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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총체극 ‘순신’ 이지나 연출·이자람 작창 “최상급 소스들의 뀀, 그들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人더컬처]

입력 2023-10-30 18:00 | 신문게재 2023-10-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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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 이지나 연출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지나 연출(왼쪽)과 이자람(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런 공연도 좀 봐야 되지 않나요? 가끔.”

이지나 연출은 “판소리, 뮤지컬, 무용을 섞은 총체극”이라고 표현한 서울예술단의 ‘순신’(11월 7~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순신’은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 보다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어떤 상황에서도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충신으로 살고자 했던 인물에 주목해 풀어낸 작품으로 1592년부터 7년여간 쓰여진 ‘난중일기’ 중 40여편에 달하는 꿈의 기록들을 8개 테마로 엮어 역사적 사실과 교차 편집해 펼쳐낸다. 이야기 진행과 여러 가지 작전들,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판소리가, 그 내면은 히랍극에서 차용한 코러스들이, 극한의 고통은 서울예술단 무용수 형남희가 표현하는 ‘총체극’이다.

“지난 몇 년 간 이순신 시리즈가 영화로 나왔고 이번 겨울에는 ‘노량’까지 하잖아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김명민씨처럼 인간 이순신을 한정적인 시간 안에 다 보여줄 수가 없어요. 영화처럼 편집해 시원한 해전을 그대로 구현할 수도 없죠.”
 

순신 이지나 연출
총체극 ‘순신’의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어 “스토리텔링이나 심리묘사는 드라마나 책을 따라갈 수가 없다. 볼거리는 영화에 비할 수 없다”며 “스토리텔링이나 무대에 늘어놓는 게 싫다. 그래서 무대는 실험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순신’은 대놓고 실험적이에요. 제가 선택한 무대라는 장르가 초라해지는 게 싫어요. 영화나 매체, 소설이나 드라마 등과는 달리 공연이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늘 고민해요. 공연만이 가진 미덕을 찾는 것이 평생의 제 숙제였죠. 그게 제 자존심이고 우리 공연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소리꾼 이자람이 풀어내는 ‘초인’ 이순신과 해전들

무용을 활용한 갑신정변과 내면표현, 히랍극 중요 요소인 코러스의 등장, 천 등을 활용한 죽음의 미장센…. ‘바람의 나라’가 그랬고 ‘도리안 그레이’가 그랬으며 ‘잃어버린 얼굴 1895’ ‘아마데우스’ ‘곤 투모로우’ 등이 그랬듯 이지나 연출이 그간 무대 위에 구현했던 요소들에 판소리가 본격 접목된다.

그래서 소리꾼이자 ‘서편제’ ‘노인과 바다’ ‘오셀로’ 등의 배우이며 ‘패왕별희’ ‘흥보씨’ ‘20세기 건담기’ 등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이자람이다. 이자람은 대본과 작창을 비롯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대표 전쟁들을 표현하는 ‘무인’으로 출연한다.

“저는 모든 전쟁을 맡고 있습니다. 전쟁마다 표현방법은 다른데요. 모든 전쟁을 통칭하는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쳐들어오기 시작하는 ‘암흑의 시작’이라는 넘버에 담겨요. 모든 전쟁을 다 넣은 장면으로 저 역시 처음에는 도요토미로 등장해 내레이터로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전하죠.”

순신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자람(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어 “한산대첩은 고수와 소리만으로 표현한다. 앞부분은 음악과 더불어 컨템포러리하게 시작해 후반부는 오롯이 고수와 소리꾼이 ‘적벽대전’을 부르듯 풀어낸다”며 “노량은 순신의 내면에 집중해 연극적으로 풀어내고 열두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군 함대를 이긴 명량은 모든 요소들이 총동원된다”고 덧붙였다.

“명량은 가장 큰 군사작전으로 해류를 이용하다 보니 판소리 고유의 장단을 변화시켜 긴장감을 조였다 풀 수 있었어요. 리듬의 변화를 통해 전쟁을 벌이고 하늘을 보면 다시 물살이 변하는 상황을 묘사하죠. 느리게 시작했다 일본이 쳐들어 올 때는 오박으로 가고 이순신이 하늘을 살필 때는 느린 자진모리로 갔다가 다시 빠른 자진모리로 몰아치고…그런 장단의 변화를 통해 묘사하죠.”


◇장르별 최상급 결과물 “관객 감정까지 잘 꿰야 성공적!”

