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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아베가 남긴 것

입력 2022-07-14 14:14 | 신문게재 2022-07-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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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너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연방정부의 총리요.”

“그것은 안돼. 내가 이미 총리를 지냈기에 그것으로 충분해.”

서독 초대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와 그의 손자와의 대화로 유명한 내용이다. 2세가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독일정치 불문율의 상징이 된 대화다.

비겁한 지역구 세습이 없다. 물론 법으로 2세가 정치 못하게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 유능한 정치인들은 가족보다 당, 당보다는 국가를 위하는 정치문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군림하는 게 아니라 헌신한다는 정치 철학에 기인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는 1969년 9월 총리가 된 후 ‘동방정책’을 본격화했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유대인 게토희생자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온 세계가 떠들썩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 사건을 “바르샤바 무릎꿇기(Kniefall von Warschau)”라고 부른다. 젊어서 나치와 조금도 관련이 없던 빌리 브란트는 이듬해 197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통일총리’ 헬무트 콜은 1989년과 1995년 두차례나 아우슈비츠 바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나치가 벌인 과거사를 사과했다. 동독 출신 여자총리 앙겔라 메르켈 역시 2019년 12월 이곳에 헌화한 뒤 역사보존을 위해 독일정부가 6000만 유로(약 791억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전범국가로서의 사죄를 세계 앞에서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때 전범국가였던 일본의 총리들은 독일과 같이 세계인 앞에서 사죄를 하고 있나?

마침 지난 7월8일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가 선거유세중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아베 신조는 아베 신타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베 집안은 계파정치와 세습출마가 전통인 일본의 대표적 정치집안이다. 메이지유신의 태동기인 조슈번, 현재 혼슈 남단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아베는 1991년 이곳에서 아버지의 선거구를 승계한 후 내리 당선된 7선의원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년~1859년)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조선을 정벌해 북으로 만주를 점령하고”를 외친 일본 근현대사의 사상가, 교육자였다.

또 아베의 롤 모델인 A급전범용의자, 보수반동매파로 일본이 강한 무력을 갖춘 ‘평화헌법’을 처음 주장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외조부였다. 입으로는 ‘적극적 평화’를 외치지만 아베의 피에는 극우의 DNA가 흐르고 있다. 동맹국 미국의 만류에도 신사를 참배하는 이유다.

미국의 싱크탱크 아·태안보센터의 제프리 호녕교수는 제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2015년 1월14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는 1970년 게토추모비 앞에서 무릎꿇고 전쟁범죄를 사죄했다. 아베도 과감하고 의미있는 언행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 “위안부 소녀상에 헌화하라”고 잇단 비판을 했다.

최장수 총리를 누린 아베 신조는 유별나게 경제회복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떠들었지만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살리지 못했다.

한국도 국회의원을 지낸 후 일본의 지역구 2세 세습과 똑같은 짓을 다수가 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고통이다.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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