. 서로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동의 목적으로 생기는 에너지가 감사하게도 긍정적으로 잘 흘러가고 있다”며 “그 중 좋은 설정이나 디테일은 서로 공유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들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황한나는 “패밀리십”이라고 표현했다.

“초연 배우들이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극에 대해 저희 보다 훨씬 많이, 정확하게 알고 계시니 어려운 동작 하나, 감정까지 (새로 합류한) 저희들이 걱정하기도 전에 끌어주는 느낌이죠. 한 마음, 한뜻, 한 목소리로 열심히 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행복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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