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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DIMF 창작뮤지컬상 ‘메리 애닝’ 성재준 연출 “모두가 메리 애닝처럼!”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07-15 18:00 | 신문게재 2022-07-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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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메리 애닝
뮤지컬 ‘메리 애닝’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어떻게 보면 긴박한 게임이었어요. 수상은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죠. 두달 이상 대본·넘버 수정에만 집중하면서 연습도, 무대디자인도, 조명도…긴박했죠. 창작진들도,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확신을 가지고 만들고 증명해내는 데 오롯이 집중했어요. 모두가 메리 애닝처럼요.”

제16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이하 딤프)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돼 창작뮤지컬상과 여우주연상(최서연)을 수상한 ‘메리 애닝’의 성재준 연출은 관객들을 만나는 지난한 과정을 전하며 “작품따라 가는구나 싶었다”고 웃었다.

이가은 작가, 정예영 작곡가, 성재준 연출의 뮤지컬 ‘메리 애닝’은 18세기 화석발굴을 통해 지질과학과 고생물학의 발전에 이바지했지만 여자라서, 귀족이 아니라서 인정받지 못하고 지워진 과학자 메리 애닝(Mary Anning)의 삶을 다루고 있다.

“화석은 메리 애닝이 소중하게 발견한 자식 같은 존재들이에요.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화석은 그의 삶 자체죠. 그 걸 지켜나가려 애쓰며 자신의 이름을 찾고자 했지만 결국 세상을 위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존재기도 합니다.”

라임 리지스 절벽을 배경으로 메리 애닝(최서연)과 그를 지지하는 귀족부인 샬롯 머지슨(최유하), 귀족청년 헨리 드라베쉬(최성욱), 메리의 조수 애나(서예림), 과학자를 꿈꾸는 토머스 호킨즈(임하람) 그리고 지질학회의 리더 제임스 우드(정운) 등의 연대와 갈등이 펼쳐진다.

“과거 이야기를 다룰 때 거기에 머물기 보다는 현재의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고 닮았는지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지금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나를 고민하죠. 그런 의미에서 ‘메리 애닝’은 지금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맞닿아 있고 필요한 얘기였어요.”

 

◇모두가 기꺼이 걸었던 가시밭길로 완성한 ‘메리 애닝’

성재준 연출 프로필
성재준 연출(사진제공=딤프 사무국)

“딤프와 창작산실 모두에 선정된 작품은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첫 도전에서요. 그만큼 대본과 음악의 힘이 대단했죠.”


성재준 연출의 말처럼 이가은 작가, 정예연 작곡가가 꾸린 ‘메리 애닝’은 딤프의 창작지원작 뿐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2021년 연극·창작뮤지컬 대본공모-창작뮤지컬 분야’에도 선정된 작품이다.

딤프 아카데미 ‘창작자과정 전문반’ 교육생이었던 이가은 작가, 정예영 작곡가와 입문반 강사였던 성재준 연출이 의기투합해 화석을 발굴하고 지구의 유래, 역사 등을 증명해내기 위해 애쓰던 메리 애닝의 이야기로 관객을 만나기까지는 그야말로 지난한 ‘가시밭길’이었다.

“첫 대본은 메리 애닝이 죽고 헨리와 친구들이 그의 업적을 증명하려는 이야기였어요. 메리는 플래시백으로 짧게 등장하고 현재에 집중된 이야기였죠. 저한테는 큰 문제였어요. 메인 스토리는 메리 애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른 사람이 증명해내는 그의 삶이 아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어 성 연출은 “너무 큰 공사(?)였고 작가와 작곡가에겐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3개월 안에 모든 걸 다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한 게 ‘메리 애닝’이라는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하물며 이미 딤프와 창작산실에 선정되며 우수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전면 수정하는 게 심정적으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예요. 고생길이 너무 뻔한 선택이었죠.”.

하물며 성재준 연출이 합류한 시점은 4월 중순, 이미 늦은 시기였다. 그럼에도 성재준 연출의 제안에 결단을 내린 이가은 작가와 정예영 작곡가는 대본 수정과 음악 재창작에 돌입했다. 배경이 1860년대에서 1826년으로 앞당겨지면서 이야기의 축 자체가 바뀌었다.

