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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포상과 운수

입력 2015-09-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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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1970년대의 이야기다.

정윤희·유지인·장미희 트로이카를 이을 차세대 톱스타로 그 명성이 자자하던 미스 롯데 출신의 여배우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소문과 함께 재벌 총수와의 관련설이 있었지만 믿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꽃같이 예쁜 여배우가 뭐가 아쉽다고.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롯데가(家)의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않고 그 여배우가 등장하고 있다. 


공자도 “의롭지 못한 부와 귀는 나에게 있어서 뜬 구름과 같다”고 해놓고는 “부귀를 구할 수 있다면 마부 노릇이라도 하겠다”라고 했다. 

 

여배우가 돈을 좋아한 건지 사랑을 선택한 건지는 형사 콜롬보가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른 일곱 살 연상인 재벌의 세 번째 부인이건 아니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매체들이 ‘슈퍼 신데렐라의 탄생’ 어쩌고 해가며 그녀를 수식하는 건 천박함의 극치에 해당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돈이 전부’라고 계몽하는 듯하다.

전역 연기 결단을 내린 제대 말년병들에 대한 매체들의 칭송 또한 과하면 모자랄 수 있다. 

 

국민적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미담이지만 홍보용이나 특정한 이익을 위한 들러리로 이용되는 느낌도 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짐작하건대 병사들의 선택은 훗날의 포상을 예측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니던 대학으로부터 졸업 시까지 장학금을 받고, 대기업 총수로부터 취업을 선물 받고, 대통령을 직접 만나길 바란 건 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덧붙여 당시 제때에 전역한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애국심에서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복무 중인 장병들도 똑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賞)제도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특정 행위에 보상을 주는 일종의 유인 체계이다. 

 

제도가 내세우는 기준에 따를 경우에 한하여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심사결과에 따라 상을 준다. 해서 합리적인 행위자는 상의 가치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면 상의 기준에 걸맞은 행위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배 부른 포상은 불평등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함께 배고픈 ‘헝그리 사회’는 참을 수 있지만 불평등 때문에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는 ‘앵그리 사회’를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상은 인간의 행위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에서 이루어지도록 유인하는 보편적인 제도이다. 수상자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문화적 시각으로 보면 상업적 이익만을 고려하여 제작하는 양태를 순화시키고 문제의식을 중요시하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순기능을 맡는다.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한다.

지구촌 최대의 영화 축제로 불리는 아카데미 영화제의 수상자는 약 60달러에 불과한 트로피를 받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상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까닭은 트로피를 받았다는 사실이 곧바로 흥행 수익으로 연결될 정도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유명 브랜드나 KS 마크가 상품의 질을 보장하듯 소비할 만한 양질의 상품임을 공인받는다.

상은 대중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먼저 같은 직종의 동료들이 부러워해야 하고 같은 행위가 반복됐을 때도 동일한 포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운이 좋았다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거나, 매체의 호들갑이 포상으로 연결된다면 영광보다는 비웃음과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포상이 일회적이라면 노력하는 자들을 급감시키는 배경이 된다.

복권을 사기위해 아침부터 줄지어 기다리는 청년들을 상상해보라.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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