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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과연 받기만 하면 좋을까

입력 2022-07-11 14:35 | 신문게재 2022-07-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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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남자친구와 몇년째 잘 살고 있는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계획적인 성향의 남자친구는 뭐든 예정대로 돼야 편안해 했다. 하지만 느긋한 여자는 시간 되는 대로 마음 내킬 때 할 만큼 하는 식이라 남자친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사랑해’라고 모바일 메신저를 보내면 여자는 편안히 읽고 바쁠 땐 그냥 넘어가는데 남자친구는 상대에게 답이 없을 땐 그걸 꼭 짚어내 ‘나라면 이랬을 거’라며 실망하고 서운해 했다. 그래서 다투거나 미안해하면 남자친구는 자기가 여자친구를 속상하게 만들었다며 스스로를 탓하는 것으로 싸움을 마무리하곤 한다.

여자는 어느 순간 알아차렸다. 그동안 남자친구가 극진히 잘 해준 것이 거저가 아니었음을. 자기가 한 것처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행동이었고 그걸 몰랐던 자신은 계속해서 실망과 서운함을 안겨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여자는 남자친구가 잘해주는 게 두렵다. 남자친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친밀한 대상일수록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이나 기분일 거라는 오해를 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이러면 상대도 그럴 거라 여기며 나의 기대를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각자의 생각이나 취향, 습관까지 일치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계의 깊이가 깊을수록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은 그 경계가 지켜져야 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비슷한 이유로 갈등이 깊어진 어느 부부가 떠올랐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자신의 아내와 처가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며 노력했다. 그러나 아내의 부응이 영 와 닿지 않자 결국 참다 못해 폭발하며 이혼을 요구했고 아내는 앞뒤 없는 남편의 결정에 어이없어 했다. 게다가 “헌신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남편이 얼마나 심하게 공격해대는지 아내는 혼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관계는 서로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으며 신뢰와 친밀감을 쌓아간다. 어느 한쪽에서만 감내하거나 지나치게 제공만 하는 상황이라면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 헌신이나 희생으로 보여지는 그 행동 이면에는 조건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 그 일방적임을 인지하지 못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받기만하는 데 익숙하다 보면 상대의 의도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결국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상대방이 요구하지도 않은 선물공세를 펴놓고 나는 왜 안주냐, 받기만 하냐고 몰아붙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온전히 자신의 식대로 감행해놓고 상대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묻는 것은 아무리 타당해도 행위는 일방적이다. 또한 상대가 과도하게 애쓰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상대방을 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은, 그래서 상대방의 의중을 알려하지 않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것은 상호적인 관계의 모습이 아니다

이렇듯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에서는 양쪽 다 억울해 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만의 독백을 상대가 해석하지 못한다면 방법을 수정하거나 기대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상대의 일방적인 헌신을 당연시하는 안일함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모든 관계는 적절한 거리와 긴장에서 오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럴 때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킬 수 있어서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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