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B그라운드]여전히 남아 있는 혹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사건들에 대하여…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세월호, 5.18 광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군대 내 의문사 그리고 남산예술센터 존폐 위기와 공공극장에 대한 쟁점들 담은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7번 국도'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휴먼 푸가'

입력 2019-01-24 19:47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사진1]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1)
23일 남산예술센터는 2019년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세월호, 5.18 광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가장 논쟁적인 극장’을 추구하는 남산예술센터의 2019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적 참사에 주목한다.

“한국사회는 몇년 동안 겪고 있는 사회적 참사들에 대해 진상조사나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들을 빨리 종결하는 게 아닌, 계속 유예·보류·생각하면서 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3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극장장은 이렇게 전하며 “이번 시즌을 수식하는 말은 ‘여전히 남아 있는 혹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정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진3]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3)
23일 남산예술센터는 2019년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7번국도’, 세월호 이야기 ‘명왕성에서’, 묵가의 동시대성 ‘묵적지수’

이번 시즌에는 6편의 작품과 공모 프로그램 ‘서치라이트’, 한중연극교류협회와 공동주최하는 중국희곡 낭독공연이 진행된다.

남산예술센터의 2019년은 ‘7번국도’(4월 17~28일)가 연다.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로 발굴된 작품으로 ‘서치라이트’ 낭독공연을 거쳐 이번 시즌에 본격 무대화된다. 

이후 극단 코끼리만보와 공동제작하는 세월호 이야기 ‘명왕성에서’(5월 15~26일),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 ‘묵적지수’(6월 26~7월 7일), 공공극장에 대한 이슈와 쟁점을 다룰 ‘드라마 센타, 드라마/센타’(가제, 9월 18~29일), 지난해 초연됐던 장강명 원작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10월 9~27일),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꾸린 5.18 광주이야기 ‘휴먼 푸가’(Human Fuga, 11월 6~17일)가 이어진다.

‘7번국도’는 데이트 코스로 알려진 이 길 위에서 만난 택시 운전수와 군인의 이야기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와 군대 내 의문사 피해자를 한 무대에 올린 ‘7번 국도’의 배해률 작가는 “마땅히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못한 죽음, 그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7번국도배해률구자혜
‘7번국도’의 배해률 작가(왼쪽)와 구자혜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부당한 죽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일부러 남의 이야기로 밀어두고 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는 타자화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참사를 겪고 나면 그 피해자들이 사회적 영웅으로 부상하길 기대하지 않았나 싶어요. 피해자가 싸우기로 혹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 더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전한 배 작가는 “익히 그려지던 피해자의 전형 밖에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구자혜 연출은 “사회적 참사 이후 7번 국도에서 만나 싸움을 계속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본질은 약화되고 연극적 비극성, 장치나 드라마 안에서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이 길에 선 싸움을 정직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명왕성에서’에 대해 “이별의 고통에 대한 씻김굿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소개한 박상현 작·연출은 “비틀리고 날카로운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터그로 이 작품에 참여한 극단 코끼리만보의 손원정 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 잠수했던 분들, 시신을 수습했던 분들의 말을 빌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기억들을 극장으로 소환하는 작품”이라며 “이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남은 우리에게 아이들이 ‘잊으라’ 이야기하고 있는 극”이라고 소개했다.

 

명왕성에서박상현손원정
‘명황성에서’의 박상현 작·연출(왼쪽)과 드라마터그 손원정(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배우들의 입과 마음을 통한 재현으로 망각과 기억이 얼마나 가깝게 붙어 있는지, 잊으라는 말이 얼마나 잊을 수 없는지 감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산, 하늘공원 납골당 묘지, 기억의 교실 등에 남겨진 글들을 공연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박상현 작·연출은 그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콘텐츠화됐던 세월호 이야기와의 변별성에 대해 “의도와 주제적인 측면에서 진혼의 의미일 뿐 제의나 굿, 연희와는 전혀 관계없다. 죽음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신적·육체적 고통, 헤어짐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직시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자체를 다시 보자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달리해가는 과정은 무엇인가 등 죽음의 철학까지 건드려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묵적지수서민준이래은
‘묵적지수’의 서민준 작가(왼쪽)와 이래은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서민준 작가의 ‘묵적지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와 초혜황의 모의전 일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는 “묵자는 반전주의자이자 약소국을 대변했던 인물”이었다며 “여러 가치관의 각축장이라는 의미에서 춘추전국시대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게임적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묵자의 모의전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전쟁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전했다.

