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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드라마 ‘프로듀사’, 그들만의 리그

입력 2015-06-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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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승패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영화라면 망설임 없이 감독을 꼽겠지만 드라마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PD라고 답하기도 작가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하다. 영화는 감독의 영상이 전부에 해당하고 드라마는 작가의 대사가 전체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상예술이고 드라마는 스토리예술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감독이 시나리오작가를 겸하는 경우는 있어도 PD와 드라마작가의 영역은 확실히 구분된다. 물론 캐스팅에서부터 카메라 샷이나 음악 등 연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극작가도 있다.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는 건데 뭘, 이라며 PD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극작가도 있기는 하다. 드라마의 최종 책임자가 PD라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는 스타 작가도 있다.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라는 KBS2 TV 드라마 ‘프로듀사’는 그런 PD들의 이야기다. 당연히 PD의 진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진짜처럼 착각하길 바란다. 공영방송인 KBS를 실명 그대로 노출하고 ‘1박 2일’을 비롯한 자사의 방송프로그램을 소재로 삼는 건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소녀시대와 이승기를 카메오로 등장시키고 남자주인공의 학력을 서울대학교라고 특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PPL(Product PLacement)은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을 말한다. 이미지나 명칭 등을 드라마에 녹여내 시청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상품의 이미지를 심는 광고마케팅 전략이다. 광고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하고 허구가 아닌 리얼리티가 살아야 PPL효과가 극대화된다. 판타지보다 리얼이 훨씬 낫다.

드라마 ‘프로듀사’는 드라마 자체가 PPL이다. 방송사와 방송사의 예능국, 현재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까지 PPL에 포함시킨다. A4용지 하나도 허투로 쓰지 않는 여직원을 등장시켜 KBS의 곤궁한(?) 사정을 대변하고 ‘슈퍼갑’으로 행세하는 기획사 대표를 통해 방송사가 오히려 ‘을’임을 강조한다. 때문에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KBS가 수신료 인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구나. 곧 임기가 만료되는 사장의 연임과도 무관하지 않겠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드라마 ‘프로듀사’는 예능PD와 드라마PD의 조합으로 재미라는 플랫폼에 제대로 정착했다. 여자화장실에 신발을 벗고 들어간 공효진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며 거울을 보고 생긋 웃는 건 예능PD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이다. 극작가의 유쾌한 변신 또한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드라마의 본체인 갈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대본과 지문만으로 재미를 생산하는 작업은 지옥 같은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갈등을 주저리주저리 엮으면 막장이란 소리는 들을지라도 원고를 편하게 메울 수는 있었을 거다.

덧붙여 김수현과 공효진의 스타성을 입증시키는 연기와 함께 아이유와 김종국의 설익은 연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허구’인 드라마가 ‘진짜’처럼 혼돈을 가져왔다. 흥행을 위해 스타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섭외한 느낌이었다.

어리숙해 보이면서 정직한 김수현, 여리지만 강한 척 하는 공효진, 상사에 따라 종교까지 달라지는 순진한 김종국, 까칠하지만 인간적인 아이유…. 하나같이 본인 성격 그대로 드라마에 뛰어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김수현이 분한 백승찬 PD의 학력을 서울대학교 법학과가 아닌 다른 대학이라고 밝혔으면 좋았을 걸. SKY대학 출신이 우글우글하다는 설정 말고 끼 많은 청년들로 바꾸었으면 어땠을까. 대중은 안중에 두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것은 아닌지. 진짜로 수신료를 인상하고 싶다면 대중을 설득하는 게 먼저일 텐데 말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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