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철선에 붙어 한 많은 망치질… 아지매들은 깡깡~깡 울었다 : 100세시대의 동반자 브릿지경제

◇ 흥남 부두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

영하 30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흥남부두. 1950년 12월 23일 탑승정원 60명인 7600t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무려 1만 4000명이 몰려 서로 먼저 타려고 밀고 떠밀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이 배는 나중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미군 병력 등을 포함해 피난민 9만 8000여 명 가운데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된 1만 4000명이 이 배에 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13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미군은 피난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배에 실린 무기를 모두 버려야 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5일 낮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28시간이 걸린 긴 항해 도중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부산으로 들어와 국제시장에서 일하며 끼니를 때운다. 피난민 중 한 청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영도다리(영도대교)를 찾아 흥남부두에서 손을 놓쳐 떠나보낸 애인 금순이를 찾는다. 영도다리는 어느새 고향을 잃은 가족과 친지들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모이는 단골장소가 됐다.

청년은 금순이가 제발 굳세게 살아남아 다시 만날 수 있기만을 영도다리 위 초승달에 간절히 빌고 빈다. 다리 난간이며 뱃머리며 눈길 가는 곳에는 모두 ‘금순이’를 찾는 글을 써놓았다. 6.25 전쟁의 참상, ‘피눈물 지수’가 최고조에 달한 모습을 영도대교는 보여주었다.

1.4후퇴 때의 이 상황은 곧이어 노래로 불려졌다. 애틋한 사연을 직접 목도한 강사랑이 글을 쓰고 박시춘 곡을 만들어 현인이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남포동과 영도를 잇는 영도대교는 일제가 1934년 대륙침탈의 수단으로 건설했다. 일본 이주민이 많이 몰려 살던 영도에서 뭍으로 연결하는 수송로로서도 필요했다. 다리는 큰 배가 다닐 수 있게 들어올리는 도개식으로 건설되었다.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바람에 영도대교 주변에서 밤마다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고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주민들은 원혼들을 달래주려 용신당을 짓고 고사를 지냈다. 그 용신당이 지금도 영도에 남아있다.

영도대교는 개통식 때는 전국에서 무려 8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당시 인구수와 교통 사정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인파였다. 다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그 진귀한 풍경은 그때만 해도 최고의 관광이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매달 둘째와 넷째 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시설 점검 시운전으로 들어올리는데 이때를 이용해서 살짝 볼 수는 있다.

코로나가 1단계 이하로 떨어지거나 사라지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 동안 다리를 들어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즐기며 환호를 지른다. 다리 상판 한쪽이 하늘로 치솟으면 아스팔트 표면에 그려진 부산의 상징 갈매기 떼가 훨훨 날아가고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영도다리는 ‘자살다리’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피난민들이 가족친지를 찾지 못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때문이다. 1959년에는 한 경찰이 6개월 동안 무려 44명을 구해 경찰 최고훈장을 받기도 했다는 애환이 서린 다리다.

◇ 조선업이 앗아간 ‘깡깡이 아지매’의 일생

선박에 매달린 부산 아지매는 종일 녹과 페인트를 제거하느라 배를 긁고 두들긴다. 부상은 밥 먹듯 하고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못 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철근으로 만든 곡괭이 모양의 작은 손망치로 철강 표면을 두들기니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깡깡깡’ 소리가 종일 귓속을 찢는다. 그래도 쉼 없이 일을 해야 오늘 하루를 먹고 산다.

아지매는 졸지에 ‘깡깡이 아지매’란 별칭을 갖게 됐다. 일평생을 ‘깡깡깡’ 소리와 함께 살아야 했던 ‘깡깡이 아지매’들은 지금은 모두 ‘환자’다. 귀고막이 찢어져 난청에 시달리고, 손목질환에 한 손을 잃고, 녹슨 철 가루와 페인트 가루를 마셨기에 속병까지 얻어 어느 하나 성한 데가 없다. 그렇게 세월에 밀려 은퇴한 ‘깡깡이 아지매’는 지금 볕도 안 드는 4평짜리 단칸방에 불편한 거동을 한 채 홀로 누워 노후를 보낸다.

