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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감사하며 사는 인생

<시니어 칼럼>

입력 2023-11-16 14:03 | 신문게재 2023-11-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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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량 명예기자
임병량 명예기자

나이가 들어가니 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달갑지 않은 건망증이란 손님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깜박깜박하는 생활이 힘들다. 그러다 보니 치매라도 걸리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다.


건망증 증세는 다양하다. 대형할인점 주차장에서 어디에 주차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왔는데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몰라 서성인다. 산책길을 한참 걷다가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다시 돌아간다. 안경을 찾다가 외출을 포기한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손목시계가 없어졌다. 거실을 샅샅이 살피고 방마다 왔다 갔다 몇 번 하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하다. 다리까지 절뚝거리니 영락없는 초라한 노인이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노화라고 말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노인은 나이가 많고 무기력해서 사회적으로 부담된다는 게 사실이다.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교육장에 열심히 다니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있다. 겸손한 자세로 젊은이와 함께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서 할 일이 없다면 자원봉사를 적극 추천한다. 자원봉사는 인격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덕성을 베풀 수 있는 나눔의 장이다.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난 오월 93세 독거노인 신 씨와 만났다.

신 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2년 후에 고향을 떠났다. 그때가 60세 되던 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서울에 와보니 할 일이 없다. 지인의 소개로 취업했지만, 글자를 모르니 어려움이 많았다. 폐지 수집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30여 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허리가 아파 지금은 세발자전거에 의지하고 걷는다. 밖에 나가면 인심 좋은 이웃이 모아둔 폐지를 자전거에 담아주니 감사하다. 표정이 밝고 목소리도 힘차다. 한때는 점잖은 영감이 따라다녔다는 추억담에 맞장구쳐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짜와 장소, 음식 이름까지 척척 기억하는 그는 나보다 20년 연상이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배우지 못해 글을 읽을 수 없지만, 입담이 뛰어나고 유머까지 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전달 능력도 수준급이다. 80대에 교회 노인대학에 다녔다. 전도사는 좋은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한글을 알려주겠다고 집에까지 찾아왔으나 생계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폐지 줍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그때 배웠어야 했다. 겨우 숫자와 내 이름만 쓸 정도가 되어 중단하고 보니 후회스럽단다. 지금은 글씨를 모른 것보다 귀가 안 들려서 힘들다고 털어놨다. TV는 그림만 쳐다보니 흥미가 없다. 일상의 대화를 소통하는 방법은 그의 눈과 나의 입이 일치해야 가능하다. 잠시라도 다른 방향을 보면서 말하면 반응이 없다.

신 씨는 방에 있을 때가 힘들지, 밖에서 활동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매월 30여만 원의 기초연금이 나온다. 점심때는 천주교에서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 때로는 복지사가 와서 말동무를 해준다. 지금 살고 있는 단칸방은 17년 전에 계약했던 전세보증금 그대로다. 주인은 매월 오천 원 공과금만 받는다. 은행에 가면 직원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 준다. 도시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호강하며 살아왔다고 자랑했다. 매일 삶이 감사와 고마움뿐이란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아름답다. 그의 삶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평생 어려웠지만, 고생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목소리가 힘이 있고 건강하다. 감사하는 생활이 노후의 건강과 면역력 증강으로 이어졌으리라.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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