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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미래 향한 '육교' 돼야 할 교육

입력 2018-07-02 08:00 | 신문게재 2018-07-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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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시선(視線)’이라는 말은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을 의미하는 원론적 의미와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2차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래된 과거의 교육 패러다임에 젖어 구태의연한 교육관으로 오염되어 있다. 특히 학부모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육의 목적은 물론 내용과 방식을 지배한다.

학부모의 교육관은 물론 사회가 강요하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욕구와 지배계층의 삶을 고스란히 대물림하는 기능적 담론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이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를 지배하는 지배적인 교육관은 좋은 대학에 취업해서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답게 사는 길보다 남들처럼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육이 제시하는 길도 뻔하다.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나서는 교육보다 남보다 잘 하기 위해 평생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교육으로 오도(誤導)하고 있다.

‘교육’을 뒤집으면 ‘육교’가 된다. 교육이라는 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지금 여기서 미래로 가는 튼튼한 육교를 건설하는 일이다. 다리가 부실하거나 부실공사를 하면 성수대교와 같은 참사가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해 미래로 가는 육교가 부실하거나 부실공사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참담한 나락으로 전락한다.

지금 여기서 미래로 가는 육교가 튼실해야만 육교 너머의 꿈의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 튼실한 육교를 건설하는 책임자는 육교건설을 맡은 건설업자에게만 달려 있지 않다. 어떤 육교를 건설할 것인지는 육교를 통해 꿈의 목적지로 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달려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전망이나 시선만큼 미래는 열린다. 어디를 바라보고 상상하는지에 따라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세계로 구상되어 날아온다.

교육을 통해 길러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도 바로 저마다 꿈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이다. 내가 어떤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이미지를 그리는지에 따라 내가 그린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구체적인 일상의 세계로 다가온다.

다리의 종류와 성격은 다르지만 다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내 힘으로 건널 수 없는 경계와 사이를 건널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데 다리의 존재이유가 있다. 이제까지 교육을 통해서 만든 각종 다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부실했고 부실공사의 산물이었다. 미성숙한 한 사람이 교육을 통해 성숙해지려면 지금 여기서 생각하는 사유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유도하는 각성사건이나 성장체험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도 편안히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만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님을 교육이 각성하게 만들어준다. 교육은 그래서 깨어있는 삶으로 유도하는 각성사건이자 성장체험이다. 육체적 성장을 넘어 정신적 성숙을 촉진하는 가교로서의 교육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때로는 칼 같은 날카로운 비판의 지성으로 들여다보고, 또 때로는 뜨거운 럼주 같은 열정으로 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우리 교육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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