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비바100] 피를 토하고 죽었다… 고로, 아름답다?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예술작품 단골 소재로 쓰이는 '결핵'
3월 24일은 '세계 결핵의 날'
전세계 문학,오페라,영화를 통해 본 질병 잔혹사

입력 2021-03-23 18:30 | 신문게재 2021-03-24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파이란
죽어서야 서류상 아내를 만나는 강재(최민식).파이란(장백지)는 결핵으로 죽어가면서도 남편에게 편지를 남긴다.(사진제공=튜브엔터테인먼트)

 

“결핵에 걸리고 싶다. 그리고 죽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저 사람은 참 아름답게 죽었다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Baron Byron)은 결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표적인 ‘후진국 병’으로 알려진 결핵, 3월 24일은 ‘세계 결핵의 날’이다. 1883년 3월 24일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균을 발견한 지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82년 결핵 예방 및 조기 발견을 위해 제정됐다.

매년 3월 24일에는 ‘국제항결핵 및 폐질환연맹’(IUATLD)에 가입한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결핵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한결핵협회 주관 하에 1982년부터 2010년까지 자체적으로 기념행사를 실시해 오다 2011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결핵 예방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 결핵 발병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은 2017년 인구 10만명당 70.4명으로 조사되고 있다. 매일 전국에서 환자 72명이 새로 발생하는 셈이었다. 이는 OECD 평균 11.1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보건복지부는 UN과 함께 2030년까지 ‘전 세계 결핵유행 조기종식’을 결의하고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비 전액 부담에 앞장서고 있다.

결핵이미지2
영화 ‘기생충’에서 가사도우미 문광의 결핵 사실을 알고 경악하는 주인공.(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요즘에도 결핵있는 사람이 있어요?”

영화 ‘기생충’ 속 대사다. 비극의 시작은 박사장네 집의 실세인 문광(이정은)이 앓고 있는 복숭아 알레르기였다. 기우(최우식)과 사귀는 다혜가 아줌마의 알러지를 알려주고 동생 기정(박소담)은 반지하에 사는 가족들을 이 집에 취직시키기 위해 알레르기를 이용한다.

한편의 CF같이 속도감있게 보여지는 문광에 대한 오해는 바로 결핵으로 이어진다. 가게에서 복숭아를 들고 나와 털을 플라스틱 통에 넣고 정원에서 개와 놀아주고 있던 문광에게 털을 튕기는 그 리듬감이란. 기우와 기정의 아버지이자 운전사로 취업 중인 기택(송강호)은 휴지통에서 문광이 버린 휴지에 핫소스를 뿌려 각혈을 연출한다.

멀리서 휴지를 본 연교(조여정)는 위의 저 대사를 통해 ‘과거의 질병’으로 여기는 대중들을 생각을 대변한다. 대부분이 과거 폐결핵으로 사망하던 사람들이 많던 1960년대 상황만을 기억한다. 지금처럼 의식주가 안정된 생활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병이라고 치부하지만 결핵이 지닌 광범위한 전파야 말로 인류를 위협하는 균으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적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주상 교수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전염되는데 결핵균이 공기를 통해 폐로 들어가 증식하고 건강한 폐를 손상시킨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쇼팽, 철학자인 칸트와 데카르트 그리고 조선시대 왕인 성종, 헌종, 철종 역시 결핵으로 사망했다.

결핵은 전염성 있는 결핵환자가 기침을 하면 비말(침방울)을 통해 결핵균이 공기 중에 나오고 공기 내에 떠다니던 결핵균을 다른 사람들이 흡입하면 감염되는 공기 감영병이다. 직접접촉이나 비말로 감염되는 코로나19와는 다르다. 하지만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가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접촉자의 30%가 감염되고 감염된 사람의 10%가 결핵환자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결핵이미지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영화 ‘레 미제라블’의 팬틴.(사진제공=UPI)

 

◇작품의 비극을 더하는 ‘결핵’

다행히도 결핵은 대부분 완치될 수 있다. 현재 항결핵제가 개발돼 있어 이 약물을 복용하면 대부분 치료된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암(癌)처럼 걸리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돼왔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며 결핵 퇴치 기금 모금을 위해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기억하는가. 우표와 유사한 형태로 발행되지만 우편 요금과는 관련이 없고 우표와 함께 붙여 기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19세기 작가와 예술가들은 결핵을 낭만적인 질병으로 보고 작품에 녹여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에 모두 결핵환자가 등장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그랬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판틴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특히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앤 헤서웨이가 부르는 ‘아이 드림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에 대한 비애, 절절한 모성애와 맞물려 절정을 이룬다. 한국 영화에서는 ‘파이란’이 결핵의 미학을 다룬 영화로 평가된다. 장백지의 리즈 시절이 담긴 이 영화는 용돈 벌이로 위장 결혼을 해준 삼류깡패 강재(최민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반반한 외모로 술집에 팔려갈 위기의 순간 폐결핵 환자인 것처럼 꾸며 위기를 넘긴 파이란(장백지)은 오래된 세탁소에 취직해 코리아 드림을 꿈꾼다.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던 파이란은 얼굴도 보지 않은 자신과 결혼해 준 강재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영화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지 않는다. 대신 진짜로 결핵에 걸린 파이란이 죽기 직전 강재에게 남긴 편지로 하여금 한 남자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만든다.

결핵이미지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어린시절 기억을 담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사진제공=대원미디어)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서 결핵은 순애보의 결정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존인물인 비행기 설계사 지로와 그의 아내 나호코의 사랑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아우른다.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를 잡아준 소녀를 만난 청년 곧 지진으로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10년 후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지로는 몸이 약한 나호코가 결핵으로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지만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편의 꿈을 지지하는 나호코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을 남겨주고 싶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는 두 사람의 아련한 한 때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의 결실인 비행기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로 이용된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감독은 실제로 공장장이었던 아버지와 평생 결핵으로 힘들어했던 어머니를 뒀기에 ‘바람이 분다’ 속 사랑을 그저 희생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남겨뒀던 게 아닐까. 흡사 ‘결핵’이 치료는 될 지언정 종식되지 않은 것처럼.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