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한상덕의 문화경

[한상덕의 문화경] 미안하다, 청년들아!

입력 2015-08-27 10:44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50820010003942_1
문화평론가 한상덕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 문구를 기억하시는지. 이 문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진다. 자주 웃으면 헤프다고 욕먹고, 어쩌다 눈물을 보여도 사내답지 못하다고 핀잔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방귀를 소리 내어 뀌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지만 사내의 눈물은 방귀 이상으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울고 웃는 인생살이라고 해놓고는 감정조차도 사치로 여겨지던 시절을 보냈다.

그때와는 달리 해외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이 풍부해진 요즘이다. 다시 청년시절로 돌아가 독하게 마음만 먹는다면 학벌이나 스펙에서 뒤질 것 같지도 않다. 연애도 제대로 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것도 맘대로 사고 싶다. 그럼에도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오락가락하는 세상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땐 군사독재정권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놓고 항거하는 어른들이 계셨다.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과 ‘오늘보다 내일’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선다면’이라는 꿈이 있었고, 흉포한 제도와 악인이 있었지만 또래들 중에도 이에 맞서 싸우는 의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의 눈에는 사악한 무리들만 보인다. 정의를 말하지만 부패를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국민을 앞세우지만 제 자식 취업이 먼저다. ‘아프니까 청춘’은 가진 자의 위선이고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스펙을 높이라고 해서 스펙을 올리면 눈높이를 낮추라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청춘이니까 아플 수밖에 없단다. KBS ‘개그콘서트-민상토론’의 유민상이 선택을 못하듯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댈 언덕이 없다. ‘젊은 세대는 진보, 나이든 세대는 보수’라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관객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극장에서 비극을 감상하는 까닭은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다.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속에 쌓아놓았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을 해소하고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간 영화 ‘베테랑’의 극 중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내가 이 수갑 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라고 큰소리치지만 영화는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 덕분에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거대 악일지라도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확신 덕분에 살아갈 통로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은 영화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친구를 시켜 재력가를 살해한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여기에 가세해 종합편성채널 토크쇼에 출연해 “장래가 구만리 같은 정치인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단언하던 자칭 타칭 진보적이라는 문화평론가도 있었다. 1억원짜리 수표가 여동생 전세금으로 사용됐다는 증거가 있음에도 “사법 정의 죽었다”며 상복을 입고 구치소로 들어가는 전직 국무총리 또한 무죄임을 주장하고 있다.

감옥에 가는 사람은 그가 잘났던 못났던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정상적인 사고를 못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꽃을 건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꽃 하나를 가지고 말을 섞고 싶지는 않지만 C급 갱스터무비에서도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조국을 ‘헬(지옥)조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고 분노하지만 카타르시스를 방해하는 것 들만 가득한 세상 탓이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자발적으로 전역을 미루는 장병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저 미안할 뿐이다. 미안하다, 청년들아!

 

문화평론가 한상덕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