서민준 작가의 설명에 이래은 연출은 “살면서 내가 공격하지 않는 걸 선택할 수는 있지만 수비는 선택을 벗어난 일”이라며 “나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남에게 일어나는 공격과 폭력을 목격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직접 공격 안했다고 폭력에 대한 면죄부를 획득할 수 있나 등 질문들이 연이어 떠올랐던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은 영역 확장의 수단, 존재의 확인, 신념이나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권력, 능력주의, 관료주의, 젠더와 위계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는 2019년 현재를 어떻게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격과 수비, 폭력에 저항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어요. 전쟁을 막았던 묵자처럼 사회적 약자를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많은 질문, 생각, 행동들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강량원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무대에 올린 강량원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과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의 변주 ‘휴먼 푸가’

2019년 남산예술센터의 시즌 프로그램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두편이 포함돼 있다.

 

장강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지난해 초연됐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과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변주한 ‘휴먼 푸가’가 무대에 오른다.

강량원 연출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동급생을 살해하고 복역을 마치고 나온 사람이 자신이 살해한 이의 어머니 손에 스스로 살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올해는 스스로 저지르게 된 살인, 사건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더욱 깊이 들어가보길 원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다룬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배요섭 연출에 의해 ‘푸가’라는 음악 형식으로 변주된다. 배 연출은 “이미 소설은 활자 방식으로 완전하게 구현됐다. ‘휴먼 푸가’는 여러 악기를 변주하면서 반복하는 음악형식으로 소설의 내러티브를 이야기한다”고 털어놓았다. 

 

배요섭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변주한 ‘휴먼 푸가’의 배요섭 연출(사진제공=남산아트센터)

이어 “소설 속 사건을 바탕으로 퍼포머의 몸이나 오브제가 어떻게 새롭게 변주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악함은 대단한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권력에 아무 생각없이 복종하게 될 때, 알면서 침묵할 때 나올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를 과거 독재권력과 국가조직에서 찾고자 합니다. (소설의 무대화를 두고) 한강 작가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릴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방식이 있고 연극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있죠.”


이렇게 전한 배 연출은 “광주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되는 새로운 폭력의 모습이 있다. ‘그걸 잘 바라볼 수 있을까’가 우리 극이 던진 질문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사 속에 있었던 양상들, 인류 역사 속 양상들을 직면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브제를 찾고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해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과제죠. 오브제 발견을 통해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고통을 각인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


◇공공극장을 둘러싼 쟁점들 ‘드라마 센타, 드라마/센타’
 

김종휘우연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왼쪽)와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창작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작품설명 전 혹은 마지막에 남산예술센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해 언급했다. 우연 극장장은 “올해 화두는 극장을 지켜라 정도가 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연 극장장을 필두로 한 창작진들과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신임 대표는 애초 공공극장이었지만 사유재산화된 남산예술센터의 소유권, 서울문화재단의 조직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의 자율성 및 독립성 문제 등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소유의 땅이었고 해방 이후 국유지화됐다. 4.19 이후 유치진을 필두로 한 연극계의 공공극장 필요성 요구에 따라 국가로부터 불하받아 드라마센터를 지었지만 서울예술대학의 사유재산으로 귀속되는 복잡한 역사를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는 서울시에서 임대해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위탁 운영해 온 남산예술센터는 지난해 소유권을 가진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가 임대계약 종료를 요청하면서 극장 존폐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3년 단위로 임대·위탁 운영 중인 남산예술센터의 계약 종료 시기는 2020년이다.

더불어 김종휘 대표가 새로 부임해 조직을 개편하면서 독립돼 있던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이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 극장운영팀에 배치되면서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우려도 불거진 상태다.  

 

드라마센타이양구류주혜
‘드라마 센타, 드라마/센타’(가제)의 이양구 작가(왼쪽)와 류주연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김종휘 대표는 “사적 소유주가 가진 역사적 문제가 있지만 대한민국 사법체계에서는 사적재산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하게 환수해 예술가·시민에게 돌려드리기 마뜩잖아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극장 독립성에 대해서는 “조직개편을 하면서 현장 예술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게 조직도에서 독립된 단위로 뽑을 것을 약속하겠다. 관련 절차를 밟아 올해 안에 해결할 생각”이라고 뜻을 전했다.

이같은 논쟁들은 이양구 작가, 류주연 연출이 꾸리는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에 담긴다. 이양구 작가는 “친일극, 드라마센터를 사유화하는 과정 등은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 시대 가능했던 보편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며 “과거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평가, 지금의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평가해왔는지, 그럼 이제 와서 유치진의 행위를 나름 분석·평가했던 그 부분을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치진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평가했던 시간과 지금 제가 그분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지금 저의 이 발언과 행동이 이후에는 어떻게 평가될지를 염두에 두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