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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문화계 화이트리스트

입력 2022-04-03 13:53 | 신문게재 2022-04-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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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3월9일 역대급 비호감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달이 지나간다. 팽팽하게 갈린 0.7% 득표율 차이는 갈라치기가 팽배한 대한민국의 민낯이었고 정권인수위의 움직임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충돌은 우리가 접할 전쟁의 예고편이다. 우리 사회 각 분야마다 정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특정 후보의 지지를 통한 줄서기 행태는 여전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의 공개 지지 선언이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유세 현장에 등장해 지지 연설을 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진보 진영의 자타공인 터줏대감 명계남, 문성근, 김의성은 한참 전부터 응원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작곡가 윤일상, 가수 이은미, 리아, 배우 이원종, 박혁권, 김규리 등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K-컬처 멘토단’으로 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가수 김흥국, 배우 독고영재 등 5810명의 문화예술계 지지 인사 명단을 공개하며 그 세력을 과시했다.

폴리테이너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연예인, 스포츠인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그 누구든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발전적 형태로 이해된다. 각자 분야의 정책, 비전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의미한다. 미국 대선이나 일상에서 보이는 폴리테이너들의 입장 표명은 미국 정치의 성숙도를 나타낸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트라우마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어쩌면 특정 후보 지지 연예인들의 급감은 시대의 흐름일 수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권력이 정치에서 벗어나서 주도적으로 존재하려는 첫 번째 계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대선처럼 초접전 상황에서 공개 지지는 위험이 컸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비호감도’로 점철된 후보들 중 누군가를 위한 지지 연설을 하는 일은 또 다른 극한직업이었다. 셀럽으로서 어렵게 쌓아올린 이미지를 함부로 소비할 필요나 명분이 없던 것이다.

선한 목적과 방법을 지향하는 폴리테이너들이 지닌 선한 영향력은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그들은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 미처 모르던 사각지대에 대해 애정과 정책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정치권에 기대어 달콤한 과실을 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폴리테이너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자신의 지지선언 셀럽들에게 덜컥 논공행상으로 감투를 씌워주지 말아야 한다. 문화체육부 장관 인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포함해 각 낙하산 인사가 정치색, 코드에 좌우될 수 없다. 화이트 리스트는 블랙리스트보다 훨씬 더 해악이 크다. 문화예술판을 도박판, 아수라판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더 중요한 것은 반대편에 섰던 폴리테이너들에 대한 불이익 없는 공평무사한 처우일 것이다. 정치권에서만 상대 진영을 고려한 통합형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협치와 상생이 뿌리내려야 한다.

오늘날 문화예술권력의 높아진 위상은 정치세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정치에 끌려다닐 이유가 없다. 스스로 화이트리스트를 ‘지우개’나 ‘화이트’로 깨끗하게 지우자.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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