뮤지컬 메리 애닝
뮤지컬 ‘메리 애닝’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 사무국)

 

대본의 80%가 수정됐고 메리 애닝을 비롯해 헨리, 샬롯, 애나, 토마스, 제임스 등의 캐릭터들도 전혀 다른 설정으로 재탄생했다. 인물의 나이대, 인물 간 관계 등이 바뀌면서 가사, 넘버 등도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새 곡만 10개에 이를 정도였고 같은 곡도 12살의 메리 애닝이 부르는 것과 26살의 메리 애닝이 부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시행착오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본이 덜 완성된 상태에서 연습을 시작해 추가 쪽대본을 만들며 극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잔뜩 긴장한 상태였죠. 그럼에도 배우, 스태프들도 창작진의 방향에 충분히 공감하며 기다려 주고 토론해주고 아이디어도 제안하면서 같이 만들어 갔어요. 이번 딤프 ‘메리 애닝’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확신했던 걸 만들고 증명해내는 일이 가장 중요했죠.”

오롯이 ‘메리 애닝’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한데 뭉쳐 가시밭길(?)도 마다 않은 창작진, 스태프, 배우들의 힘은 결국 딤프 창작뮤지컬상, 여우주연상 수상까지 이어졌다. 성 연출은 모두의 가시밭길에 대한 대가처럼 여겨져 “보상받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쉬운 부분들도 분명 있어요. 전체를 바꾸며 메리 애닝에 집중하다 보니 좀더 디테일하게 풀어내지 못했죠.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를 보강해보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메리 애닝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어요.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보다는 메리 애닝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자 했어요.”


◇틀거리의 완성, 빛을 발할 ‘메리 애닝’을 꿈꾸며!

뮤지컬 메리 애닝
뮤지컬 ‘메리 애닝’ 공연장면(사진제공=딤프 사무국)

 

“사실은 저희가 가야할 길은 이제 시작이에요. 우리가 갈 미래의 틀거리만 완성된 상태죠.”

성재준 연출은 “화석이라는 소재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다룬다는 데서는 신선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나 인물들의 쓰임새가 아쉽다”는 평에 “공감”을 표하며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메리 애닝의 이야기에 집중해야했던 상황에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다 버려지더라도 해야할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최우선이었죠. 그냥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를 명확하게 구축하고 무대 위에서 입체화시켜두면 디벨롭도 훨씬 더 빨라지거든요. 이제 틀거리를 만들고 첫발을 내딛었으니 샬롯과의 연대, 청혼이 느닷없이 느껴지는 헨리의 서사, 애나·토마스 등과의 관계, 빌런들의 입체화 등 더 치열하게 만들어가야죠.”

성재준 연출은 딤프의 창작지원제도에 대해 “무대화를 직접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큰 힘이 된다. 대본과 악보 형태로만 있는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진 창작자들에겐 큰 힘”이라며 “지원작 5개 안에 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롯이 이가은 작가와 정예영 작곡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글을 쓰는 연출로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무대화를 함께 하면 성장이 훨씬 빨라져요. 리딩하면서 달라지고 연습하면서 달라지고 극장에서 리허설하면서, 관객을 만나면서도 달라지거든요. 글과 음악을 입체화시켜나가면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체화돼 축적되죠. 어떻게 하면 무대화에 맞게, 입체적으로 텍스트나 음악을 쓸까, 관객이 좀 더 공감하게 할 수 있는 장치는 뭘까 등을 고민하게 돼요.”

이어 성 연출은 “그런 의미에서 딤프 창작지원작에 선정돼 4일 동안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창작자들에겐 큰 메리트”라고 덧붙였다.

“극의 맨 마지막 ‘잊혀진 삶은 없고 잊혀진 죽음도 없다. 알아보지 못한 삶만 있을 뿐이다’에 이 작품의 메시지가 함축돼 있어요.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하나 다 소중한 삶이죠. 이가은 작가와 정예영 작곡가 2021년에 메리 애닝의 이야기를 알아봐줬기 때문에 무대화가 된 거잖아요. ‘알아봐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고 인정받지 못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봐줄 지금 모두의 삶은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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