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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거짓말하는 사람

입력 2024-04-29 14:36 | 신문게재 2024-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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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넷플릭스 시리즈물 ‘삼체’를 보면 외계인과 이들을 추종하는 인간의 대화가 나온다. 외계인은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믿을 수 없으며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 인간은 뭐라 대꾸도 못하며 난감해한다. 거짓말은 인간 본연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리지만 인간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동시에 그런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낸다. 거짓말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할 수 있음에 대한 수용과 불수용의 문제인데 과학기술만 앞선 외계인의 도식적 접근으로는 인간의 그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늘 긍정적입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건강하다고 보지 않는다. 정신분석적으로는 ‘분열적’이라고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며 움직이는데 어떻게 늘 긍정적일 수 있을까. 솔직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상황이라는 게 있는데 어찌 그리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뢰하기 어렵고 그 확신이 클수록 문제가 심각하다.

상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어느 한면만 보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부정적인 것도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단점이나 미숙함, 비루함 같은 것들도 볼 수 있고 인정하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다. “아내는 대단해요” 식의 추앙이나 “남편은 재앙 그 자체예요” 식의 극단적인 부정적 관점은 실체에서 멀어진다는 점에서 결국 한 가지다. 실제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거나 보이는 것 위주로 파악하면서 어느 한면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가두어버리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의 복합적이고 미묘한 측면을 갖추지 못한 평면적인 묘사는 실체에 다가가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저항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자녀가 쪽지에 거칠게 구는 친구를 ‘똥꼬’ ‘똥방구’라고 적어 친구 사물함과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며 상담을 신청한 부모가 있었다. 평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왔는데 친구에게 나쁜 말을 했기에 아이를 심하게 혼냈다고 한다. 부정적인 단어를 나쁜 말이나 욕이라고 단정하고 어떠한 경우도 긍정적인 말만 사용해야 한다는 부모의 경직된 태도는 거의 병리적 수준이었다. 어린이집에 물의를 일으켜 자신들의 체면을 구기게 된 데 대한 당혹감과 방어에만 집중돼 있었고 왜 그랬냐는 물음에 입을 다무는 아이의 행동 변화만을 원했다. ‘삼체’의 외계인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옳지만 잘못할 수도 있음을, 맞지만 거짓될 수도 있음을 허락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니 믿을 수 없는 나쁜 사람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거짓과 진실을 오가며 궁극의 세계를 향해 성장해 나가는, 규정하기 어려운 다층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인간을 벌레라고 말하며 통제하는 ‘삼체’의 외계인처럼 서로를 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배려 없는 솔직함보다 배려하는 거짓을 선택하는 존재다. 거짓과 실수투성이가 본모습이다.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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