순신 이지나 연출
총체극 ‘순신’의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진짜 저만 잘하면 돼요. 각 장르의 최고 전문가들에게 구슬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꿰고 있는 중이거든요. 기술적으로 붙일 수는 있어요. 조각보처럼. 하지만 관객들의 감정이 제가 붙인 것들을 따라가야 성공인 거잖아요.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공포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지나 연출은 “판소리, 뮤지컬, 무용을 섞은 총체극 ‘순신’은 그 요소를 다 가진 서울예술단이어서 시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세 요소를 사이좋게 나눴다. 판소리 30분, 무용 35분 그리고 그만큼의 뮤지컬이 사이사이 배치된다”고 밝혔다.

“뮤지컬은 판소리 안에 들어가지 않아요. 판소리가 역사적 사실과 해전들을 묘사하고 무용이 이순신의 내적 고통과 텐션 그리고 그 인물과 이름이 가진 무게를 표현한다면 면(권성찬)과 하연(송문선)의 뮤지컬은 스토리텔링이 있는 멜로 드라마죠.”

이어 이지나 연출은 “이순신이 전쟁에서 활약하는 초인적인 면과 내면의 극한 고통을 집중해서 다루다 보니 좀 무거울 수 있다”며 “관객들이 긴장하고 힘들 때 뮤지컬 팀의 팩션 스토리가 숨을 쉴 공간을 만드는 구성”이라고 부연했다.

“무대는 고통의 동굴로 전환이 없는 원 세트로 꾸렸어요. 이순신이라는 사람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돼버렸고 그 사람을 표현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이순신이 가진 그 이름과 무게에 그 춤 잘 추는 서울예술단의 형남희 무용수가 연습실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순신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자체가 고통이죠.”

이자람, 형남희 무용수 뿐 아니다. ‘베토벤 ’ 영웅‘ 미세스 다웃파이어’ ‘레베카’ ‘서편제’ ‘팬텀’ ‘마리 앙투아네트’ ‘그레이트 코멧’ ‘모차르트!’ ‘웃는 남자’ ‘명성황후’ 등의 김문정 작곡가·음악감독, ‘베토벤’ ‘잃어버린 얼굴 1895’ ‘더 데빌’ ‘지킬앤하이드’ ‘웃는 남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곤 투모로우’ ‘물랑루즈’ ‘어린 왕자’ ‘차미’ ‘템플’ ‘경종’ 등의 심새인 안무감독 등 업계 최고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했다.

“콘셉트를 공유해 얘기할 수는 있지만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저는 편집자거든요. 판소리의 대가, 뮤지컬 음악의 대가, 안무의 대가, 무대미술의 대가 등이 만들어낸 최상급 소스들은 이미 완성됐어요. 초점은 이걸 얼마나 잘 붙이느냐죠. 서로 서걱거리지 않게.”


◇‘초인’ 이순신다운 죽음

순신 이지나 연출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지나 연출(왼쪽)과 이자람(사진제공=서울예술단)

 

“회의 끝에 이순신 장군을 ‘초인’으로 만들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자람씨 같은 경우는 회의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가요. 그리곤 집에 도착할 시간 즈음에 작창이 와있어요. 이분이 초인이구나 싶었죠. 이자람씨 뿐 아니라 모든 창작진이 그래요.”

이지나 연출의 말에 이자람은 “판소리에 대한 경험이 워낙 없기 때문에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리 자세히 설명하고 길게 회의를 해도 상상할 수가 없다”며 “그래서 연출님이 말한 그림을 제가 빨리 구체화해서 보여줘야 다음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순신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자람(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순신의 마지막은 오롯이 정가로 적막하고 고요하게 표현된다. 이자람은 “이지나 연출님이 ‘이순신을 보낼 때는 깊게 울어줘야지. 그러는 동시에 정가 한 자락 하고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다”며 “그래서 진짜 남자 정가가 나온다”고 말을 보탰다.

“80년대 남자 정가 파일들을 엄청 찾아서 들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가는 곱잖아요. 그런데 남자 정가는 또 달라요. 순신이 죽기 직전에 정가를 부른다면 어떻게 부를까를 염두하고 곡을 써 몇십번을 계속 불러보고서야 마지막이 나온 것 같아요. 그렇게 완성된 정가 끝에 울음을 붙여서 보내드렸는데 연출님이 울음 없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이자람의 말에 이지나 연출은 “정가가 정말 멋지게 나와서 울음이 필요 없을 정도”라며 “정말 우아하게, 감정의 넘침 없이 깔끔하게 이순신 장군을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을 보탰다.

