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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택시 안과 밖 '역지사지'

<시니어 칼럼>

입력 2022-09-22 14:20 | 신문게재 2022-09-2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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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선 명예기자
이무선 명예기자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바뀌어도 바로 뛰어나가면 안된다. 빠른 속도로 진입하던 버스나 택시가 멈추지 않고 달려 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노란불 신호는 ‘멈추시오’가 아니라 ‘엑셀을 더 밟으시오’라는 뜻으로 읽히는 것 같다. 운전할 때도 그렇다. 진입로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택시가 쌩하고 와서 맨 앞자리에 차 머리를 들이민다. 열 받는다. 그런데 그런 울컥하는 마음이 막상 내가 승객으로 택시에 탔을 때는 달라진다. 노란 불이 들어왔다. 기사분이 속도를 줄이는 기미가 보이며 입이 들썩거리려 한다. “아저씨 밟아요!” 옆차선이 비어있는데도 옮기지 않고 천천히 갈 길을 가면서 라디오 사연 청취에 심취해 있는 기사를 만나도 속이 터진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속이 타들어가기 때문이다. 요금 올라가라고 일부러 그러는거 같아 피해의식까지 생긴다.

신기하게 내가 택시 밖에 있을때는 그리 욕을 해대던 행태인데 차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심정이 된다더니 택시 밖에 있을 때는 소소한 법규위반을 준열히 비판하다가 안에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나를 위해 법을 어겨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돈을 들여 택시를 탄것이니 빨리가야 돈을 적게 낼것이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 큰 차이다. 한번은 기대한 수준 이상으로 성의껏 밟아주시는 기사분에게 조금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기사분이 “맞아요. 나도 마음이 급하기는 하지만 조금 천천히 가면 뒤에 계신 손님이 아우성이예요. 일부러 요금 더 나오게 하려고 한다고 의심을 하세요.”

많은 기사들이 준법 운전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의 근본은 승객들의 조바심, 본전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이용하는 순간 가격대비 최대한의 효용을 얻으려는 것은 타당한 경제본능 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직 ‘현재의 나’만을 중심으로 보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안에 있을 때는 밖에 있는 누군가는 내가 운전할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함과 위험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그러니 준법정신과 교통법규는 날로 엄격해지고 다른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은 대중교통 수단들은 마치 게임기 속인양 레이싱을 하는 양극화가 심해진다.

택시를 둘러싼 두 개의 시선은 결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서로가 상황에 따라 사실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서 있는데서 어떻게든 최대의 이득을 얻으려고 일방적인 주장을 할 뿐이다.

그러니 격차는 점점 더 멀어진다. 사실 어제든지 나도 그 자리에 갈 수 있는데 그 상황일 때만큼은 평행선을 달리는 대척점인 양 행동한다.

그 격차를 줄이는 길은 안에 있을 때 밖의 사람을 밖에 있을 때는 안에 있는 이의 심정을 공감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본전 욕심을 잠시 줄이고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마음, 건널목을 건너고 운전을 할 때 양보하는 마음 말이다. 그래야 빈차일 때는 지나치게 천천히 가서 흐름을 끊고, 손님을 태웠을 때는 폭주를 시작하는 택시의 무한 이기주의가 줄어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택시는 우리 사회 이기주의의 바로미터다.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이익단체는 “그게 왜 우리여야 하냐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이익단체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자성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서비스업이 자성조차 없이 소비자를 호구로 만드는 대체자가 없는 시장은 역동성을 가지기 힘들다.

모든 국민이 교통안전에 노력하여 명랑한 사회를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이무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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