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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막말은 코미디가 아니다

입력 2015-04-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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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몰랐지! 그 친구 머리카락 말이야. 진짜가 아니고 가발이래.”

말하는 사람이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가발 쓴 당사자의 심사는 꼬일 수밖에 없다. 귀엣말한 사람을 평생 절교할 인간으로 분류하고 싶어진다. 급기야 “역시 인간은 악한 본성을 타고 났단 말이야!”라며 전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물론 대머리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과 같은 건데 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안 쓴 가발을 썼다고 거짓말한 것도 아니잖아?”라며 가발 쓴 사람을 오히려 책할 수도 있다.

코미디는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는 행위다. 남의 돈을 어렵게 훔친 소매치기가 다른 사람 호주머니를 자기 것인 양 착각해 훔친 돈을 그 안에 넣는 게 코미디의 원리다. 문화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멋진 헤어스타일을 놓고 기어코 가발이라고 밝히고 싶은 심리도 같은 심리다. 완벽하게 보이는 신사가 지니고 있는 허점을 폭로해 웃음거리로 삼고 싶은 거다. 상대방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웃기고 싶은 심리가 낳은 행동이다.

하긴 웃음의 성격이 그렇다. 웃는 순간에는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언제나 중심에서 벗어나야 하고 감동이 수반돼선 안 된다. 감성을 침묵시켜야 웃을 수 있는 거다.

덕분에 우리는 원숭이가 가방을 메고 돌고래가 공놀이를 하는 걸 보고 웃을 수 있다. 숫자를 알아맞히는 개나 북을 치는 곰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인간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코미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동물이 인간을 흉내 내는 훈련과정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북치는 곰을 예로 들면 이렇다. 먼저 곰을 억지로 앉혀놓고는 벌겋게 불에 달군 솥 뚜껑을 앞에다 갖다 놓는다. 다음에는 억지로 앞발을 들게 한 후 지칠 때쯤에 앞발을 내리도록 허락한다. 그러면 곰은 뜨거운 솥 뚜껑을 만지고는 기겁해 다시 앞발을 올리게 된다. 이후부터 곰은 커다란 원판만 보면 앞발을 내렸다 올리기를 반복하게 되고 인간의 눈에는 곰이 북을 치는 것으로 보이는 거다.

희극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소비 방식은 천양지차다. 비극은 시공간을 초월해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 반면에 희극은 개인의 성격, 생활환경, 교육정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 등에 따라 웃음의 강도가 달라진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여주인공의 러브스토리는 남녀노소, 빈부, 학력을 불문하고 눈물이 될 수 있지만 웃음은 모든 것의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한번 써먹은 코미디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막말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등장했다. 사회를 관통하는 갖가지 거짓에 질린 탓이 크다. 화끈한 것에 열광하는 다이내믹한 국민성도 막말 생산을 부추겼다. 아이디어의 빈곤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개그맨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는 막말을 이미지로 삼았다가 막말로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중 장동민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21일 만에 구출된 여자도 다 오줌 먹고 살았잖아”라는 막말로 피소까지 됐다.

시어머니를 비하하고 ‘시누이’를 ‘시누년’이라고 부르는 언사로 주목을 받은 어느 요리연구가는 막말이 솔직한 이미지로 전환돼 호감과 비호감을 동시에 사고 있다. 목욕탕 뒷담화에나 해당하는 막말들이 개그로 장식돼 토크쇼 출연섭외 1순위가 되기도 한다.

코미디의 기본은 ‘인간다움’에 있다. 하지만 막말에는 사람이 들어있지 않다. 코미디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막말하는 사람은 개그맨이 아니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가뜩이나 막말이 난무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대중은 그냥 웃기를 바랄 뿐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외부기고의 일부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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