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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끝없는 경제성장, 그 뒤에 남겨진 인류 ‘자이언티즘’

[Book] 승자독식, 거인병 걸린 경제! 지속가능한 글로벌 경제를 위한 제언!

입력 2020-10-13 18:00 | 신문게재 2020-10-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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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빌딩으로 들어찬 도시. 이미지컷(AFP)

 

그리스로마제국은 권력과 위용을 자랑하며 거대한 건축물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피라미드, 파르테논신전, 콜로세움 등에 대해 2020년의 사람들은 그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위용’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난색을 표한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828m)지만 현재 건축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타워는 1km 높이를 자랑한다.

 

멀리 외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때 63빌딩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해 ‘인증샷’을 찍곤 했다. 하지만 현재 63빌딩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 5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제일 높은 롯데월드타워는 착공 전부터 제기되던 안전관리 부실과 각종 안전사고 등을 일으켰다.

 

경제학자 게르트 노엘스(Geert Noels)가 동명의 책에서 주장하는 의학적, 생물학적, 영양학적 ‘자이언티즘’(Giantism), 일명 거인증은 인류의 경제성장과도 닮았다. 과도한 성장호르몬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성장, 약화되는 근육과 심혈관계 및 근골격계 질환, 뇌하수체 종양 등을 일으키는 거인증은 꽤 오래도록 성장 강박, 몸집불리기에 집중했던 인류 경제의 원인과 현상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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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즘 |게르트 노엘스 지음(사진=탬)

매년 기업들은 ‘성장’ 규모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성장’ 강박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규모의 발전, 성장 불균형 등은 사회의 혼란과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   

 

책은 ‘자이언티즘이란 무엇인가’ ‘자이언티즘을 촉진하는 성장 호르몬’ ‘챔피언스리그 효과’ ‘궁지에 몰린 개인’ ‘사기꾼들’ ‘더 작게, 더 느리게, 보다 인간적으로’ ‘거인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10단계 제안’ 7개 장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정의와 역사적·사회적·현상적 증명들을 제시하는 책은 각 장 소제목만으로도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40년간의 금리인하, 점점 더 세금을 적게 내는 대기업, 월마트가 많아질수록 비만율도 증가한다, 사라지는 중산층, 거대 정부와 공감 능력의 축소, 도시가 커질수록 행복은 감소한다 등 소제목들만으로도 ‘자이언티즘’의 현상이자 폐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원칙은 ‘자율경쟁’이다. 하지만 승자독식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경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기업 및 자본만의 리그다. 책은 이를 유럽의 챔피언스리그에 빗댄다. 말뫼, 브뤼해, 글래스고, 포루투 등 낯선 이름들은 1970, 80년대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 진출국이자 팀이다. 

 

소규모 팀이나 나라가 맹활약을 펼치며 유럽의 타이틀을 거머쥐곤 했다. 베베런이 인터밀란을, 반테슬라흐가 아스날을 이기는 사례는 흔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같은 사례는 종적을 감췄는데 1992년 챔피언스리그 설립 후다. 

 

막대한 상금 배분 관련 규정들이 작은 클럽, 나라 등이 더 이상 경쟁에 나설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규정에 따라 챔피언스리그 참가 클럽과 그렇지 못한 클럽의 격차는 날로 커져간다. 우승팀은 엄청난 상금으로 훌륭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이익창출도 커져만 간다. 

 

저자 게르트 노엘스는 이 과정을 해운업계와 항공업계 등 인류경제의 ‘자이언티즘’에 빗대 그 문제점과 폐해를 짚는다. 거대 맥주회사가 지역 맥주를 죽이고 식문화가 획일화돼 가는가 하면 한 유통기업으로 인해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를 맞는다. 

 

한국에서도 그런 예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동네 작은 극장들은 사라지고 대기업 3사가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꼭짓점으로 수직계열화되고 있는 영화산업이 그렇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면서 동네 상점들은 폐점 일로를 걷고 있으며 도시재생, 새로운 문화 창출 등 다양한 개발요소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역 토착민들이 짐을 싸 오랜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대형 제약사로 인해 질병이 거대 사업화되기도 하는 데 주목하는 책은 항우울제, 수면제, 진통제 등을통한 전세계 제약시장을 논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 러시아, 유럽 등 강대국들의 무모한 치료제, 백신 개발 경쟁 역시 ‘자이언티즘’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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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인류 경제의 자이언티즘은 규모의 경제, 발전 불균형, 불공정 경제, 무한정 속도전 등으로 환경파괴, 인간성 말살, 개인의 가치 추락 등의 폐해를 야기했다. 더불어 대기오염, 고온화, 비만, 자살, 번아웃, 소외 및 고독, 개인주의 등의 심화를 불렀다. 인류멸망에 관련된 영화들을 보자. 당연하게도 극 중 정부 혹은 권력집단은 새로운 나라 혹은 세계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이들만을 특별 구조대상으로 리스트화한다.

책의 6, 7장은 현상 인식, 문제제기에 따른 대안이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글로벌경제를 위한 키워드로 ‘더 작게, 더 느리게, 보다 인간적으로’를 제시한다. 반창고나 찜질 수준으로는 뒤집을 수 없게 돼버린 거대화 추구 경제 흐름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분산과 축소, 도시국가와 소국가를 제시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은 인간의 본성, 사회, 생태, 경제 등 인류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경제로의 전환, 거인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10단계 제안을 담는다. ‘성장’은 더 이상 자본주의, 경제 성장의 ‘만능키’가 아니다. “더 이상 성장 촉진 약물과 부채에 대한 중독으로 자극을 가하지 않고 인간 본성의 흐름에 맞추는 것”이 지속가능한 미래이며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 사회라 주장하는 저자는 “사회, 생태, 경제 등 인류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경제”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소수의 엘리트나 재능이 막강한 권력을 지닌 거대 구조를 만들어 힘을 남용하는 소수 독점 사회라고 시스템 전체, 경제주의 전체를 거부하라는 선동이 아니다. 문제를 직시하자는 제안이며 그 첫 발은 결국 ‘환부찾기’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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