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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드러난 '버닝썬' 외에도 암적인 범죄에 '발레리나'를 보내고 싶다

[#OTT] 넷플릭스 '발레리나' 우아한 핏빛 복수
전종서 "영화적으로나마 카타르시스 느끼길"

입력 2023-10-11 18:30 | 신문게재 2023-10-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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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역 전종서, 친구를 죽음으로 몬 최프로를 쫓으며 아름답고 무자비하게 복수에 나선다.(사진제공=넷플릭스)

제발 이런 복수가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새벽 2시. 장(?)이 열리는 잠수교 밑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야구 모자를 쓴 학생, 불량해 보이는 양아치까지 수상한 남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든다. 이들이 주문한 물건은 DM으로 주문받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초밥 오마카세 세트다. 

옥주(전종서)는 그들이 횟집봉투를 받고는 간장만 챙기고 총총 사라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다. 이들이 손에 쥔 간장은 흔히 보는 붕어모양의 플라스틱 튜브지만 뭔가 수상하다. 지난 6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발레리나’는 제목이 주는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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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미묘한 감성을 우정이란 이름으로 치환시킨 ‘발레리나’의 한 장면. ‘드라이브 마이 카’의 박유림이 스산한 옥주와 반대되는 따스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신다.(사진제공=넷플릭스)

 

경호원 출신 옥주는 우연히 중학교 동창 민희(박유림)를 만나 삶의 기쁨을 느낀다. 이도 잠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에는 “너라면 내 죽음을 복수해 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의문의 아이디가 적혀 있다. 그렇게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를 쫓으며 아름답고 무자비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겉으로는 솜씨 좋은 셰프인 최프로는 타고난 피지컬과 고급차로 여자들의 환심을 사는 사이코패스다. 친구의 전화에 낚시를 제안하지만 그것조차 ‘사냥할 여자를 찾는 주말 이벤트’를 뜻하는 은어다. 직업적 경력을 살려 최프로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옥주는 기꺼이 그의 미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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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전종서, 김지훈, 박유림의 신선한 앙상블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에서 전체 2위, 총 19개국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몰래 최프로의 집에 잠입한 그는 비밀 캐비넷에 가득한 SM플레이를 담은 불법 파일을 발견한다. 자신이 만난 여자들에게 물뽕을 먹이고 강제로 동영상을 찍어 협박을 하고 노예로 삼는 게 그들의 방식. ‘단 한번만 손님을 받으면 파일을 삭제해 주겠다. 너는 나에게 나름 특별한 여자였다’며 그루밍을 일삼는 그의 피해자는 수십명에 이른다. 

일부러 서울 근교의 불법 모텔에 들어간 옥주는 와인에 탄 약을 마신 척 하고 최셰프를 공격하지만 그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과거 김두한 때부터 내려온 범죄 조직인 그들은 마약과 여자들을 팔고 타락한 경찰들과 손잡고 법의 심판을 피한 채 영업을 하고있는 범죄 소굴이었다. 조직의 보스(김무열)는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고 “3일 안에 여자를 잡아오라”고 엄포를 놓는다. 자신 몰래 야동을 찍고 물뽕을 시내에 풀어 개인 사업을 한 최셰프를 응징하고 싶지만 친구이기에 눈감아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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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만의 독특한 무드를 완성시킨 미술은 ‘악인전’ ‘밀정’ 등의 작품에서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김민혜 미술감독이 맡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발레리나’는 전작 ‘콜’과 ‘몸값’을 통해 확고한 세계관을 가진 이충현 감독이 상업적으로 세련되게 완성한 작품이다. 현실적인 옥주와 달리 ‘지구의 주인은 물고기’라며 유독 바다의 삶을 동경했던 민희는 죽어 바닷 속에서 발레리나로 가장 아름다운 무대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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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빌런과는 차별이 다른 비주얼 쇼크를 보여준 김지훈.(사진=넷플릭스)

 

드러내놓고 성적인 모욕감을 주거나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대신 카메라를 배우 머리 위로 올려 모든 사건을 관망하게 만드는 카메라 워크도 인상 깊다. 발레리나, 피팅 모델, 여고생 등 촬영 당시 피해자의 직업이 USB제목으로 적혀 있는 화면은 옥주의 시선을 아주 잠시 따라갈 뿐이다. 대신 분노에 찬 여성의 절규를 가감없이 담으며 핏빛 복수를 예고한다. 

주인공이자 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액션을 춤사위로 표현한 전종서의 연기도 인상 깊다. 죽은 친구의 발레복을 흡사 수의처럼 입고 비장하게 복수에 나서는 모습은 핑크빛 공단만큼이나 찬란하고 튀는 피의 붉은 색만큼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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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유일한 웃음을 책임지는 건 김영애와 주현이 보여주는 연륜이다. 총포사 주인 역할로 옥주의 복수를 돕는 모습이 코믹하게 전개된다.(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의 엔딩, 죽다 살아난 최셰프의 대사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발악하며 죽거나 잔인하게 거세 되는 대신 “내가 이렇게 죽게 되면 그곳에서도 네 친구한테 살아 생전에 했던 짓을 똑같이 하겠다”며 절규하는 것. 자신의 역할인 옥주를 넘어 같은 여성으로 전종서가 짓는 표정은 분노도 악도 저주도 아닌 비장함이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표정으로 내 뱉는 옥주의 마지막 대사는 ‘발레리나’를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유린되고 있을 피해자들의 눈물과는 별개로 법의 심판을 받는 가해자가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 작품의 엔딩은 꽤 의미심장하다. 불법 장부에 꼼꼼히 적힌 구매자 목록을 들고 또다른 복수에 나서는 옥주의 모습에 물개 박수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전종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온 스크린 행사에서 “현실적으로 그렇게 처벌이 될 수 없는 걸 영화상에서 통쾌하게 해보고 싶었다”는 남다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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