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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국과 할리우드가 '소비'한 나폴레옹? 스스로 황제가 된 남자!

[#OTT] 애플TV '나폴레옹'
세계는 정복해도 결코 얻지 못했던 조제핀과의 관계 집중 조명
애플TV로 선보이기 전 소니픽쳐스의 배급망으로 극장개봉 선택

입력 2023-12-20 18:00 | 신문게재 2023-12-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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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1
교과서에서 만난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과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그림이 똑같이 재연된 황제 대관식은 역사공부로서도 꽤 훌륭하다. (사진제공=애플TV)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외친 나폴레옹이 주구장창 영어만 한다. 게다가 그의 연대기를 촬영한 감독은 영국 출신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다.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나라의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를 내세워 ‘나폴레옹’을 만든다고 했을때 받은 조롱은 수위가 꽤 높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곧 아흔이 되는 이 거장 감독은 “프랑스인들은 자기 자신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고 전해진다. 애플TV의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돼 소니 픽쳐스의 배급망을 타고 지난 6일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나폴레옹’의 러닝타임은 무려 158분. 하지만 로맨티스트이자 타고난 전략가, 군인인 나폴레옹의 민낯을 이 작품처럼 대중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코르시카 섬 출신의 키작은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은 뛰어난 머리와 강한 전투력을 발휘해 프랑스의 영웅으로 거듭나며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스로 황제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평생 어머니의 사랑과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여인 조제핀을 갈망하며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는 황제가 되기까지 그가 진두지휘한 전설적인 전투를 아우르며 역사적 증명에도 공을 들였다. ‘마션’ ‘에이리언: 커버넌트’ ‘글래디에이터’ 제작진과 다시 한번 협업한 리들리 스콧은 수십만 ㎡에 걸친 촬영지와 360도를 커버하는 세트, 최대 11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진두지휘했다. 눈 덮인 호수에서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은 아예 광활한 호수를 직접 만들었다. 특수효과로 꽁꽁 언 얼음 속으로 가라앉는 군인들의 붉은 피는 유독 진하게 스크린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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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래디에이터’로 강력한 시너지를 선보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가 23년 만에 의기투합해 더욱 발전된 호흡을 발산한다. (사진제공=애플TV)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은 ‘실제 나폴레옹과 조제핀이 재림했나’ 싶을 정도로 집중도를 높인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배고픔에 절규하는 국민들에게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해 단두대에 목이 잘린 비운의 마리 앙뚜와네트가 타고난 흰 피부와 탐스런(?) 머리칼로 등장하는가 싶더니 두 주연배우인 호아킨 피닉스와 바네사 커비가 역사책에서 본 그림 그대로 등장한다.

두 사람의 결혼은 두 명의 아이를 둔 과부였던 조제핀과 그에게 한눈에 반한 젊은 장교의 결합으로 당시에도 큰 화제였다. 사실 조제핀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외모와 매력으로 수많은 정부를 품안에 들인 마성의 여인이었다. 역사적으로 그와의 결혼을 권한 사람이 조제핀의 과도한 남성편력에 질린 유부남 연인이었단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 두 사람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러시아 원정, 워털루 전투 같은 굵직한 세계사를 차곡하게(?) 쌓아갈 때도 여전히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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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을 탁월하게 그려낸 극중 전쟁신. (사진제공=애플TV)

 

전장에서 조제핀에게 열렬한 사랑을 담아 보낸 러브레터는 병상에 누운 사이 하인에 의해 도둑 맞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수천통의 편지를 조제핀에게 보냈지만 정작 답장을 받은 건 손에 꼽을 정도로 나폴레옹에게 조제핀은 원하던 아이도 사랑도 결코 주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베드신은 그런 조제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황제의 아내가 되어 보석이 달린 왕관을 씌워주고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나폴레옹과 나누는 사랑은 지루하고 굳은 표현이다. 화면에 고작 2초 정도 잡히는 연인과의 잠자리는 찰나의 스침에도 환희에 가득 차 있다.

조제핀은 결국 유럽국가들이 그토록 두려워 한 나폴레옹의 후사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 당한다. 마흔이 넘어서야 적국의 공주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나폴레옹은 전처인 조제핀에게 달려와 갓 태어난 아들을 안긴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라고 읊조리는 모습에서 조제핀의 진심이 살짝 가늠되는데 사랑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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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에서 조제핀의 매력은 많이 삭감된 느낌이다. 안방극장에서 어떤 마력을 표출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진제공=애플TV)

 

‘나폴레옹’은 영웅담보다는 외로운 사람이자 로맨티스트였던 한 남자의 일대기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야욕은 조국애로 시작했으나 결국 절절한 사랑의 후회로 끝을 맺는다. 애플TV는 이 작품에 대해 “나폴레옹의 기원과 빠르고 냉혹하게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아내이자 유일한 참사랑이었던 조제핀과 맺었던 중독적이고 불안정한 관계를 통해 가까이서 들여다본다”고 정의하고 있다. 270분짜리 감독 버전을 보기 전에 극장판 158분을 만나보라고 섣불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으로 다가간 나폴레옹만의 매력을 긴 시간 보노라면 그 정도 시간도 금세 지나가 버린다.

 

나폴레옹
프랑스의 군사력이 가장 막강하던 시절의 나폴레옹은 거침없다. 대중들이 선망하는 영웅으로서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모습. (사진제공=애플TV)

 

무엇보다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사랑과 전쟁이 극장보다 안방에서 훨씬 더 강렬할거란 확신이 솟구친다. 단두대에 잘려나간 수많은 귀족과 전 남편처럼 죽느니 옥중 임신까지 선택했던 이 생명력 강한 여성의 속내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결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구찌 가문을 둘러싼 천박한 민낯을 까발린 전작 ‘하우스 오브 구찌’처럼.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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