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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시대 꿰뚫고 국운 밝히는 힘… 국민이 절로 동행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헨리 키신저 리더십

입력 2023-07-08 07:00 | 신문게재 2023-07-0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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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리더십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전략적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이들이 역사의 과도기에 국가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고, 새로운 전망을 열고, 세계의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좋은 리더란 국민의 마음 속에 동행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용기와 인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에서 얻은 직관을 바탕으로 정치적·경제적·지리적·기술적·심리적 통찰을 보여주어야 현명한 리더라도 말했다.



◇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 : 겸손의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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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투옥되었다가 1945년 5월에 복권된 아데나워는 전후 독일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데 총력을 다했다. 그는 어쩌면 영원할 지 모를 조국의 분단을 받아들였다. 나치의 잘못을 시인하고 분할 통치를 포함해 어떠한 불이익도 받아들이는, 겸손하고도 대담한 길을 택했다. 배상을 위해 산업 기반의 해체를 감내했고, 새로운 유럽 체제에서 독일이 ‘신뢰받는 동료국가’로 자리잡을 길을 모색했다.

그는 ‘일시적인 굴종’을 감내했다. ‘연합국 총리’라는 비판 속에서도 “신뢰는 천천히 조금씩만 회복할 수 있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스탈린의 공산주의로부터 독일과 유럽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논리로 신뢰를 쌓아갔다. 재무장을 추진하되 군국주의 부활가지는 가지 않았다. 이스라엘과도 배상을 논의해 1953년 독일 하원의 배상법 통과도 관철시켰다.

아데나워는 특히 독일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독일 통일은 퇴임 후 20년 넘게 지난 뒤 브란트와 슈미트, 콜 등 후배들을 통해 실현되었다. 저자는 “위대한 리더십은 찰나의 환희 보다 장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며 “아데나워는 후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며 존경을 표했다.


◇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 의지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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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지도자에서 제5공화국의 건설자이자 대통령이 되었다. 독일을 경멸하면서도 아데나워 총리와 우호조약을 체결해 유럽에 평화와 공존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프랑스 정신의 부활’을 목표로, 연합국과 동등한 ‘강력한 국가 프랑스’를 재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프랑스의 역사적 정체성을 사수하려던 그의 노력 덕분에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부상했다.

그는 벼락같이 개혁을 추진했다. 출산율을 높이려 가족수당을 도입했고 여성에게 최초로 투표권을 부여했다. 사회보장제도를 극적으로 확대했고, 공화정 체제 하에서 강력한 행정부를 구상했다. 경제와 노동 관련 부처를 공산당에 맡기는 파격적인 혁명을 추진했다. 모든 식민지 주민에게도 보통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이른바 ‘프랑스 공동체’를 도모했다.

저자는 “드골보다 더 탁월한 직감을 뽐낸 이는 적어도 20세기 지도자 가운데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드골은 프랑스에 잃어버린 안정성을 되찾아 주고, 국민들에게 사라진 영광을 되찾아 주려 했다고 회고했다. 처칠이 영국 리더십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드골의 리더십은 인품과 일련의 특별한 원칙의 독특한 표현이었다고 평가했다.


◇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 평형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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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은 사임을 요구받는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었지만 냉전의 정점에서 기울어 가는 세게를 재편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 마침표를 찍었고, 중국의 문을 열어 삼각 구도를 도입함으로써 소련에 큰 불이익을 안겼다. 저자는 “닉슨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전례 없는 동요 속에 취임해 ‘국익’이라는 지정학적 개념을 채택하고 외교정책을 혁신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닉슨은 잠재적 전환점이나 임박한 주요 결정을 구성하는 요인에 늘 주목했다. 그는 미국이 ‘자유’라는 대의를 수호하면서 특히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저자는 “책임자의 면모에 열중한 나머지 때로는 기록을 윤색하려 들기까지 했다는 사실로도, 그의 정부가 일군 성과들을 부정할 순 없다”고 감쌌다.

그는 적대 세력에 ‘투 트랙’을 강조했다. 미국의 국력과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협상’을 통해 소련과 중국 같은 적대 세력과 끊임없이 대화를 유지했다. 강대국 간의 긴장완화를 뜻하는 ‘데탕트’도 그런 노력의 결과였다. 저자는 작금의 미국 대외 정책에도 현실주의적이며 창의적이었던 닉슨의 유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 초월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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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다트가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암살당한 것을 아쉬워했다. 특히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 폄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첨예한 지역 분쟁과 외교적 교착 속에서도 전례 없는 계획과 대담한 실행력으로 평화의 비전을 펼쳐 보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범 아랍 민족주의도 비동맹주의도 아닌, 국권 및 미국과의 협력을 우선시한 평화론자였다고 추켜 세웠다.

