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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노인의 지혜와 연륜, TV 예능 빛내다

[조은별 기자의 K엔터+] 6080 지혜·연륜 무기로 예능판 장악

입력 2022-03-22 18:30 | 신문게재 2022-03-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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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희
배우 나문희 (사진제공=JTBC)

 

“안녕하세요. 저 나문희예요. 노래를 하려고 무대에 선 건 처음입니다. 많이 떨리고 걱정이 되는데 이걸 재미로 삼아서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노(老)배우 나문희(81)가 무대에 올라서자 카메라는 바짓단을 움켜 쥔 두 손을 포착했다. 60여 년간 성우로, 연기자로 활동했던 대배우도 노래하기 위해 올라선 첫 무대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근 장안의 화제라는 JTBC ‘뜨거운 씽어즈’의 한 장면이다. 

김영옥
배우 김영옥 (사진제공=JTBC)

 

OTT와 유튜브에 밀린 TV 예능 프로그램이 노인의 지혜와 연륜으로 회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첫 방송된 ‘뜨거운 씽어즈’는 첫 방송 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나문희 영상 조회 수가 100만회에 육박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 4.8%를 기록한 첫 방송에서는 나문희를 이 프로그램으로 이끈 배우 김영옥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주목받았다. 

‘뜨거운 씽어즈’는 각계각층의 시니어들이 합창단을 꾸리는 과정을 그린다. 나문희와 김영옥 외에도 권인하, 우현, 서이숙, 김광규, 장현성 등 50~60대 장년층이 주축이다. 45~6세인 방송인 전현무와 연기자 박준면이 막내다. 프로그램은 각자의 분야에서 한 획을 이은 장년들이 서툰 음성으로 더듬더듬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에 집중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장년층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얘기하는 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분석했다. 


◇‘꽃보다 할배’·‘윤스테이’ 이어 ‘같이 삽시다’·‘진격의 할매’ 등 시니어 예능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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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출연진 (사진제공=KBS)

 

한때 젊은 세대에게 ‘틀닦’(틀니를 딱딱거리다의 준말로 노인을 이르는 속어), ‘꼰대’로 치부되던 황혼의 스타들이 TV예능 주인공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소재도 다양하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옛 영화를 회상하는 토크부터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과 상담, 동년배 노년층이 공감할 만한 스포츠 예능까지 각양각색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배우 박원숙, 김영란, 김청과 가수 혜은이가 출연하는 KBS ‘같이 삽시다’는 시즌3까지 제작되며 순항 중이다. 평균연령 68세의 여배우와 여가수는 카메라 앞에서 가식을 벗고 시원하고 솔직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화려한 은막의 베일에 쌓여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인생후반전에 접어든 노년의 연예인들이 평범한 시청자들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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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S ‘진격의 할매’ 포스터 (사진제공=채널S)

 

채널S ‘진격의 할매’는 배우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가 시청자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하는 콘셉트다. 거침없고 화끈한 입담의 김영옥, 푸근한 이미지의 나문희, 돌직구 조언을 던지는 박정수가 진로, 연애, 결혼, 사회생활 등 각양각색의 고민을 듣고 위로를 전한다. 프로그램의 막내인 박정수는 제작발표회 당시 이 프로그램의 차별화에 대해 “(MC들이) 나이가 많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상담자들이 노년의 지혜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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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갓파더’의 한장면 (사진제공=KBS)

 

KBS ‘갓파더’는 유사가족이라는 이색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방송 초창기에는 배우 이순재와 농구감독 허재, 배우 주현과 방송인 문세윤이 부자로 호흡을 맞췄다. 출연진 연령층이 대폭 젊어진 최근에도 배우 김갑수와 가수 장민호가 ‘가상부자’로 색다른 재미를 안기고 있다. 부자 관계가 유난히 어색한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갓파더’처럼 아버지와 여행을 가고 싶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방송가가 시니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나영석PD가 연출한 tvN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얻으면서 부터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네명의 연기자들이 여행을 다니며 나누는 삶의 지혜에 젊은층이 환호했다. 나영석 사단은 이후 배우 윤여정을 내세운 tvN ‘윤식당’ ‘윤스테이’에 이어 최근에는 윤여정, 이서진과 함께 미국LA에서 ‘진격의 여정’을 촬영 중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만한 인지도와 카리스마를 지닌 노년층 연예인이 적은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배우 김영옥은 ‘뜨거운 씽어즈’와 ‘진격의 할매’외 JTBC ‘유쾌한 상담소’ 까지 3개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 중이다. 이순재, 박근형, 백일섭 등도 지난 1월 종영한 MBN ‘그랜파’에서 그대로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MBC ‘놀면 뭐하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오영수와 토크를 통해 그의 진가를 확인한 것처럼 여타 예능 프로그램도 새로운 노년 캐릭터를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노년의 삶은 그 자체로 자산이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이 조금만 발품을 팔면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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