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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보수정치의 재건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

입력 2018-07-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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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선
이주선 동국대 겸임교수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붕괴되고 나서 좌파들이 주축인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그 후 약 1년여가 지난 6월 초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권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끝났다. 일부에서는 이제 보수 세력이 몰락했다고도 하고, 보수 이념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당사를 팔고 축소하는 등 돌아선 민심을 보고 임기응변적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당을 해체하고 보수 세력의 판을 다시 짜는 것이 바람직하며, 덕망 있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거나 더 젊은 세대들을 내세워 당을 정비해야 한다는 등, 백가쟁명 식 논쟁이 진행 중이다.

대개 대참사에 가까운 패배가 발생하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나오고 있는 대응책들은 전술적인 측면의 이야기들뿐이기에 궁극적으로 장기 전략이 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을 가지지 못한 그 어떤 전술적인 변화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겪었던 좌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설사 전투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되찾는다고 해도 그 정권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방법론보다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이 항상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의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 가운데 가장 큰 흐름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기업주의에 기반하여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통령이 위반하고,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가진 권위주의적 사고와 방식을 동원해서 국민이 아니라 정권 자체의 이해에 몰두함으로써 해방 이후 피땀으로 일궈온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데 있었다는 것을 보수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수 세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첫째, 박근혜 정권의 붕괴 원인이 된 절차적 민주주의를 앞으로 어떻게 헌법적 기본질서에 맞게 공고히 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명백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보수 세력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문제가 보수 세력의 핵심 문제이자 정체성인 것처럼 행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분립에 입각한 공권력의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지금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헌법 개정이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핵심 아젠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좌파들이 지금 추구하고 행하고 있는 행태들이 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지를 명백히 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왜 반자유민주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가지는지를 확실히 하여 이에 입각한 전투를 치열하게 벌여 나갈 수 있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수호가 국가적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핵심임을 천명하고, 이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안보와 통일정책을 수립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은 지금의 남북 대치국면을 관리하는 축일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설명하고 이를 공고히 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기본 질서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안보전략을 가지는 것은 많은 국민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열강이 각축하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피땀 흘려 일군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수호하기 위해서 북한문제가 해결되고 동북아 집단안보 질서를 통한 공영의 환경에 조성되기 전까지 이것이 왜 우리에게 확고한 우위를 가진 안보전략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를 공고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략을 마련하는 것에 여야를 막론한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의 정부 대 정부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양 국민의 공고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전술적 토대를 강력하게 구축하는 정치적, 외교적 방략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경제의 축을 담합구조로부터 시장경쟁으로 이행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바로 이 부분에서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우리 사회의 담합구조는 지금부터 20년 전인 외환위기 발발 이후 즉시 정리되었어야 했으나 오히려 확대된 형태로 고착된 상태에 있다.

즉 외환위기 이후 좌파 정권 10년 간,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일부 와해되는 상황을 만들기는 했지만, 좌파가 자신의 세력 기반이 되는 노동조합의 기득권과 호남지역에서의 정치적 우위 확보에 담합구조를 그대로 적용하고, 이에 더해서 소위 민주화 운동세력이 군부를 대신하는 담합구조의 핵심 구성원으로 등장하면서 기득권의 게임 규칙을 개혁하는 데 실패한 데서 기인한다. 당연히 그 이후의 상황은 담합구조의 주축을 차지했던 좌파정권들과 재벌, 그리고 노동조합에 의한 담합구조의 확대 공고화로 나타났다. 담합구조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세력 기반이 큰 노조를 흡수해서 노동이 권력화하여 담합구조의 일원이 되는 양상으로 더욱 악화된 것이다. 시장경제적 개혁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개혁이 실패함으로써 현재의 경제 정체의 핵심 요인이 된 것이다.

당연히 지난 10년의 보수정권에서는 이를 탈피하기 위한 개혁에 착수해야 했는데, 그보다는 과거 민주화 이전의 보수 담합구조로의 회귀를 획책하는 기회로만 삼았지, 시장경쟁을 촉진해서 기존의 담합구조를 해체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권력의 행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양태를 띄게 된 것이다. 특히 규제개혁이나 혁신 정책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러한 담합구조를 깨고 시장경제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담합적 질서 안에서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입지를 개선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정치공학적 고려에 치중했던 데 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탄핵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권에 의해서도 반복되고 있다. 다시 좌파정권 아래에서 담합구조의 재구축과 이에 방해가 되는 세력 제거가 목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100년 대계가 될 안보, 통일, 교육, 에너지 등에서의 정책을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집권세력에 의한 통치적 결정으로 자행하고 있고, 시장경제 질서와 경쟁에 입각한 정책보다 기업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계열사 매각을 다그치는 것은 이런 권력 남용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다음에 정권을 잡아 이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할 대책을 내놔야 한다. 담합구조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와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자유기업주의에 입각해서 개혁하기 위한 규제개혁과 혁신 방안, 그리고 세계 교역질서에 대응해 나갈 방책에 대한 명백한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청사진을 가지지 못하면 정권을 다시 획득한다 해도 또 다른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담합구조로의 회귀 정략을 답습할 것이기에 바드시 지금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넷째,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960년대에 경제성장론의 대가인 경제학자 Kaldor는 대개 GDP의 70% 내외가 노동에 분배되고 30% 내외가 자본에 분배되는 것이 장기적인 경향이라는 중요한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을 발견했다. 그런데 1980년 대 이후 이 노동 분배 비중이 점차 악화되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데에 대부분의 주류경제학자들은 동의한다. 그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이러한 상황은 국가가 특정 세력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전개되어 온 기술발전의 특징에 따라 사회가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격차는 한국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경제가 보편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이런 격차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정권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고, 따라서 이는 모든 나라의 가장 큰 정치·사회적 문제이며, 그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정치권의 핵심 아젠다이다. 그런데 승자독식(Winner-takes-all or most)의 경향은 대단히 장기적인 추세이므로, 이의 해결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왜냐하면 승자독식은 기술적·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므로 이에 제약을 가하면 파이가 줄어드는 반면, 이를 용납하면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모순적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대개 국가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세계는 대규모의 전쟁을 겪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죄수의 딜레마’가 아니라 상호협력에 입각한 승리를 위한 대타협을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방략이 있어야 한다. 이런 대타협의 기반에 기존의 담합구조를 축소하면서 시장경쟁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안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만들어 내야만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지켜내고 사회적 통합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제도와 법치(rule of law)를 지켜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위에 열거한 내용들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실천할 보수의 정치적 기업가정신(political entrepreneurship) 출현을 기대하고 열망한다.

이주선(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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