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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그래서 그와 나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박노해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책갈피] 너의 하늘을 보아

입력 2022-05-26 18:00 | 신문게재 2022-05-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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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한 시인은 전세계 가난과 분쟁의 땅을 20여년간 떠돌며 사진으로, 글로 그 현장을 기록했다. 그의 과거는 이렇다. 가난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고 시인이었던 그가 1984년 처음 쓴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지만 100만부 이상이 발간됐다. 

스물일곱부터 ‘얼굴없는 시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1991년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돼 독방에 갇혔다. 그렇게 7년 6개월.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국가보상금 수혜자였지만 이를 거부하며 말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노라”고. 

그의 이름 박노해. 그가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발간했다. 3000여편의 육필 원고 중 추린 301편을 모아 엮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만의 신작 시집이다. 제목 동명의 ‘너의 하늘을 보아’를 비롯해 ‘별은 너에게로’ ‘살아서 돌아온 자’ ‘경계’ ‘이별은 차마 못했네’ ‘동그란 길로 가다’ 등 구전돼 낭송되던 시들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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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박노해 지음(사진제공=느린걸음)

노동시인이었다고, 남다른 길을 걸었다고 의미심장하고 거대한 뜻을 품을 시들만 썼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사랑과 이별, 청춘과 늙어감, 여행, 독서, 계절, 정원의 꽃과 나무, 책과 만년필, 고독과 더불어 사는 삶 등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청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듯하다가도 직언을 날리기도 한다. ‘가혹한 노년’으로 다르게 배우고 일하고 살아올 것을 자성하는가 하면 유래없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풍경을 예리하게 파고들다가도 그 생채기를 쓰다듬는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의 시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속 반대되는 듯 보이지만 ‘그래서’로 연결되는 것들처럼. 호불호, 진보와 보수, 생사, 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화해…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고개만 돌리면, 눈길 한번만 주면, 잠시만 귀기울여주면 연결되는 경계에 선 듯하다.

그 흔한 서문이나 작가의 글도 없다.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로 시작해 ‘너의 하늘을 보아’까지 301편의 시가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내 몸의 문신’ ‘젊음은, 조심하라’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악에 대한 감각’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 ‘별은 너에게로’라는 제목 아래 쉼 없이 펼쳐진다.

기교나 잰 체, 미사여구도 없이 쉽게 써내려 간, 그 어떤 장식이나 쉬어감도 없이 528쪽에 빼곡하게 담긴 시들은 마치 시인이 걸어온 길 같기도 하다. 일상 언어로 쓰여졌음에도 쉼표 하나, 단어 하나, 띄어쓰기 하나, 줄 갈이 하나도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는 그의 시는 읽다 보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어떤 건 친구, 또 어떤 시는 내 어머니, 동생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가 된다.

‘작게 살지 마라’ ‘그러나 그러지 마라’ ‘못 견딜 고통은 없어’ ‘너무 많아 너무 적다’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 ‘젊음은, 조심하라’ ‘이름대로 살아야 겠다’ ‘넌 아주 특별한 아이란다’ ‘뉴스 뒤에는 사람이 있다’ ‘선한 영향력이 있으니’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 ‘그대로 두라’ ‘인간은 서로에게 외계인이다’ ‘진짜 나로’ ‘진실은 찾아오라 한다’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그리고 ‘너의 하늘을 보아’ 등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다잡게 되는 시들도 다수다.

스스로가 ‘저주받은 시인’ ‘실패한 혁명가’ ‘추방당한 유랑자’라고 ‘취한 밤의 독백’에 적은 그는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 말한다. 그의 시에는 그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전하고 부조리에 분노하며 방황하는 이에겐 공감과 응원을 전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의 하늘이 있다. 그 하늘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만의 꿈, 가야할 길, 피워 올려야할 꽃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어쩌면 ‘진짜 나’인 ‘그냥 나’. 그것을 눈여겨 보고 귀기울이며 찾아내는 건 결국 스스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진짜 나’ ‘가야할 길’ ‘내가 피우고 싶은 꽃’ 등의 실체가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며 ‘함께 걷는’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외쳐본다. 박노해 시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보낸 어느 핫한 래퍼의 찬사를. ‘샤라웃!’(Shout Out)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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