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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한상덕의 문화경] 멜로드라마가 되려면
“자식은 못 이긴다”라는 말만큼 설득력이 있는 말이 있을까. 남의 일 같지 않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식의 혼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필이면 마약한 남자와의 결혼이라니. 32년간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딸이 아니던가. 아버지의 직위랑 상관이 없더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무릇 남녀 간의 사랑에는 장애가 있는 법이다. 신분상의 차이, 빈부의..
문화평론가 한상덕
2015-09-17 16:53
[한상덕의 문화경] 포상과 운수
1970년대의 이야기다. 정윤희·유지인·장미희 트로이카를 이을 차세대 톱스타로 그 명성이 자자하던 미스 롯데 출신의 여배우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소문과 함께 재벌 총수와의 관련설이 있었지만 믿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꽃같이 예쁜 여배우가 뭐가 아쉽다고.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롯데가(家)의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2015-09-10 15:18
[한상덕의 문화경] 관광 명소, 문제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극중 덕수(황정민 분)가 북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생을 지켜온 ‘꽃분이네’가 부산의 명물이 됐다. 남녀노소 없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평일에도 붐빈다. 이웃 가게의 눈치는 봐야겠지만 포토라인도 있고 관리자도 있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스틸 사진 하나가 ‘영화와 관련 있음’을 증명해보일 뿐이다. ‘꽃분이네’..
2015-09-03 15:43
[한상덕의 문화경] 미안하다, 청년들아!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 문구를 기억하시는지. 이 문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진다. 자주 웃으면 헤프다고 욕먹고, 어쩌다 눈물을 보여도 사내답지 못하다고 핀잔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방귀를 소리 내어 뀌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지만 사내의 눈물은 방귀 이상으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울고 웃는 인생살이라고..
2015-08-27 10:44
[한상덕의 문화경] 노후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변호사인 친구는 퇴근시간만 되면 허세 덩어리가 된다. 늘 저녁 약속이 있는 것처럼 바쁘게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물론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귀가해서 TV를 보자니 체면이 말이 아닌 것 같고 기원에 가서 마작을 하자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일없이 동창생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당뇨다 고혈압이다 해가며 끙끙대는 친구를 술자리에 불러내는 것도 못할 짓이다...
2015-08-20 16:07
[한상덕의 문화경] 뉴스는 영화가 아니다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국어시간에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조국보다는 저자인 만해 한용운의 첫사랑일 확률이 높다고 발표했다가 엄청 혼이 난 경험이 있다. 내 딴엔 진지한 고민이었는데도 국어선생님은 장난으로 받아들였고 과장해서 표현하면 매국노를 대하는 듯 했다. 이후 나는 시를 접할 때 애국심이나 교훈을 찾는 게 숙제처럼 됐다. 시뿐만이..
2015-08-06 16:09
[한상덕의 문화경] '셀프 자랑'을 '셀프 디스'라고 우기다니
“가난은 죄가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어른들은 말했지만 40년 전 중학생의 가난은 죄의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공납금이 밀렸다며 수업하는 도중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래도 공납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쓰되 한 자도 빼놓지 말라고 했고 노트 3장을 빼곡히 채우라고 말씀하셨다.아이는 “반성합니다”를 쓰는 건 알겠는데 정해진..
2015-07-30 17:41
[한상덕의 문화경] 시도 때도 없는 여론 조사의 허와 실
차기 대통령 궁금하지 않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농부에게 “여름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니요”라며 짜증부터 낼 것이다. 반면에 겨울날 웅크리고 있는 농부에게 “여름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네”라며 허리를 곧추 세울 것이다. 감정 변화에 대한 또 다른 일화 하나. 수 십 년을 함께한 아내도 원수처럼 밉다가 “전생에..
2015-07-23 16:11
[한상덕의 문화경] 복면과 반전
지역 방송사 기자였다가 명예 퇴직한 친구는 밤에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다닌다. 잘 나가는 연예인도 아니고 지역 TV뉴스에 간간이 얼굴을 비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전무에 가까울 텐데도 자신을 꼭꼭 숨긴다. 그러자 선배가 한마디 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듯 버려야 할 나이가 된 거야.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파리를 버려야 하는 거지. 버리지 않으면 가..
2015-07-16 17:47
[한상덕의 문화경] 슬픈 영화가 그립다
지난 5월 필리핀 세부로 패키지여행을 갔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스무 명의 일행 중 어린 아이 둘이 원인 제공자였다.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부터 아이들은 웃으며 떠들었고 각각의 젊은 부모는 대견하다는 듯 따라 웃었다. 이후 참다못한 일행 중 한 사람이 노골적으로 싫어함을 표시했지만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사람은 아이의 부모였다. 나 또한 인내력의 한계를 느꼈고..
