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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65분짜리 유태오 보고서 영화 '로그 인 벨지움'

[人더컬처]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당시 찍었던 갤럭시 S9,아직도 사용해"
"80시간짜리 분량, 아내의 추천으로 영화화"

입력 2021-12-13 18:30 | 신문게재 2021-12-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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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감독.(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지금은 상상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당시 유태오는 ‘그저 신인’이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감증(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할 즈음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해외 드라마를 촬영 중이던 그는 그야말로 발이 묶였다. 다국적 스태프들과 감독까지 모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급박해진 상황에 유태오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부모가 살고 있는 독일이 바로 옆나라였지만 국경을 넘기란 불가능했던 상황. 유태오는 “유명하지도 않고 그저 연기만 하는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누가 알아줄까?”란 생각에 자신의 상황을 기록했다.

“처음엔 저만의 에세이였죠.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당시에는 어떤 바이러스인지 이름도 정해져 있지 않았던 터라 그저 당시의 혼란을 담고 싶었어요. 개봉을 앞두고는 관객들이 ‘이거 연기야?’라고 헷갈려했으면 좋겠다는 개구진 생각이 들었지만요.”

당시 갤럭시 S9 폰으로 24시간 내내 찍은 영상은 분량이 너무 많았다. 실제로 영화에는 그가 닫힌 로비를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 해외 에이전시에서 오디션 영상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고 당황하거나 평소에 먹는 음식들을 만드는 일상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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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시간의 기록이 65분으로 압축된 ‘로그 인 벨지움’.(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한국어로 꿈을 꾸고 독일어로 질문하고 다시 영어로 대답을 하는 다면적인 상황들이 연달아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은 그렇게 탄생됐다. 펜데믹 선포로 해외 낯선 호텔에 고립된 유태오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묘한 흥분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진다.

“영화 속 래퍼런스는 차이밍량 감독님의 영향을 받았어요. 다른 작품으로는 ‘중경상림’의 분위기 정도? 사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게릴라 메이킹 필름에 가깝죠. 한국에 와서 찍은 분량을 보니 80시간이나 되더라고요.(웃음) 아내이자 동료인 니키가 보고는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해서 재미있겠단 생각에 추가 촬영을 더해 지금의 65분작이 완성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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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감독.(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미국에서 활동한 유명 아티스트인 니키 리는 남편의 솔직함이 가득 담긴 영상을 보고 분명 남다른 ‘촉’을 느꼈다. 이번 영화 제작사로 표기된 ‘태오닉 모’는 그와 아내의 이름을 따 만든 영화사다. 유태오는 스스로를 “두려움에 자유롭지 못한 스타일”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상처 안주고 피해를 안주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지를 매일매일 고민하는 걸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어쨌거나 ‘로그 인 벨지움’은 배우이기에 앞서 자유로운 예술혼을 가진 유태오를 엿볼 수 있는 완벽한 바이블이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후 화보촬영과 영화 무대인사,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신인상들을 휩쓸며 스타로 발돋움한다. 마치 지금의 모습을 완벽히 예견한 듯 카메라에 담긴 그의 모습은 미리 써둔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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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는 영화 ‘미나리’의 미국 영화사 A24와 CJ ENM이 함께 만드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스’의 주연에 캐스팅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아마도 그때는 고립되었기 때문에 더 솔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화를 하기로 하고 일상의 모습을 찍으려니 저를 객관화 시키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밥 한끼 대접할테니 제가 찍은 걸 본 소감을 말하는 모습을 영화에 넣고 싶다고.”

극 중 처가 식구들의 왁자지껄한 모습,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친해진 천우희와 이제훈,  허물없이 조언을 구하는 사이인 작은 거인 김수철 등이 짧은 등장이지만 친근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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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감독.(사진제공=(주)엣나인필름)

 

특히 평소 남다른 요리 실력으로 소시지나 학센(독일식 족발요리)을 만들어 먹는 유태오답게 ‘로그 인 벨지움’의 또다른 재료는 바로 음식이다. 직접 당면과 고기를 사다 뚝딱 만두를 빚어 먹는가 하면 하리보 젤리를 한명의 관객으로 표현해 아트 콜라보를 하는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다. 그는 “독일에서 자랄 때 친구들이 모두 이민자였기 때문에 내 소울 푸드는 케밥”이라면서 “유일하게 내가 못하는 음식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가장 촬영하기 어려웠던 장면을 묻자 “곰돌이 젤리를 안 넘어지게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다 세우는 데 무려 6시간이나 걸린 신”이라며 감독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이 영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의지와 성실함을 통해 희망을 잃지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고립되는 상황과 팬데믹이 길어지고 있지만 점차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는거죠. 저도 5년 전만 해도 잘 안되던 게 팔자려니 했는데 아닌 것처럼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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