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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해방 직후 농지개혁의 교훈

입력 2022-07-21 14:12 | 신문게재 2022-07-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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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해방 후 우리나라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는 토지소유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해방 당시 전 국민의 77%가 농민이었던데 비해 농지는 무려 65%가 소작지였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당시 불평등한 토지소유는 바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발전과 사회 안정을 해치는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야 하는 것을 뜻했다. 이미 북한 공산당은 무상몰수·무상분배라는 형식으로 토지개혁을 단행해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농지개혁은 경자유전 이념 아래 농민들에게 농지를 배분해 이들의 생산 의욕을 북돋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이상적 정책이었다. 문제는 지주들로부터 어떤 형태로 토지를 몰수하고 어떤 대가를 제공해 이들의 동의를 얻어낼 것 인가였다. 예컨대 지주의 토지소유 상한은 얼마로 할 것인가, 토지 매수나 농민에게 분배할 때 가격이나 보상액은 얼마로 할까, 상환 기간은? 이런 다양한 사안에 수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농지개혁법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농민 혜택을 중심으로 마련된 초기 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되었으며, 제도를 피해갈 다양한 편법이 동원되었다. 당초의 취지가 많이 훼손된 상태의 최종안이 된 것이다.

모든 정책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재를 낳은 역사적 배경이 있고 당면한 대내외 여건이 있다. 그 위에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저항과 로비가 있다. 정책의 큰 방향은 누구나 추구해야 할 이념이나 그럴듯한 정책목표로 포장되어 있기에 쉽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들 집단은 거시적인 내용보다 디테일에 집중한다. 세부 추진방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집요하게 자기 의사를 관철시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발표를 믿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려니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이들의 설득과 로비에 의해 당초 안에서 후퇴하거나 변질된 형태로 최종안이 마무리된다.

이들은 명분도 내세운다. 아무리 나쁜 정책도 일정부분 합리적이고 명분에 부합하는 내용이 없을 수 없다. 작은 구실로 여론전을 펴며 부작용을 침소봉대한다. 시간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정책은 시간이 흐르면 당초 동력이 약해지고 여건 변화에 따라 수정도 불가피해지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생활에 바쁜 소시민들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토지개혁 과정은 이 모두를 보여준다. 관료나 정치인도 당연히 국민을 위해 일하고 소시민의 삶을 보살핀다. 그러나 결과가 반드시 제시된 원칙이나 명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수립에 있어 세부적인 내용이나 진행상황에 더 민감해야만 내 이익을 지킬 수 있다. 남의 선의에만 맡겨두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다행히 민주화의 진행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과거에 비해 이러한 기회를 더 쉽고 저렴하게 제공해준다. 옛날에는 비록 마음이 있어도 권위적인 정부의 방해나 정보에 접근하는 자체가 어려워 내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모두가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책 세부내용을 살펴보고 진행상황을 살피며 꾸준히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테일과 시간을 무기로 하는 세력들에게 원론에서는 이기고 결과에서는 지는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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