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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셀프 자랑'을 '셀프 디스'라고 우기다니

입력 2015-07-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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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가난은 죄가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어른들은 말했지만 40년 전 중학생의 가난은 죄의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공납금이 밀렸다며 수업하는 도중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래도 공납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쓰되 한 자도 빼놓지 말라고 했고 노트 3장을 빼곡히 채우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는 “반성합니다”를 쓰는 건 알겠는데 정해진 분량을 채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성문을 쓰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다. 반성문은 내용보다는 글자수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 공표하는 반성문은 줄기찬 자기 반성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친구들의 반성문을 대필하기도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법원에 제출하는 남의 반성문을 대필한 적도 있다. 작가로서의 싹수를 중학생 때부터 보인 셈이다.

셀프 디스가 물의를 빚어 도중하차한 코미디언들의 재기를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불법도박으로 물의를 빚었던 개그맨 이수근은 tvN ‘SNL 코리아’ 김병만 편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셀프 디스로 재기의 변을 대신했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개그맨 장동민은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라는 셀프 디스로 자신의 입장을 은유했다. 불미스러운 전력이 있는 코미디언 황기순과 개그맨 신동엽은 요즘에도 셀프 디스를 개그의 소재로 삼고 있다.

자신(self)과 무례(disrespect)를 줄여 만든 셀프 디스는 자신의 치부나 과오를 오히려 개그의 소재로 사용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신조어이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에 가깝고 자학하는 언동이 따라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밝히되 자기변명을 최대한 멀리해야 하고 무감동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에서 시도하고 있는 셀프 디스는 이런 기본적인 틀을 무시하고 있다. 진짜 잘못은 숨겨둔 채 셀프 자랑부터 앞세우고 있다. 물론 코미디언의 ‘셀프 디스’와 정치인의 그것이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특성에 맞는 내용이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셀프 디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웃음은 포기하더라도 비웃음을 사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홍보용이라며 정작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한 홍보란 말인가.

코미디를 막는 최고의 방해물은 잘난 사람의 ‘셀프 자랑’이다.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내 친구는 대통령’이 각종 SNS사이트를 달구며 인기몰이를 이어가는 건 평균보다 못한 사람이 오히려 잘난 척 하며 친구인 대통령을 골탕 먹이기 때문이다. 사자가 원숭이를 괴롭히면 비극이고 원숭이가 사자를 괴롭히면 희극이 되는 이치와 같다.

지난 주 군부대로 독서코칭 강의를 나갔다가 커다란 돌덩어리를 안고 돌아왔다. 병사들에게 제대 후 계획을 물어보니 대부분이 알바를 하겠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 남자 중학생들도 진로에 대한 물음에 알바라고 답했는데 말이다.

이런 시국에 제1야당의 국회의원들이 셀프 디스를 하는 건 용어대로만 한다면 나쁘지 않는 선택일 수 있다. 홍보 전략의 일환이든 대오각성의 의미이든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에 이미 선보인 ‘셀프 디스’의 내용과는 다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역구에만 올인해서 죄송하다거나 남의 말을 너무 잘 들어 잘못이었다는 투의 후안무치는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셀프 디스’를 긍정적으로 본다며 ‘셀프 자랑’에 열을 올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홍보위원장이 아니어도 불쾌지수가 높은 한여름이다. 투표권이 없는 중학생도 하지 않는 ‘셀프 자랑’을 ‘셀프 디스’라고 우기다니. 국민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참으로 딱하신 분들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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