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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모로 가도 방송만 타면 된다니까, 이 바보들아!

입력 2015-06-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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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흥부가 횡재를 했다 하여 배가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착한 본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남이라는 관계 설정 탓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논리도 마찬가지다. 

 

악한 본성이 작용했다기보다는 비슷한 조건과 유사한 유전자임에도 뒤지고 있다는 열패감 때문일 것이다. 

 

나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고 농사일도 못하는 사촌이 계속해서 땅을 사들인다면 배가 아파야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요즘 방송가는 ‘쿡방’과 함께 셰프가 대세다. TV만 켰다 하면 못 먹고 살아온 과거를 복수하듯 지지고 볶고 굽는다. 

 

덕분인지 요리를 전공한 적도, 국내조리사 자격증도 없다는 ‘백선생’ 백종원이 최고의 스타 셰프로 불리고 있다. 

 

몇 몇 종합편성채널은 대놓고 백종원의 사업가적 능력을 칭송하며 간접광고를 주저하지 않았다. 3대 만석꾼 집안이어서 맛집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고 경험이 없이도 최고의 셰프가 될 수 있었단다.

내가 아는 음식에 대한 상식은 이렇다.

1. 셰프는 주방장을 뜻하고 주방에서 장(長)이 되려면 조리사들 중에서 최고의 경륜을 지녀야 한다.

2. 조리사는 식품 위생법의 규정에 의한 소정의 면허를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3. 요리는 까다로운 재료 구입에서부터 중노동에 해당하는 설거지까지 끝내야 완성된다.

4.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직위가 셰프다.

결론부터 말하자. 셰프는 연예인이 아니다. 연예인처럼 ‘노출’을 최고로 삼고 ‘노출이 곧 돈’이라는 공식을 쫓아서는 안 된다. 

 

본업인 요리는 뒷전이고 언변과 외모로 승부하겠다면 이미 셰프가 아닌 것이다. 

 

요리하는 과정과 만든 후의 요리가 볼거리로 제공되고 셰프이기에 어쭙잖은 입담이 거슬리지 않고 평균 정도의 외모로도 ‘훈남’소리를 듣는 거다.

드라마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실내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수 있어 제작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밥 먹으며 말하는 게 전부인 탓에 대본을 쉽게 쓸 수 있어서다. 

 

카메라를 동시에 여러 대 설치할 수 있어 영상 중 하나를 앉은 자리에서 선택할 수 있어서다. 

 

밥 먹는 연기만으로 볼거리가 충분해 디테일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작가, 연출, 배우 모두가 편하고 쉽게 작업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밥 먹는 연기를 한 배우가 식사를 따로 챙긴다는 사실이다. 방송국에 따로 찬모가 있어 맛도 있고 보기도 좋은 음식을 내어놓지만 연기할 때 먹는 밥은 밥이 아니라는 거다. 진짜로 밥을 먹는 것과 연출을 계산에 둔 밥 먹는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쿡방’도 마찬가지다. ‘집밥 레시피’라고는 말하지만 몇 몇 재료들은 집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완성된 음식을 한 입 가득 넣고 기절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보조출연자들의 표정 또한 정형화된 리액션을 보는 듯하다. 여의도의 낭인을 뉴스쇼에서 만날 때처럼 왕년의 스타가 보조출연자로 등장하는 것도 당당해보이지 않는다.

쿡방이 대세가 된 건 실수로도 보고 싶지 않은 MBC ‘위대한 조강지처’ 같은 불륜드라마를 방송사들이 여전히 제작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몰입할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 본 듯 만 듯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안주하는 제작 관행 탓이다. 채널이 많아졌음을 핑계 삼아 낮은 시청률에도 만족하는 제작진이 쿡방을 대세로 조작한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중 하나. 프로그램 소재를 위해 스타 셰프를 탄생시켰을 뿐이고, 당연히 진짜 셰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덕분에 대중은 나쁜 교훈 하나를 챙기게 됐다. 모로 가도 방송만 타면 된다니까, 이 바보들아!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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