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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민상토론’을 돌려줘

입력 2015-07-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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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1931년 미국 대통령 후버는 “열흘에 한 번씩이라도 재미난 농담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요즘 한국의 청년 멘토들처럼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몇 달 뒤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이후 히치하이킹 중이던 여행자가 도로변에서 팔을 도로 쪽으로 뻗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대신 표지판 하나를 들었다. 

 

“만약 나를 태워주지 않으면, 대통령선거에서 한 번 더 후버를 찍겠다.” 

 

덕분에 그는 자동차를 얻어탈 수 있었고 전 미국을 횡단할 수 있었단다.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에도 정년이 있는 건지 대략 이해난망이다. 대신에 KBS 2TV ‘개그콘서트-민상토론’만큼은 일부러라도 챙겨보고 있다. 현 세태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메시지에 쉽게 공감할 수 있어서다. 유

 

민상의 말꼬리를 잡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박영진, 대본이 없는 듯한 김대성과 유민상의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을 수식 없이 대입해도 비웃음거리가 되는 현실이 개그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민상토론’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불쾌감과 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쳤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서 문제가 된 14일자 방송을 다시 시청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지적한 감정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청자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유명 작가가 등 떠밀려서 표절을 시인할 만큼 행동적이던 대중이 이번에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풍자의 관점에서 보면 ‘민상토론’은 스스로 포기한 부분이 더 많다. 교묘하고 능률적으로 악을 비난할 수 있는 소재가 널려있음에도 삼가고 있다. 

 

외관과 현실의 차이를 이용해 쉽게 위선을 폭로할 수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있다.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고의로 기피하는 인상이 짙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건 제작자, 연출가, 작가, 그리고 개그맨의 탁월함 덕분이다. 알아서 기는 자들의 집요한 공격을 피해가며 소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다.

이런 우여곡절 때문인가. 6월 28일 방송된 ‘민상토론’은 풍자에서 한 발 더 멀어졌다. 

 

시청자로 분한 개그우먼의 “MB가 그렇게 싫습니까?”라는 대사에서 보듯 살아있는 권력을 피하는 대신 전직 대통령을 소재로 삼았다. 

 

또 여야 대표의 사진을 갖다 놓고 중간자의 입장을 취함으로 ‘슈퍼 을(乙)’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풍자시 ‘덧없는 소망’의 새뮤얼 존슨은 “풍자는 사악(邪惡)이나 우행(愚行)이 문책당하는 시(詩)이고 악의 교정이 풍자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정의에 동의한다면, 풍자는 대상을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해야 한다. 조롱하는 태도와 분개하는 형식을 통해 대상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것이 풍자의 목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언급한 ‘불쾌감’과 ‘혐오감’이 포함돼야 풍자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단, 여기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할 사람을 시청자가 아니라 권력자다.

만약 후버 대통령을 대신해 이 땅의 권력자를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선거법위반으로 고발할 것이라며 으름장부터 놓을 것이다. 

 

아님 앞뒤 가리지 않고 “한 번 더 찍겠다”에 혹해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릴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민상토론’의 작은 풍자에도 발끈했을 것이다. 

 

시청자를 위한답시고 내린 결정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라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대사는 개그맨이 아니라 권력자가 대신해야 한다. 

 

이래저래 화난 국민들에게 풍자라도 제대로 보여줘야 작은 숨통이라도 트일 게 아닌가.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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