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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야나체크, 라벨 그리고 다시 쇼팽,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입력 2021-09-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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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크레디아)

 

“쇼팽의 ‘스케르초’ 네곡은 다 성격이 다르고 훌륭해요. 음악도 마찬가지로 추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케르초’ 2번은 저랑 추억이 되게 많은 곡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연주했고 중3 들어가기 전 정명훈 선생님 앞에서 연주해 인연이 생겼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3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레데리크 쇼팽( Fryderyk Chopin) ‘스케르초’(Scherzo) 2번을 연주한 후 그 특별함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2007년 우연히 제 연주를 들으러 오신 신수정 선생님과의 인연도 이곡에서 시작했어요. (스케르초 네곡 중) 어떤 곡이 더 훌륭하다기 보다 2번이 저에겐 특별하죠. (우승한 2015년) 쇼팽 콩쿠르 당시 세미파이널의 마지막 연주곡이기도 해요.”

조성진은 지난달 27일 신보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스케르초’ 발매에 맞춰 4일 전주(한국소리문화의전당)를 시작으로 대구(9월 5일 수성아트피아), 서울(9월 8일 예술의전당), 인천(9월 8일 아트센터 인천), 여수(9월 11일 GS칼텍스 예울마루), 부산(9월 16일 부산시민회관) 그리고 서울 앙코르(9월 18일 예술의전당)로 이어지는 리사이틀 투어에 나선다.

이 투어에서 조성진은 ‘스케르초’ 전곡과 더불어 레오시 야나체크(Leos Janacek)의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1.X.1905, JW VIII/19, “From The Street”)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도 함께 선사한다. 조성진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 대해서는 “제가 연주한 솔로곡 중 테크닉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소개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크레디아)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으로 유명하다보니 그걸(테크닉을) 위주로 들어선지 음악적 특별함을 인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적으로 거의 완벽한 곡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특히 젊어서 많이 연주하고 싶은 곡이죠.” 

 


◇“이제는 연주해도 되겠다”는 직감으로 ‘다시’ 쇼팽

“5년 전과 어떻게 다른지 저는 잘 몰라요. 쇼팽을 연주하면서 일부러 다르게 하려고 한 건 없거든요. 제가 거울을 보면 똑같은데 ‘늙었다’ 하는 것처럼 연주스타일도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그리고 2016년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 전곡을 담은 앨범 출시 후 달라진 점에 대해 이렇게 전한 조성진은 “콩쿠르 당시에는 지금이랑 달리 경직된 느낌이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아직도 긴장되고 끔찍한 기억”이라며 “우승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콩쿠르 안해도 되겠다’는 안도와 기쁨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콩쿠르 이후 훨씬 자유롭게 제 음악을 할 수 있었다”며 “쇼팽 콩쿠르 우승 덕분에 원하는 연주를 할 수 있고 좋은 연주자들, 홀, 오케스트라랑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 전곡을) 녹음하고 의식적으로 쇼팽 곡을 녹음 안한 것 같아요.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정말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커리어를 잘 쌓을 수 있어 모두가 탐내는 자리죠. 하지만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될 위험도 있어요. 그걸 원치 않아서 의식적으로 슈베르트, 모차르트, 드뷔시 등 다른 작곡가들을 녹음했는데 이쯤이면 쇼팽을 다시 녹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만에야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스케르초’ 전곡을 녹음해 앨범으로 선보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조성진은 “5년 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함께 했던 악단(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지아난드레아 노세다)와 2번을 녹음해서 사이클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크레디아)

 

“쇼팽을 다시 녹음하기로 결정한 건 2018년 말 정도였어요. 코로나19로 영국 스튜디오가 문을 닫아 올해 3, 4월에 녹음했지만 원래 2020년 녹음예정이었죠. 5년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에 대해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이유는 안전했기 때문”이라며 “2번은 이전에 연주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를 비롯한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1번을 연주하는 이유는 길이도 8~10분 정도로 길고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적인 요소가 많아서인데 2번은 보다 섬세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2악장은 스트럭처도 자유롭죠.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은 쇼팽이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 같아요.”

이번 앨범에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더불어 ‘스케르초’ 전곡이 담겼다. 이에 대해 조성진은 “5년 전 녹음한 ‘발라드’와 이번의 ‘스케르초’가 쇼팽 곡들 중 무게 있고 길이나 구성 면으로도 탄탄한 곡”이라고 밝혔다.