1937년 부산 자갈치시장 맞은편 영도 대평동에 일본인이 국내 최초 철강조선소인 조선중공업을 세운다.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 다나카조선소(1887년)가 세워진 지 꼭 50년 만이다. 다나카조선소는 초기에 목선을 건조했다. 이 땅에서의 근대조선의 출발점이다.

부산 영도의 선박 수리소 모습.

일제는 이곳에 ‘깡깡이 아지매’들을 동원했다. 철선 표면의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주기적으로 해야 했다. 그 녹과 부식한 페인트칠 벗기는 일은 그들 몫이었다. 해방을 맞고서도 중고선박 수리 작업이 성황을 이루자 ‘깡깡이 아지매’들은 쉼 없이 그 일터로 향했다.

이들은 대부분 남편을 잃고 자식을 혼자 키우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고기잡이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남편,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어 졸지에 홀몸이 된 사람이 많다. 평생 ‘깡깡이 아지매’로 살며 자식 공부시켜 외지로 내보내고 자신은 화장실도 없는 4평짜리 방 하나 가진 게 전부이다.

남포동에서 영도대교를 건너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대평동이다. 옛날 대평포구가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승전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일제는 이곳을 사유지까지 모조리 강탈해 매립해 버렸다. 매립해 지형이 바뀌었으니 ‘네 땅 내 땅’ 구획이 사라졌고 그 바람에 수많은 사유지가 일제 손에 넘어갔다. 주민들의 땅문서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일제는 1926년 무렵 이 포구 주변을 모두 매립해 조선소와 선박수리소를 늘려 나갔다. 성업 때는 그 거리가 4km에 이르렀다. 1887년 다나카조선소를 시작으로, 나카무라조선소와 나카모토조선소 등 해방 때까지 60여 개의 조선 및 관련 업체가 둥지를 텄다.

지금도 이곳에는 중고선박과 선박부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부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없는 게 없다.

이 일대 골목길을 ‘수리조선소길’이라고 부른다. ‘깡깡이길’이라고도 불리며, 근대역사 현장의 답사길로 떠오르고 있다. 5~6월엔 철망기여서 조업을 중단하는데, 이 시기를 이용해 수리받기 위해 포구에 가득 정박한 배들의 모습이 볼 만하다.

바다 속에서 식량을 구하던 억센 해녀와 국제시장 아지매, 자갈치 아지매, 그리고 깡깡이 아지매는 부산을 먹여 살렸던 대표적인 여성들이었다. 무엇보다 일평생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고 오늘날 세계 최고 기술의 조선 강국의 밑거름이 되었던 ‘깡깡이 아지매’들은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로 음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 함께 둘러보면 좋을 부산의 명소

▲ 해운대·광안리 해수욕장 = 해운대는 여름만의 명소가 아니다.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축제, 북극곰 수영대회, 모래작품전 등 사시사철 명소다. 주변에 달맞이고개와 동백섬, 벡스코, 요트경기장이 있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광안리는 해운대와는 또다른 이국적 풍경을 자랑한다. 바로 앞 카페거리엔 언제나 젊음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밤이면 형형색색 빛을 발하는 광안대교의 야경이 볼 만하다. 10월에 펼쳐지는 부산불꽃축제는 광안리 최고의 잔치다.

▲ 이기대 해안 산책로 = 군 작전지역에서 풀리면서 천혜의 경치를 볼 수 있게 된 곳이다. 2km에 이르는 해안의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걷는 경치가 일품이다.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술에 취한 왜장을 안고 두 명의 기생(二妓)이 함께 바다에 빠져 죽었다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반딧불이가 나타날 만큼 청정해안이다.

▲ 태종대 =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경치가 빼어난 이곳을 유람한 곳이라 하여 태종대라 부른다.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가 절경이다. 신라 시대 이후로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왔다. 때문에 5월 초 열흘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불렀다. 산책 삼아 걸어도 좋고 유람선을 타고 석양에 물든 갈매기떼의 군무를 즐기는 것도 매력적인 여행이 된다.

글·사진=남민 여행작가 suntop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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