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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간식, 중국에선 고급 ‘누룽지’ … 과거엔 소화불량약

커피·보리차 등장에 갈길 잃은 숭늉… 영양분 풍부하지 않지만 인스턴트식품보다 건강

입력 2016-01-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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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누룽지의 고소한 맛은 녹말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며 포도당과 덱스트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는 어느날 신분을 숨기고 장쑤성 쑤어주 부근을 시찰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지나고 준비한 음식도 없어 인근 농가를 찾아 먹을 것을 청했지만 그 집엔 남은 음식이 없었다. 허름한 차림을 불쌍하게 여긴 주인은 솥에 있던 누룽지를 닥닥 긁어 뜨겁게 데운 야채 국물과 함께 황제에게 주었다. 배가 고팠던 건륭제는 누룽지탕을 먹고 ‘땅에서 한바탕 천둥소리 울리니 천하제일의 요리가 나왔네(平地一聲雷 天下第一菜)’라고 글을 써 음식을 차려 준 답례로 건네줬다. 시장이 반찬이었던 덕분에 누룽지탕이 최고의 요리가 된 것이다.

누룽지탕은 중국 내에서 고급요리로 대접받는다. 본래 광둥(廣東), 산둥(山東), 쓰촨(四川) 등과 함께 중국 4대 요리로 꼽히는 화이양(淮揚) 요리지만 장쑤성 지역에서 발달했다. 국내에서는 탕보다는 누룽지 자체를 즐겼다.

누룽지는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총칭하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깜밥’, ‘깐밥’, ‘깡개밥’, ‘깡개’, ‘누룽갱이’ 등으로도 불린다.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쇠 솥에 밥을 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라 곡식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섭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누룽지는 밥을 지으면 나오는 음식으로 가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옛 문헌을 살펴보면 누룽지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은 아니었다. 허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누룽지를 ‘취건반(炊乾飯)’이라 지칭하며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에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해버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증, 즉 열격(?膈)을 취건반으로 치료한다. 여러 해가 된 취건반을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고 기록했다. 소화불량을 해결하는 데 누룽지가 약으로 쓰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복에 미음(米飮)과 피쌀죽을 먹고 약을 복용한 뒤 증상을 헤아려 구운 소금 한두 숟갈을 맑은 죽물에 타서 마시고 숭늉 한두 사발을 마시면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해 독기(毒氣)가 다 빠진다’고 적혀져 있다. 과거에 숭늉이 일종의 구급약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누룽지는 담백한 맛과 편의성 덕택에 예부터 간편식으로 애용돼왔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상경하는 선비들은 누룽지를 휴대식으로 즐겼다. 누룽지를 강밥 또는 깡밥으로 부르는 것은 단단히 만들어 놓은 밥이란 뜻의 ‘강반(强飯)’에서 비롯됐다.

누룽지를 이용한 숭늉은 그 자체가 지니는 우수한 향미로 식후 음료로 인기가 좋다. 숭늉의 맛은 누룽지의 태워진 정도에 따라 탄 맛과 구수한 맛이 다르고 물 첨가량, 끓는 시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누룽지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숭늉도 점차 사람들의 입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식탁음료로 볶은 보리를 끓인 보리차가 등장하고 인스턴트 커피가 개발되면서 숭늉은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맛보기 힘들어졌다.

누룽지와 숭늉은 전기밥솥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자리를 잃었다. 식당에서는 전문 가마솥밥 전문점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누룽지를 맛보기 힘들다. 최근 누룽지를 찾아보기 힘들면서 과거 생각에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누룽지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철반에 밥을 얇게 펴서 구워 만들어진다. 가마솥에 제대로 만들어진 누룽지와는 맛이 크게 차이난다.

숭늉은 ‘반탕(飯湯)’ 또는 ‘취탕(炊湯)’으로 불린다. 숭늉이란 말이 순 우리말 같지만 ‘숙냉(熟冷)’이란 한자어가 변형된 것이다. 누룽지와 달리 숭늉은 한국에서 발달한 고유의 음료다. 일부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 차(茶)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원인으로 식후에 차가 아닌 숭늉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 요리와 비교해 맵고 짠 편인 한국 음식의 특성상 입 안을 중화시키기에 차보다는 숭늉이 효율적이었다는 논리다.

밥솥 바닥 수분이 밥알에 스며들거나 증발할 때 온도가 220~250도까지 올라간다. 이 상태로 3~4분 지나면 누렇게 변한다. 누룽지의 고소한 맛은 녹말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이란 물질이 생겨나면서 만들어진다. 누룽지는 쌀을 이용해 만든 것이라 밥과 영양학적 구성은 유사하다. 하지만 탄화 과정에서 열량은 떨어져 금세 허기가 지고 탄화의 특성상 발암 잠재성이 상승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쌀은 밀에 비해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성분 함량이 적지만 필수아미노산은 풍부하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라이신이 약 2배 가량 많다. 

농촌자원개발연구소 농업연구관은 “누룽지 탄수화물 중 다당류는 소화과정을 거치며 단당류로 변해 소화를 촉진한다”며 “민간요법에서 소화가 잘 안될 때 숭늉을 처방하는 것은 이같은 단당류의 효능을 이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누룽지는 열을 가하기 때문에 열에 약한 비타민 등이 파괴되기 쉽다”며 “바쁜 현대인들은 인스턴트식품보다 소화흡수율이 높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누룽지가 몸에 더 좋다”고 덧붙였다.

정종우 기자 jjwto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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