“협주곡은 솔로 보다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오히려 녹음이 쉬웠던 것 같아요. 고를 수 있는 요소가 별로 없어서 그 순간 최선을 다했죠. 제가 솔로곡 녹음을 마치고 꼭 하는 게 프로듀서, 스태프 등을 앉혀놓고 콘서트처럼 연주하는 거예요. 이번에도 사람들 앞에서 제가 알리고픈 ‘스케르초’를 연주했고 (앨범에 수록된 ‘스케르초’ 중) 2, 3번은 거기 테이크에서 따온 걸로 알고 있어요.”


◇18일 온라인 중계, 코로나19로 더욱 소중해진 무대와 관객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크레디아)
“코로나19 발생 전 마지막 연주가 2020년 3월 미국에서였어요. 당시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이) 진행 중이었고 유럽과 미국은 시작단계였죠. 미국에서 베를린에 오자마자 연주가 모두 취소됐어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조성진은 “처음엔 한두달 취소를 예상해서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곡을 배울까 기대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해졌고 저 뿐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들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 연주가 언제일지 모르니 새로운 곡을 익히려고 해도 손에 안붙었어요. 시험공부는 하는데 시험이 언제인지 모르는 기분이었죠. 어떤 곡을 완성하기보다는 평소 못해본, 바흐의 ‘파르티타’ 전곡 연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악보 읽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이어 “취미도 딱히 없다”는 그는 “음악 자체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은 편이라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쉴 때는 음악을 듣고 연주를 보러 가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떤 곡을 치면서 어떤 느낌, 어떤 걸 전달하고 싶은지 영감을 받아 표현하려고 하는 데 사실은 너무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나름 연주하면서 해석하려고는 하지만 모든 방면, 방법을 열어놓고 하는 편이죠. 제가 정답이 아닐 수도, 남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선입견 없이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고 항상 열어두려고 노력하죠.”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콘서트가 많아진 데 대해 조성진은 “방송이나 화면 중계에서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싫어했는데 코로나19 덕분에 적응됐다”면서도 “그럼에도 무관중 콘서트는 라이브 콘서트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전했다.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는 녹음을 선호하는 피아니스트지만 전 개인적으로 무대를 선호해요. 그래서 녹음할 때도 라이브처럼 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관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크거든요. 관객에게 받는 에너지 때문인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관객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들이었어요.”

9월 18일 서울에서의 앙코르 공연은 네이버TV로 중계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조성진은 “이번(앙코르 공연 중계)에는 관객이 있으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온라인으로는 (세계적인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와의 공연이 처음이었어요. 그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어요. 슬프면서도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함을 느꼈죠. 온라인 콘서트를 할 때는 혼자 하는 리사이틀 보다는 다른 음악가, 오케스트라랑 하는 게 수월했던 것 같아요. 사람한테서 얻는 에너지를 믿거든요.”


◇꿈 보다는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크레디아)

 

“너무 많아서 가장 매력적인 작곡가를 몇 명으로 간추리기는 힘들어요. 쇼팽은 피아노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어요. 심포니를 아예 안쓰고 모든 작품이 피아노를 위한 곡이죠. 베토벤은 쇼팽과는 다르게 피아노 소나타에서 오케스트라가 들리는 듯 스펙트럼이 넓은 작곡가라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조성진은 이번 리사이틀 투어에서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자주 연주되지 않아 관객들에겐 생소한 야나체크의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를 연주한다. 이는 ‘불길한 예감’ ‘죽음’의 부제가 붙은 2악장짜리 피아노 소나타로 1905년 10월 1일 체코의 한 대학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중 총검에 스러져간 젊은 목수 프란티섹 파비크를 기리고 폭압에 항거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야나체크의 단 하나뿐인 피아노 소나타로 피아니시시모(PPP, 아주 여리게)부터 포르티시시모(FFF, 매우 세게)까지 악상이 극과 극으로 내달리는 곡이기도 하다.

“앞으로 생소한 곡을 많이 연주하겠다 하기는 창피한 수준이에요. 야나체크를 시작으로 바로크 음악이지만 많이 연주되지 않는 헨델 등도 해보고 싶어요. 다음 앨범에는 이제까지 안해본, 바로크쪽 작곡가를 해볼 생각입니다.”

함께 앨범을 발매한 마티아스 괴르네와의 2022년 3월 미국투어를 시작으로 뉴욕 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 등 2023년 6월까지 스케줄이 이미 잡혀 있다는 조성진은 “아마도 내년 하반기 10, 11월에는 한국에 귀국해서 연주할 것”이라며 “내년엔 주로 협연을 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 고민은 내일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네기홀에서 베를린필, 비엔나필 등과 협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꿈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좋은 연주를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목표는 제가 조금이라도 더 만족하는 연주를 하는 겁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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