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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복면과 반전

입력 2015-07-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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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지역 방송사 기자였다가 명예 퇴직한 친구는 밤에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다닌다. 잘 나가는 연예인도 아니고 지역 TV뉴스에 간간이 얼굴을 비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전무에 가까울 텐데도 자신을 꼭꼭 숨긴다. 그러자 선배가 한마디 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듯 버려야 할 나이가 된 거야.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파리를 버려야 하는 거지. 버리지 않으면 가지가 부러지거든….” 하지만 친구는 “그날이 오면 마스크를 벗고 나타나리라”라며 반전의 칼날을 갈고 있다.

때 아니게 복면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이 봇물이 터지듯 인기다. MBC TV ‘복면가왕’은 복면 속의 인물을 맞추는 예능이 뼈대이고 KBS2 TV 드라마 ‘복면검사’는 복면을 장치로 삼아 주인공의 정의감을 다루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SBS TV 드라마 ‘가면’은 제목이 가면이다. ‘복면가왕’에서 복면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복면을 벗는 것만으로도 반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서다. 복면을 쓴 채 출연하기에 스타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폭 넓게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는 것도 더없는 장점이다. 반전의 특성이 일회적인데 비해 계속해서 반전을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엄청난 경제적 가치에 해당한다.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 복면 덕분에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가수들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또 있다. 복면은 출연자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든다. 남을 덜 의식하게 만들고 내 안에서 자유를 찾게 도와준다. 예능프로 ‘복면가왕’이 음악프로그램으로도 가치를 높인 건 출연자들의 기량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어 서다. 그렇지만 생계형 방청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판정단은 여전히 문제였다. 판정단의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말들의 조합은 옥에 티를 넘어 깨짐이었다. 복면 쓴 사람을 알아맞히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짐작은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고갈시켰다. 또 주례사 같은 비평은 ‘패자부활전’같은 비장한 감동을 희화시켰다. 무엇보다 특정한 장르에 적합한 출연자끼리의 경쟁을 부추겨 가면무도회가 지닌 환상을 척박한 현실로 퇴화시켜버렸다.

반전은 어떤 일이 한 상태로부터 그 반대 상태로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운명의 급전’이란 뜻으로 사용된 용어다. 사건을 예상 밖의 방향으로 급전시킴으로 독자에게 강한 충격과 함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해서 많은 작가들은 반전을 찾아 헤멘다. 우연을 남발한다면 모를까 필연적인 반전을 배치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행복한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불행 쪽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불행을 향하여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행복 쪽으로 완전히 역전되는 반전의 구성 방식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 제약회사의 CF는 누구나 아는 투명 아빠에 관한 스토리다. “아빠!”라는 딸의 부름에 화들짝 웃다가 “엄마 못 봤어?”라는 반전에 시무룩해진 아버지의 표정 위로 “투명아빠들, 피곤하시죠?”라는 자막이 전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단 한사람이다. ‘복면가왕’이 복면을 반전의 도구로 삼은 것 또한 어렵게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복면만큼 쉽고 편한 반전의 장치가 있겠냐만 복면을 최초로 프로그램에 적용시킨 사람은 콜럼부스의 달걀 세우기처럼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참, 앞서 말한 친구가 인생 2막에 어떤 반전을 내놓을지는 모르겠다. 마스크를 벗는 것만으로도 반전의 효과가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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