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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멜로드라마가 되려면

입력 2015-09-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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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자식은 못 이긴다”라는 말만큼 설득력이 있는 말이 있을까. 남의 일 같지 않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식의 혼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필이면 마약한 남자와의 결혼이라니. 32년간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딸이 아니던가. 아버지의 직위랑 상관이 없더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무릇 남녀 간의 사랑에는 장애가 있는 법이다. 신분상의 차이, 빈부의 격차, 학력의 차이, 종교적 문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벽을 뚫은 사랑이라야 감동이 배가된다.

여기에 더해 하늘처럼 믿었던 남편이 전과자였다거나, 존경하던 아버지가 살인자였거나, 요조숙녀인 줄 알았던 아내가 창녀 출신이라야 멜로드라마가 성립한다.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와 같은 원수 간의 사랑이라도 비극이라는 이름을 빌린 멜로드라마가 된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한 준재벌인 남자와 유력 정치인의 딸이자 교수인 여자의 ‘러브스토리’는 멜로드라마의 소재가 될 법한 데도 지질하다는 인상이 짙다. 덕분(?)에 차기 대권 주자를 노리는 아버지를 해하고자 하는 자들의 음모설 또한 흥행요소로 작용할 것 같지가 않다.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은 법. 악한 자가 있으면 선한 자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한 통속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권선징악의 결말이 보이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줄거리가 없어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수도 없고,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이 없어 통속극으로도 부적합하다.

“마약을 했고 법의 심판을 받아 풀려난 후 결혼, 그리고 끝”이라는 전개는 멜로드라마는 물론이고 막장드라마로도 적당하지 않다. 발단, 전개, 결말이 단선적인데다 갈등이 있을 만한 곳에서까지 갈등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다. 감동은 고사하고 집단적 스트레스를 주기에 딱 알맞은 내용이다.

대신에 다음과 같은 전개가 이루어진다면 멜로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교수인 딸이 마약한 남자를 사랑하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이 교수직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교수라는 자리에 딸의 처신이 올바른 건지에 대해 갈등을 겪는다. 서른을 갓 넘긴 딸의 입장에서야 교수 자리든 부자 남편의 아내 자리든 모두 갖고 싶겠지만 아버지는 읍참마속(泣斬馬謖·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함)의 심정이 된다.

또 정재계를 아우르는 집안의 혼맥에 충청권 혼맥이 추가됐다는 축하성 보도 이후에 곧바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고 울먹이며 말해야 한다.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사실이 드러난 후에 “딸 이기는 부모 없다”라고 말하는 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사위의 잘못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추상같이 벌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벌을 청해야 한다. 그래 놓고는, 딸에게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아버지임을 만천하에 고백해야 멜로드라마가 될 수 있다.

대중은 사건이 수사과정에서 축소되었는지, 재판부가 상당한 재량을 발휘해 형량을 줄였는지에 대한 관심은 덜하다. 이미 단련되어온 결말인 탓이다. 그것보다는 허구를 능가하는 팩트로 인해 짜증이 난다. 마약한 사람을 사위로 맞이한 장인 또한 나쁜 것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하는 건 아닌지, 못된 부자들처럼 집행유예를 무죄처럼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를 의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막장드라마도 꺼리는 소재를 사회 지도층들의 일상에서 만나고 있다. 말들은 무성(누군가를 빗댄 표현은 절대로 아니다)한데도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조차 진영논리에 함몰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무성한 말들이 선과 악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참말로 높은 사람답지 못한 높은 사람들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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