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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공부…늙음 아닌 낡음을 두려워하라"

[인터뷰] 5000원·5만원권 화폐 영정그림 이종상 화가

입력 2014-1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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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한 세상, 이 복된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잘 살고 있는지 다들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들 불평 투성입니다. 6·25때 내가 불행했던 것 보다 지금 젊은이들이 더 불행한 것 같습니다.”

늦은 가을 한적한 곳에 위치한 파주의 한 작업실. 엄청난 대작을 준비하고 있는 화가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작품에 열중하고 있었다. 유일한 생존 화폐영정화가이자 최초 철학박사, 최초 독도화가. 최초 고구려 운동, 루브르미술관 최초 초대작가 등 ‘유일’과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일랑 이종상 화백이다. 

 

지난 26일 그의 작업실 앞마당에서 그의 인생, 그가 생각하는 삶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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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상 화백이 60년 된 작업복을 입고 작업실 앞 나무 밑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화백은 또 다른 대작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화가가 되고 싶은 분이셨다. 하지만 꿈을 못 이루시고 내가 대신 이뤘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왔을 때도 난 바닥에 배를 깔고 그림을 그렸다. 친구들이 공부를 안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들의 어머니들은 “공부는 안하고 그림만 그리냐”며 혼을 내셨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달랐다. “넌 질리지도 않니? 하루 종일 그림 공부만 하고 있게.” 어머니는 그림이라는 말 뒤에 꼭 ‘공부’를 붙여 말하셨다. 왜 ‘그림 공부’라고 하셨을까. 돌아가시고 그 의미를 알았다. 삶의 필요한 모든 지혜가 공부(工夫)더라. 하지만 사람들은 인문학을 배우거나 학위를 받은 다음에야 공부를 했다고 인정한다. 다행히 난 그림도 공부라는 것을 인정 해 준 어머니 덕분에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 철학 박사 학위 등 미술 외에도 많은 공부를 하셨던데 이유가 있었나.

내가 엄청난 대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에선 수학, 건축학 등의 수업이 아예 없다. 하지만 난 수학, 건축, 천문학, 화학 까지 배웠고 채색도 만들어 쓰고 있다. 일산 벽화 연구소에 가면 모두 화공학이 바탕이 된 작품들이다. 코사인, 코탄젠트 등 제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못 알아 듣는다. 문제가 심각하다. 나이 들면 다 늙는다. 하지만 나이로 사람을 ‘늙었다’ ‘젊었다’ 따질 수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늙음을 두려워말고 낡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특히 생각도 고루해 낡을 대로 낡은 것이다. 또 발전된 기기를 따라가지 못해 헤매고 있는 내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늙은 데다 낡기까지 한 것이다. 화가는 이렇게 되면 생명이 끊어진다. 화가는 낡지 말아야 한다. 내 머리 속은 앞으로 50-100년을 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 국경 안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을 난 1960년대에 예견했다. 또 24살 때 일찌감치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을 거쳐 이른 나이에 어른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 최초 철학박사, 독도화가, 고구려 운동, 화폐영정 등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생각 해 보면 다 교육이고 공부 덕분이었다.

- 우리나라 미술계의 흐름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그림을 그린다 하면 서양미술을 생각한다. 조선시대는 거의 중국그림으로 사대미술이 판을 쳤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 야마도예가 판을 치다 해방되니 서양 미술이 판을 치고. 언제 우리 것을 찾나. 서양 미술을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알고 서양 미술을 배우라는 말이다. 어르신들이 빈속에 술 먹지 말라 하지 않나. 빈속에 술을 마시면 한잔만 먹어도 건주정(乾酒酊)을 한다. 속이 든든하면 술을 많이 먹어도 실수 안하고 주정도 안한다. 내 문화, 역사를 든든하게 알고 있으면 외국에 가서 훌륭한 문화를 봐도 ‘아, 우리 문화는 이렇게 변해서 전해져 오고 있는데 여기서는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비교 연구하게 된다. 그래서 받아들일 것과 않을 것에 대한 구분지심(區分之心)이 생긴다. 저 사람을 사귈 것인지 안 사귈 것인지. 이 돈을 받을 것인지, 안받을 것인지 등 이것이 구분지심이다. 무엇 때문에 대학에 다니고 공부 하나. 구분지심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빈속에 술 먹지 말아라’ 이 간단한 말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되새겨 봐야 한다.

