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한상덕의 문화경

[한상덕의 문화경] 시도 때도 없는 여론 조사의 허와 실

입력 2015-07-23 16:11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50715010003205_1
문화평론가 한상덕

차기 대통령 궁금하지 않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농부에게 “여름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니요”라며 짜증부터 낼 것이다.

 

반면에 겨울날 웅크리고 있는 농부에게 “여름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네”라며 허리를 곧추 세울 것이다.

감정 변화에 대한 또 다른 일화 하나.

 

수 십 년을 함께한 아내도 원수처럼 밉다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나 때문에 저렇게 고생할까?”라며 울컥해지는 게 인생살이다. 

 

하물며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감정이라면 더 물어 무얼 하겠는가. 아침저녁 다를 수 있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게 인간의 감정이다.

대통령보다 무서운 건 여론이라지만 믿을 수 없는 게 여론이기도 하다. 질의 내용이나 당일 응답자의 기분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가씨, 팬티 색깔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꽃미남이 던질 때와 동성(同姓)인 조사관이 물을 경우의 대답은 다를 수 있다. 

 

전자에는 ‘하얀색’이라고 답한 여성이 후자에는 실제 착용한 컬러로 답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해야 정확한 조사가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8050명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500명 정도만 응답한다는 요즘 여론조사 응답률로는 분석은 물론이고 결과 또한 무의미한 일이다. 

 

때문에 프랑스나 미국 등은 여론조사 검증위원회가 따로 있어 응답률 30% 이하인 여론조사는 언론에 공표하지 못한다. 

 

국민을 현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말하면 현행 시청점유율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PC와 스마트폰 및 VOD의 시청시간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화시장에서는 여론에 의존하는 소비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여긴다. 

 

소비하기 전에는 경험할 수 없고, 소비가 일회적인 문화상품의 성격상 “타인의 소비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 효용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한산한 음식점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음식점을 고집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특정 문화상품은 나 홀로 소비하는 것보다는 타인들과 함께 소비하는 것이 재화의 효능을 높인다. 

 

예를 들면 코미디 영화는 VOD로 시청하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관람할 때 웃음이 배가된다. 

 

공연물도 마찬가지다. 한산한 콘서트장보다 만원인 콘서트장이 효용성을 더 높인다. 아이돌 기획사들이 팬 클럽을 동원해 흥행 초기에 집중적으로 티켓을 구매하고 앞자리를 선점해 분위기를 띄우는 건 관객의 호주머니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영화사들이 실제 관객 숫자와는 상관없이 ‘만원 사례’ ‘전회 매진’을 광고하는 것이다.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 영화의 흥행순위, 텔레비전 시청률을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문화상품을 광고하듯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시도 때도 없이 발표하는 뉴스쇼의 목적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먼저 누가 대선주자를 선정했다는 말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정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기만 하면 대통령 후보감인가. 

 

게다가 이런 결과를 두고 비전문가들까지 합세해 분석하는 내용이 최소한의 방송 목표에도 못 미친다. 재미도 없고 정보도 없는 습관 덩어리처럼 보인다.

대중은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전문가의 평가’나 ‘다수가 선택한 소비량’에 의존하는 행위를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시와 때가 있는 법이다. 갓김치도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하지 않던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도 필요한 때에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목마를 때 샘물이 필요하듯 정보를 필요로 할 때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문화평론가 한상덕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