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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불륜도 다 같은 불륜이 아니다! '내 남자의 여자'

[#OTT] 왓챠, '내 남자의 여자'를 다시 보며 느끼는 세상만사
친구의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김희애. 평생 희생하며 산 교수 아내 배종옥
'밥준표'로 불리며 우유부단한 남성상 연기한 김상중

입력 2022-11-02 18:30 | 신문게재 2022-11-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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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자의 여자2
왓챠에서 다시 볼 수 있는 ‘내 남자의 여자’는 지난 2007년 방송돼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제공=SBS)

 

내 편이 세상에 한명쯤 있다면 ‘잘 산 인생’일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적어도 화영(김희애)에게 어린 시절 친구 지수(배종옥)는 그런 존재였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였던 그는 남편이 사업 부도로 자살하자 졸지에 과부신세가 된다. 슬픔으로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건 지수 뿐이다.


엄마 없이 자란 지수는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가풍과 재력이 어마무시한 시댁의 멸시를 받으며 시집살이를 하다 이제 막 집안의 인정을 받으며 현모양처의 삶을 만끽 중이었다. 번듯한 대학 교수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하나 뿐인 아들의 사교육비를 충당하기도 허덕였지만 꾸밈없고 근면한 지수의 됨됨이를 알게 된 시부모는 생활비를 대주며 가족이란 울타리에 편입시킨다.

상처받은 영혼으로 한국에 온 화영은 모든 게 따분하다. 여전히 착하기만 한 지수는 자신의 김치까지 담궈주며 걱정하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건 친구의 남편 준표(김상중)다. 책만 파고 우유부단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멸시받던 지수를 끝까지 지킨 남자. 아들에게 헌신적이고 자신의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진 그는 남편으로서는 무뚝뚝하지만 한눈 팔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내남자의 여자
당시 SBS 연기대상의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하유미는 여자 조연상과 김병세와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제공=SBS)

그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 친구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연 바베큐 파티에 몸매가 드러나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타날 정도로 과감한 화영의 매력은 순종적이기만 한 아내 지수와는 다른, 간만에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수현 작가의 필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 남자의 여자’의 기본 설정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플롯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말은 가차 없다.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린 남자와 그에게서 되려 그가 도망쳐 온 가정을 꾸리려는 여자의 결말은 결국 1년도 안돼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바람 난 남녀의 결말은 구질구질 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어느 정도 칼칼한 청양고추인 줄 알고 씹었더니 그 200배가 넘는 부트졸로키아를 혀에 넣은 느낌일 정도로 결코 잊을 수 없는 매운맛이다. 

 

‘내 남자의 여자’가 주는 재미는 무엇보다 통쾌한 대사다. 극중 지수의 언니 은수(하유미)가 벌이는 화끈한 몸싸움에서 머리채를 잡아 끄는 건 애교수준. 마룻바닥에 패대기치고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격당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재미로는 불구경과 동급으로 치는 싸움구경이 몸에서 말로 이어지니 시청률이 치솟지 않을 리 만무다.

총 24부작의 대부분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다 36.8% 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찍었다. 화영이 자신의 제부와 키스하는 것을 목격한 은수가 “미국물 먹고 미국년 됐냐?”며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놓고 동네 마트에서 만난 화영을 창피주다가 “교양 좀 차리라”고 하자 “이게 내 교양”이라며 온 동네에 가정파괴범 커플임을 공고히 한다. 

 

이후에도 광기와 분노를 넘어 “세살 때 먹은 송편이 올라올 지경” “사랑이 사레들어 재채기 한다” “너 거짓말이 18단 이구나” 등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120% 채워주는 샤우팅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07년 방영 당시보다 2022년에 올라온 유튜브 댓글들이 더 화제다. “다른 건 몰라도 은수 같은 언니 한명 있었으면” “어렸을 때 엄마가 왜 이렇게 이 드라마를 시청하나 몰랐는데 결혼해 보니 꿀잼” “젊은 사람들이 뒤늦게 빠져버린 띵작” 등 그 인기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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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화에서부터 과감하게 불륜 사실이 들키며 시작한 이 작품은 김수현 작가의 단단하고 스피디한 필력을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사진제공=SBS)

 

연기 구멍 없는 배우들의 열연 역시 다시 봐도 매력적이다. 지적이고 당찬, 도시적 매력이 강했던 배종옥이 순수한 캐릭터를 이렇게나 잘 소화했던가 싶을 정도로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배우의 스펙트럼은 다시 한번 넓어졌다.

희대의 상간녀를 연기했지만 미움보다 동경심을 불러일으킨 김희애의 연기는 또 어떤가. 사랑보다 계산이 먼저였던 엄마, 친구의 남편과 사는 걸 알고는 득달같이 달려와 “술집여자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며 욕을 해댄 남동생(이훈) 사이에서 준표만이 구원자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평생 남자에게 돈을 댔었기에 준표가 들려준 월급봉투를 보고 누구보다 행복해 하고 삶은 감자에 예민한 그를 위해 남몰래 연습을 할 정도로 평범한 사랑을 갈구했지만 결국 ‘지수의 희생으로 완벽해 보였던 남자’임을 알고 돌아서는 여자.

부모의 유산도 사회적 지위도 내려놓고 사랑을 택했던 준표의 결말도 지리멸렬하다. 화영이 다시 미국으로 떠나자 주변 사람들은 “자식을 위해 살림을 합치라”고 조언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를 원했던 화영 몰래 정관 수술을 하고 이혼한 아내가 준 서류를 1년째 접수하지 않고 숨겨둘 정도로 두 여자를 기함하게 만들었던 그는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는다. 지수에게 “스무 번은 읽은 책 같은 남자”라는 말과 함께.

어른들의 말처럼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년이 그 년이지”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절감하는 마지막 엔딩 장면은 김상중만이 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서 ‘밥준표’로 살았을 정도로 매 장면에서 식사자리와 반찬투정, 끼니의 충실함을 역설했던 설정은 아마도 김수현 작가가 조롱하고픈 기성세대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김상중은 그 뻔뻔함과 구태의연한 몸짓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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