“워낙 초인적인 인물이라 그 사람이 가는 길이 평온하기를 바랐어요. 빨리 꿈꾸는 피안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꿈을 이뤄드리고 싶어서 정가로 예우 있게 보냈죠. 이순신은 장식이 필요 없을 정도의 인물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초인의 상징이죠. 그 사람이 느꼈을 고통을 관객들이 오억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죠.”

이어 “이순신의 죽음을 표현하는 요소는 ‘정가’ 뿐”이라며 “아주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극 진행 내내 잘 쌓는다면 순신은 그냥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반부는 이순신의 초인성에 중점을 둬요. 판소리로 전쟁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순신의 초인적인 텐션을 엄청 올려주죠. 그렇게 끊어질 듯 팽팽하게 텐션을 끌어올리던 이순신이 마지막 노량에서 놔버리는 느낌으로 몰고 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세상의 짐을 놓고 피안의 세계로 가는 거죠. ‘난중일기’를 보면 이 사람은 삶의 고통이 너무 커서 ‘나 왜 안죽냐’는 말을 정말 많이 썼어요. 전쟁만으로도 힘든데 순신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듯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기도 했거든요. 노량에서 해방되는 느낌으로 사라지는 게 우리 작품의 관건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모르는 이순신

이지나 연출
총체극 ‘순신’의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순신 장군은 계속 죽고 싶다고 했어요. 열악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승리하기 위해 굉장히 엄격하고 잔인하기도 했죠. 본인은 물론 군사들에게도요. 쌀을 훔친 군사를 즉결처분했지만 그에 대한 연민과 고통도 컸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이지나 연출은 “그렇게 매일 꿈에 시달렸고 ‘나는 도대체 왜 살아 있느냐’ ‘먼저 간 사람들하고 같이 있고 싶다’ 식으로 계속 죽고 싶다고 호소하곤 했다”고 부연했다.

“상황은 어쩌면 심플해요. 왜구가 쳐들어왔고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권력자들은 당파싸움을 하느라 이 사람을 좌천시켰다가 다시 끄집어냈다가를 반복하죠. 오로지 바다만 바라보며 이 나라를 걱정하는 이 한 사람을 너무 많은 이들이 괴롭히고 있어요. 그 울분 같은 걸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무인기질이 충만하기 보다는 낭만적이고 시적인 사람이었어요.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조를 보세요. 그래서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느낌이 들어요.”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자람(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지나 연출의 말에 이자람은 “워낙 초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닌데 이 사람을 얼마나 몰아쳤길래 ‘초인’이 됐을까 싶었다”며 “그게 저희 작품이 이순신을 대하는 태도”라고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이순신은 그 스스로의 입장에서는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지만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시대가 원했던 영웅이자 초인이었던 것 같아요. 쌀가마니를 훔치는 사람이 넘쳐나는, 여러 모로 안좋은 시대에 누군가를 통해 긍지를 높이고 구원의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7년 간 이어지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그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었달까요. 전쟁만으로 힘든데 당파싸움에 휘말려 고문을 당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 숙명을 짊어지고 초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감동적이죠.”

 

순신 이지나 연출 이자람
총체극 ‘순신’의 이자람(왼쪽)과 이지나 연출(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 시대의 초인을 기다리며

“우리는 항상 초인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사사건건 반목하고 혼란스러운 지금, 이지나 연출의 말처럼 우리는 이순신 같은 초인을 염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저마다가 초인이 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각자도생해야하는 슬픈 시대다. 더불어 이지나 연출의 표현처럼 “인간 자체가 절망을 달고 사는 존재”이며 “디폴트처럼 절망을 장착하고 살아가는 시대”다.

“이미 아쉬운 장면이 있어요. 1막 마지막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는 장면이죠. 엄청난 환희의 순간이었을 거예요. 백성 모두가 이순신이 끌려가면서 이제 조선은 끝났다고 절망했을 텐데 갑자기 정신이 든 왕에 의해 이순신이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돼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잖아요. 왕을 비롯한 조선의 모두가 정신을 차린, 찰나의 시기였는데 그 환희를 간과한 것 같아 아쉬워요.”

어쩌면 지금의 우리도 그런 찰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이순신’에 대한 질문에 이지나 연출은 “우리는 늘 구원하고 보호하며 갈 길을 제시해줄 초인을 기다린다”며 “지금은 이순신 같은 초인이 꼭 정치가 아니라도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지금은 방탄소년단(BTS, RM·진·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 손흥민 등이 그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를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준다 까지는 아니어도 희망과 안도감, 자긍심을 주잖아요. 그렇게 이 시대에는 스타들이 초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스타는 K팝 가수나 영화배우라기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요. 구원이나 보호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초인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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