전임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 국유화 등으로 아랍권의 단결을 강조하고 그 맹주가 되길 희망했던 데 반해 사다트는 냉정하게 ‘국익’을 우선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집트를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시켜 갔다.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민주적 권리를 강조했다. 나중에는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해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렵게 얻어낸 평화는 오히려 그를 무너뜨렸다. 그가 1981년 10월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에 의해 저격당한 이후 아랍세계는 극단주의 정권이 압도하게 된다. 그는 이집트가 중동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를 꿈꿨다. 이집트가 독립적이며 평화로운 이슬람 국가로 거듭나길 바랐다. 저자는 “사다트는 평화를 위해 살았으며 그 원칙을 위해 순교했다”고 애도했다.


◇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 우월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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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는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31세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1959년 총선에서 그가 이끌던 인민행동당이 압승하며 총리에 임명됐다. 그리고 1990년 11월까지 3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장대한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부패 없이 가장 성공한 국가로 만들었다. ‘부패 없는 성공’은 지금도 인민행동당 규칙의 도적적 기반이다.

싱가포르는 1971년까지 매년 8%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 1973년에는 세계 3위의 정유 허브를 구축했고 제조업과 금융, 관광의 허브로 발전했다. 그는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될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래서 자칫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을 무너뜨릴 대응전략이 생겨날 수 있다며, 미국인들에게 중국을 처음부터 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일찍부터 “지역주의가 더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며 상호의존적 세계관을 강조했다. 전 지구적 상호 연관성을 현명하게 다루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리콴유는 모두에게 통찰과 성취로 존경받는 보기 드문 지도자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싱가포르가 독재국가이긴 하지만 그의 독재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옹호했다.


◇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 신념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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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을 이끈 대처 전 수상은 전후 영국에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할 당시 영국은 ‘알맹이’가 빠진 채, 전성기가 끝난 분위기였다. 영국 연방의 탈 식민지화에 따른 부담과 국내 경제 불안이 자신감을 한층 떨어트렸다. 1963년과 1967년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려 했으나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실패하는 굴욕도 맛봤다.

당시 최대 문제는 경제 침체였다. 낮은 생산성과 무거운 세금, 높은 인플레이션 속에 노사 갈등까지 극심했다. 극렬한 반대에도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금리를 17%까지 올렸다. 전국 광산노조가 파업하자 ‘불법파업 엄단’으로 일관해 굴복시켰다. 이후 외환통제를 중단하고 주식시장을 개방하는 1980년대 말 ‘빅뱅’을 계기로 영국은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대처는 강한 국방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아르헨티나와의 포틀랜드 전쟁 승리는 영국의 지위를 한껏 높여 주었다. 승전 후 그는 “우리는 이제 후퇴하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호령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조건으로 홍콩도 과감하게 중국에 반환했다. 저자는 “대처는 경제와 정신 양면에서 동시에 영국을 일으켰다”면서 “그는 침착한 태도와 신념을 굽히지 않고 헌신했다”고 말했다.


◇ 리더십의 진화

이들은 모두 변변치 않은 배경 탓에 인습에 도전할 수 있었고, 무엇이 국가의 이익인지 뚜렷하게 알아보고 통념을 초월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규율과 자기수양, 자애, 애국심, 자신감이 있었다. 법 앞의 평등 의식도 확고했다. 상황을 꿰뚫어보는 현실 감각과 강력한 전망도 있었다. 대담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줄도 알았다.

저자는 아데나워의 도덕성과 끈기, 드골의 결의와 역사적 통찰력, 닉슨의 복합적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와 결단력, 사다트의 평화를 향한 정신적 고양, 리콴유의 새로운 다민족 사회 건설을 향한 상상력, 대처의 리더십과 고집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들의 비범한 용기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섯 리더들처럼 사회를 둘러싼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만들어 갈 전략을 고안하는 수완, 숭고한 목표를 위해 사회를 움직이는 솜씨, 결점을 신속히 보완하는 태도 등의 공통적 자질을 미래 지도자들도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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