2015-07-09 13:51
[한상덕의 문화경] ‘민상토론’을 돌려줘
1931년 미국 대통령 후버는 “열흘에 한 번씩이라도 재미난 농담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요즘 한국의 청년 멘토들처럼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몇 달 뒤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이후 히치하이킹 중이던 여행자가 도로변에서 팔을 도로 쪽으로 뻗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대신 표지판 하나를 들었..
2015-07-02 15:44
[한상덕의 문화경] 모로 가도 방송만 타면 된다니까, 이 바보들아!
흥부가 횡재를 했다 하여 배가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착한 본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남이라는 관계 설정 탓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논리도 마찬가지다. 악한 본성이 작용했다기보다는 비슷한 조건과 유사한 유전자임에도 뒤지고 있다는 열패감 때문일 것이다. 나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고 농사일도 못하는 사촌이 계속해서 땅을 사들인다면 배가 아파야..
2015-06-25 14:54
[한상덕의 문화경] 드라마 ‘프로듀사’, 그들만의 리그
드라마의 승패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영화라면 망설임 없이 감독을 꼽겠지만 드라마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PD라고 답하기도 작가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하다. 영화는 감독의 영상이 전부에 해당하고 드라마는 작가의 대사가 전체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상예술이고 드라마는 스토리예술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감독이 시나리오작가를 겸하는 경우는 있어도 PD와 드라마..
2015-06-18 17:38
[한상덕의 문화경] 못 믿겠다 TV
오래전 호주 멜버른에서 있었던 일이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지인이 홧김에 길가의 쓰레기통을 걷어찼는데 요란한 소리와는 달리 겉모습은 멀쩡했다. 대신에 경찰관 7명이 회오리처럼 달려와 지인을 넘어뜨리고 손목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이후 상당한 벌금을 물어야 했고 여행일정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그리고 또 하나. 얼마 전 홍콩 공항에서 목격한 일이다. 새치기한 중국인..
2015-06-11 15:16
[한상덕의 문화경] 원빈·이나영의 큰 결혼식
어느 시대에나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적 우상(idol)이 만들어지고 존재해왔다. 고대 사회에서는 ‘플루타크 영웅전’이나 ‘삼국지’에 나오는 정복자가 우상이었다. 근대 사회에서는 루소, 니체, 베토벤, 셰익스피어, 에디슨과 같은 생산적 우상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스포츠, 대중음악에 등장하는 스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2015-06-04 16:33
[한상덕의 문화경] 유승준과 스티브 유의 차이점
살아가면서 절대로 금해야 할 말은 “난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가 아닐까 싶다. 점쟁이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면서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건 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니까 말이지. 그럼에도 대중문화 평론은 미리부터 알았다는 듯 논리를 전개할 때가 많다. “삼시세끼가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에 “시..
2015-05-28 13:57
[한상덕의 문화경]아역 스타가 반갑지 않는 이유
“연예인 소질이 있죠, 그렇죠?”라고 묻는 아이의 엄마에게 “글쎄요, 좀 더 자란 후에 판단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답하면 열 명 중 여덟아홉은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본다. 아이의 심사가 목적이 아니라 엄마의 의도가 앞섰기 때문이다. 자녀교육 상담 대부분이 그렇듯 아이보다 엄마의 욕심이 우선한 결과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먼저인 요즘의 상담 풍속 탓도 있다...
2015-05-21 15:50
[한상덕의 문화경] 막말과 잔혹 사이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곤란도 겪지만 얻는 것도 있는 편이다. 얼마 전 목욕탕에서 일어난 일이다. 탕에 있는데 용 문신을 등에 새긴 이가 들어오는 거였다. 덩치가 크고 깍두기 헤어스타일이 더해져 언뜻 봐도 조폭의 이미지였다. 자리를 피하려다가 엉거주춤 앉아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교도소 교화위원을 지내지 않았느냐고. 그렇다고 답하자 구십 도 각도로..
2015-05-14 17:08
[한상덕의 문화경] 수상한 인문학
“교수님 있죠, 요즘 애들하고는 말이 안 통해요.” 13학번 재학생이 올해 신입생을 보고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세상이다. ‘5분 현상’을 기다리지 못하는 심리 덕분에 탄생한 게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가 말이지. 이런 세상임에도 인문학만은 오래전 그대로다. 1975년 개봉된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인문학은 위기였다. 철학도 중 한사람은 군 입대로 도피처를 삼았고, 다른 한사..
2015-05-07 17:01
[한상덕의 문화경] 막말은 코미디가 아니다
“몰랐지! 그 친구 머리카락 말이야. 진짜가 아니고 가발이래.” 말하는 사람이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가발 쓴 당사자의 심사는 꼬일 수밖에 없다. 귀엣말한 사람을 평생 절교할 인간으로 분류하고 싶어진다. 급기야 “역시 인간은 악한 본성을 타고 났단 말이야!”라며 전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물론 대머리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눈..
2015-04-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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