- 그림에서 얻는 삶의 교훈은 무엇인가.

나의 예술혼은 내 영혼과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영혼하고 육신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삶에서는 서로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결혼 한지 50년이 됐다. 어떤 점들이 우리를 오래 살게 했나 봤더니 서로 다른 교육, 다른 키, 다른 환경 등 다름이 오래 살게 했더라. 다르기 때문에 조화가 되는 것이다. 다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부는 달라야 한다. 짜게 먹고 맵게 먹고 하면서 합쳐가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것은 귀하게 여겨야 한다. 다름은 소중하게 여기고 같은 것은 귀하게 여기는 것의 결론은 다름과 같음이 하나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르다고 이혼한다. 다르다고 싸운다.

- 화폐영정 화가로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그리셨는데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난 순종의 어진(御眞)을 그린 선생님으로부터 영정그림을 정통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분의 소개로 화폐그림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영정(影幀)은 벽에 걸어서 놓고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그림을 말한다. 존경의 대상이 되는 초상화가 아니면 그건 영정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업적을 공부해야 한다. 또 인품을 알아야 하고 역사가들의 고증을 받고 후손들을 찾아가 골상을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서서히 접근 해 수집된 내용을 바탕으로 예술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전 분향을 하고 손을 닦고 목욕재개 후 그분의 영혼과 대화하며 그리는 것이다. 이 작업을 난 37세라는 어린 나이에 어르신들과 같이 배우며 오천원권의 율곡 이이를 그리게 된 것이다. 화폐의 영정을 그린 화가는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 이 화가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그 돈을 누가 쓰겠나. 그래서 대부분 70세를 넘기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 화가들이 그린다. 하지만 난 내가 그린 돈을 40년 넘게 쓰고 있고 4년 전 오만원권 신사임당까지 그렸다. 살아있는 화폐영정 작가이자 아들과 어머니를 그린 유일한 화가. 그래서 나를 한번 만나려면 5천만분의 일을 돌파해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점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둑계의 큰 스승 조남철 선생은 바둑만 잘 두면 바둑 쟁이라며 바둑너머 부부가 보이고 인생이 보이고 생사가 보이는 것 그리고 우주가 보이는 것이 바둑이라고 했다. 바둑을 두면서 바둑밖에 모르기에 바둑쟁이가 되는 것이다. 나도 비교철학, 동양철학을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그전에 안보이던 것이 보이더라. 바둑만 잘 두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나에 능통하면 만가지에 능통하다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후대에 오면서 학문과 기술이 별개가 돼 ‘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론만 하는 사람은 실기를 못하면서 이론만 얘기하고 실기만 했던 사람은 이론보다 실기만 얘기하고.. 이런 사람이 되면 안된다. 하나로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자세가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

사진=윤여홍 기자


◇ 일랑 이종상(一浪 李鍾祥) 화가는= 이종상 화가는 193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거쳐 1989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2002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박물관분과 전문위원, 한국벽화연구소장 그 외 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사)평창문화포럼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작품에 벽화 《십이장생도-좌청룡 우백호》(1973), 《원형상(源形象)》 연작(1989∼1997)과 영정 《광개토대왕상》(1975), 《원효대사상》(1976), 《장보고상》(1977) 등이 있고, 저서에 수필집 《화실의 창을 열고》(1980), 《솔바람 먹내음》(1987) 등이 있다. 또 화폐 오천원권의 율곡 이이, 오만원권의 신사임당화폐영정을 그렸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특선(문교부장관상)을 하고, 월간 미술전문지 《미술시대》가 제정한 제1회 ‘2001, 한국 미술을 빛낸 미술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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