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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산업 내리막 속 89년 명성 잇는 '스트랜드'의 경쟁력은

[권예림의 SNS로 보는 글로벌 이슈] 美 뉴욕 명물서점 '스트랜드' 이색 입사 관문

입력 2016-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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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물어보세요(Ask Us).”

미국 뉴욕의 대표 예술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89년 전통 명물 서점 ‘스트랜드(Strand)’ 한 쪽 벽면의 빨간 표지판에는 이 같이 적혀있다. 이 서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라는 얘기다. 이 곳 직원들은 전문 사서만큼 수준이 높고 책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모두 입사 방식과 관련이 있다.


◇스트랜드의 첫인상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스트랜드 서점 입사에 지원한 제니퍼 로바우씨가 겪은 일을 다뤘다. NYT의 기사를 로바우씨의 말로 재편집해봤다.

“올 봄 스트랜드에 입사 지원을 하기 위해 직접 뉴욕으로 날라갔다. 전설의 로커 패티 스미스와 작가이자 비평가인 뤽 산테 역시 스트랜드 출신이라는데…. 오클라호마 출신인 난 잠시 뉴요커가 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스트랜드의 첫인상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맨하탄의 브로드웨이와 12번가 모퉁이에 빨간 바탕에 하얀색 글씨의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간판은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4층짜리 서점 건물에 첫 발걸음을 뗐을 당시 그 떨림은 무척 또렷했다. 입사 관문인 ‘퀴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올라가 자리에 앉자마자 퀴즈 문제를 한 번 쭉 훑었다. 퀴즈 방식은 간단했다. 책 제목과 저자 맞히기다. 그러나 난이도는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러시아 문학과 창작 학위를 가지고 있는 나로선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첫 문제 역시 무난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ior)의 저서 ‘제2의 성(Le Deuxieme Sexe)’. 한 번에 맞췄다.

그러나 다음 퀴즈로 넘어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며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한 주에 평균 60명이 입사 지원용 퀴즈에 도전하지만 합격 인원은 기껏해야 1~2명에 불과하다. 과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Strand_Bookstore
미국 뉴욕의 대표 예술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89년 전통 명물 서점 '스트랜드(Strand)'.(사진=위키피디아 캡처)

 

 

◇3대 이어지고 있는 스트랜드

스트랜드는 1927년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아들 벤자민 베스(Benjamin Bass)가 영국의 유명한 출판거리 이름을 따 설립한 중고서점이다. 지금은 아들인 프레드와 손녀 낸시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스트랜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이 서점 슬로건은 ‘8마일 책(8 miles of books)’ 에서 ‘18마일 책(18 miles of books)’으로 바뀌었다. 지난 2005년 서점을 확장한 덕분이다. 이 슬로건에는 스트랜드의 책들을 줄지어 세우면 18마일(29km)이나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뉴요커들이 이 곳을 18마일 서점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트랜드는 헌책방으로 시작했지만 약 25년 전부터 신작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고객 요구에 맞춘 변화로 반응은 긍정적이다. 특히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뉴요커,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신간, 중고서적뿐만 아니라 희귀본, 절판본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해 250만권의 책이 스트랜드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또한 우리나라 교보문고 내의 핫트랙과 같이 문구 등 각양각색의 물품을 판매하는 코너도 추가됐다. 이 곳엔 스트랜드 자체 브랜드 모자부터 몰스킨 공책까지 다양하다.

직원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한 변화도 있었다. 중앙식 에어콘이 들어온 건 불과 10년 전. 책으로 둘러싼 후텁지근한 공간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쾌재를 불렀다.

 


◇퀴즈, 스트랜드의 생존 비결

지난 수십 년간 전세계적으로 수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스트랜드도 경쟁 서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것을 지켜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시의 대표 독립 서점으로 꿋꿋이 살아남은 이유는 바로 ‘퀴즈’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뿐만 아니라 출판업자와 논평가, 책 판매자까지 가장 많이 찾는 서점의 위엄이 돋보인다.

창업자 베스는 1970년대 도입한 퀴즈 채용 방식에 대해 “당시 책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직원을 고용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약 30년 동안 베스가 퀴즈를 출제했지만 2005년부터는 스트랜드의 매니저 카슨 모스가 퀴즈 출제자로서 중책을 맡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모스는 “퀴즈를 낼 때 현대화, 다양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힌트를 줬다.

1970년대 이후 퀴즈 포맷은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있다. 10개의 책 제목과 10명의 저자, 1개의 까다로운 문제로 구성된다.

지난 40년간 대다수는 최종 관문인 ‘문학 매칭 퀴즈(literary matching quiz)’에서 고배를 마셨다. 스트랜드 명성이 높아지면서 퀴즈 수준도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관계자 말로는 퀴즈가 일종의 적성검사 역할을 한다.

이 곳에 근무하는 약 200명의 직원들은 업무를 불문하고 스트랜드가 제시한 ‘퀴즈’ 입사관문을 당당하게 통과한 사람들이다. 서적 판매업자나 창고 직원도 예외 없다.

스트랜드의 채용 방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쁜 현대인들에게 책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권한다. 또 스트랜드가 ‘퀴즈’라는 아이덴티티로 생존력을 확보했다는 것은 기업들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이 된다.

권예림 기자 limmi@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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