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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허준호의 인생, 그의 연기

악귀 범천 역할 맡은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나에게 '사람' 남긴 영화...아버지 돌아가신 추석, 좋은 성적표 받아 기뻐"

입력 2023-10-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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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역할에 대해 “트렌디했다”고 정의 했다. 사진제공=CJ ENM 제공)

 

“주인공 하고 싶죠. 그런데 악역이 ‘매력은’있어요.”

이처럼 확고한 대답이 또 있을까 싶다. 주구장창 빌런만 하고 싶은 배우는 아마도 없을 거라는 허준호가 또다시 악의 끝판왕으로 돌아왔다. 대중적인 영화를 찍는 흥행요람 외유내강의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속 악귀 범천을 통해서다.

인간의 영력을 사냥하는 그는 유명한 무당이었던 천박사(강동원)의 할아버지와 후계자였던 어린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인물. 인기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동원이 고군분투하며 코믹과 액션을 담당했다면 허준호는 등장만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범천은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자신의 악한 기운을 주입시키는데 실핏줄과 푸른 얼굴톤을 기본으로 안광(眼光)이 주는 서늘함까지 완벽히 소화한다.

“이렇게 액션이 많고, 젊은 층이 많이 봐야 하는 트렌디한 작품에서 나를 불러주니 좀 의아하면서도 참 고맙더라고요. 사실 빙의 연기는 쉽지 않았어요.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할 수 있는게 빙의니까요. 그래서 범천의 목표인 설경을 빼앗고 싶은 욕구에 집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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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마저 연기하는 허준호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하는 영화의 공식 포스터.(사진제공=CJ ENM 제공)

 

본래 인간이었다 악귀가 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솔직히 인간적이지 않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대본에 충실하고 애드립을 지양한다는 그는 “분명 대본을 그렇게 쓴 이유가 있을거라 확신하기에 토를 달지 않는다”라면서 완성작을 본 후 배우로서 본분을 다 하지 않았던 아쉬움을 토로했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현장에 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CG로 범천이 불길에 휩싸이는걸 보고 내가 계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시나리오에는 그저 소멸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결국 관객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속상한게 불 타들어가는 괴로움을 연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죠.”

허준호의 젊은 시절은 유독 치열했다. 그의 부친인 故허장강은 한국 영화사의 얼굴이자 연극배우, 영화 기획자로 1970년대를 아우른 인물.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대본을 손에 쥔 채 대사 연습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가끔은 상대 역할의 대사를 해주기도 했다는 그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얼굴이 나온다는 말이 저는 그렇게 좋더라. 지금도 연기 할 수 있는 나의 힘”이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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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는 “마지막 장면에서 에너지를 빼앗기는데 감독님이 후반작업을 업그레이드 하셨달”면서 “그 안에 담긴 디테일한 감정표현을 못 했다”며 최선을 다했던 현장의 아쉬움을 인터뷰 초반 밝히기도.(사진제공=CJ ENM 제공)

 

12살 때 세상을 등진 아버지는 늘 자신의 든든한 ‘빽’이었다. 친구들과 동네 극장에 가면 늘 티켓값은 공짜였고 스크린을 보며 꿈을 키웠다. 이후 어머니가 “극장 주인이 돈을 받으러 왔다”며 감춰진 진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추억이 됐다”고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사실 허준호는 요즘 Mnet의 시초로 불리는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무대에 가장 많이 선 멀티테이너이자 뮤지컬 ‘갬블러’의 원년 멤버로 무대에 10년 이상 선 베테랑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좋은게 오컬트와 스릴러가 섞인 대본이 저에겐 신선했어요. ‘천박사’를 찍고서는 ‘앞으로 기회 되면 액션을 더 해볼까?’할 정도로 완벽한 현장이기도 했고요. 액션은 (강)동원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비주얼적으로 키가 큰 친구가 하는 액션이 아름답기도 하고 칼 쓰는 액션을 정말 잘하더라고요.”

그는 “데뷔 때부터 멜로를 많이 못하고 늘 공사장, 철재 구덩이, 산속의 폐가가 익숙하다”고 눙치면서도 자신의 출연 기준을 확고히 밝혔다.

“그 전에 안 했던 것을 위주로 보는 편입니다. 남들이 안 했던 걸 자꾸 찾는데, 대본 안에 그런게 있는지 자꾸 찾아보는거죠.”

그는 이 자리에서 ‘전설의 일본 인터뷰’ 뒷 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과거 ‘갬블러’를 들고 일본 기자단을 만났을 때 독도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 기자의 볼펜을 뺏고 “지금 기분이 어떠냐?”라고 되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허준호는 “그 분 덕분에 모든 인터뷰가 취소돼 마음 편히 일본 관광을 했다”고 말해 웃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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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뒷풀이 현장에 군대 고참인 최민식과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영화 이야긴 하지 못했다. 여전히 (최)민식이 형은 나에게 연극 ‘에쿠우스’ 무대 위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라고 존경심을 표현했다.(사진제공=CJ ENM 제공)

 

“그때 드라마 ‘올인’이 인기를 끌었어요. 그런데 마침 배용준 배우가 막 일본에서 식당을 오픈했는데 독도질문을 받고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거예요. 남의 잔치집에 가서 굳이 그런 질문을 한거잖아요. 그런데 저에게 또 그런 공격을 하길래......(웃음)”

허준호는 ‘천박사’를 통해 사람을 얻었다면서 “사실 추석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늘 다운됐는데 오랜만에 좋은 성적표를 들고 가서 기분이 좋다”며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50대의 아저씨라면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하고 긴, 섹시한 머리칼에 스키니 진을 매치해 인터뷰 현장에 나타난 그는 여전히 소년의 모습이었다. “동년배 친구들이 내 머리숱을 좀 부러워하긴 하더라”고 수줍어했다.

고등학교때는 야구에 미쳐 선수활동을 했고, 대학때는 무용을 전공하며 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운명은 그를 무대와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다. 1986년 영화 ‘청 블루 스케치’로 데뷔한 이후 37년 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간 ‘짬’은 순수함과 겸손으로 응축돼 허준호에게 스며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멜로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부잣집 캐릭터 들어오면 아내가 주는 화장품 바르고 준비한다. 사우나 가서 땀 빼고, 슬림하게 몸을 준비한다”면서 “작금의 무대산업이 안 맞아 사실상 쫓겨났지만 ‘갬블러’는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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