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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내치기 vs 버티기

입력 2022-07-04 14:20 | 신문게재 2022-07-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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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우리 편, 너희 편… 초딩들의 싸움이 아니다. 진영이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편가르기 행태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전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 이사, 감사들에 대한 ‘사퇴 압박’과 ‘임기 보장’ 싸움에 국민들은 눈꼴이 사납다. 정권 교체의 달콤함에 취한 여당은 문재인 정부 임기말 공공기관의 이른바 ‘알박기’ 인사를 전수조사해 기관장급 13명, (비)상임이사·감사 46명 등 59명이라고 명시하며 해당자들의 임기까지 노출하고 있다.

‘끌어내리기 vs 버티기’ 광경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문재인 정권이나 전 정부들의 출범 초기에도 이미 이런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문화예술계 기관들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왜 이런 반목과 대립은 반복돼야만 할까?

정치인들은 각종 공기관, 국책기관 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정권을 잡은 세력에게 알박기 인사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예전에는 정권교체기에 전 정권 임명 기관장이 새 정부와 뜻이 맞는 인물에게 자리를 내주는 관행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진영논리가 상식과 관행을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임기가 남은 산하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압박하다가 징역2년의 실형이 확정되는 경과를 모두 지켜봤다.

이에 여당의 사퇴 압박도 조심스럽고 야당의 임기 보장 요구도 나름 설득력을 갖췄다. 여권은 알박기 인사가 전문성과 무관한 보은인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야권의 “자기 사람들 챙기기”라는 비판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이 알박기 인사라도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정치 프레임이 곳곳에 걸려있기 때문에 정확한 민심을 읽기도 쉽지 않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주요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정의 기조 방침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전부 수렴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정의 특정 방향에 공감하는 인사들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어떤 정부든 해당 정부의 핵심 공약과 배치되는 활동을 해왔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현 정부의 주요 기관장이라면 국정의 효율성이나 일관성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계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 아픔 속에서 문화정책에 정부의 국정 이념이 스며드는 것을 최소화하고 되도록 많은 것들을 아우를수 있는 포용력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다. 이런 시기에 나라 안 진영 싸움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한다면 K-문화예술은 K-정치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전 정권의 알박기 폐습도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알박기’에 대한 ‘압박하기’도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틀렸다. 정치권에서 알박기 인사 문제는 정치적, 법적으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다만 하나의 원칙만은 분명하다. 문화예술 등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자율성, 독립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임기와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기관장을 맡더라도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문화예술만 바라보아야 한다. 스스로 정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알박기, 압박하기는 정치인의 운명이지만 부끄러움과 초연함은 문화예술인의 숙명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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