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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표절 유감

입력 2022-08-03 14:46 | 신문게재 2022-08-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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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오마주, 레퍼런스, 무의식적 영향… 아리송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 음악계를 들었다 놨다 하던 작곡가 겸 방송인 유희열이 쏘아올린 ‘표절’이라는 공이 대중음악계를 뒤숭숭하게 흔들고 있다. 유희열의 최근 작품 ‘아주 사적인 밤’이 그래미상에 빛나는 일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과 유사하다는 어느 네티즌의 의문 제기와 함께 그가 예전에 발표한 수많은 인기곡들도 표절 시비에 소환됐다.

표절은 우리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적폐였다. 인터넷 등 미디어환경이 발달되기 전에는 실제로 표절 천국이기도 했다. IT와 소셜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외국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놀랄 만큼 발전하면서 오늘 날에도 표절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가요계의 혁신으로 불리우는 서태지, 박진영 뿐 아니라 수많은 히트곡들이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사토론에 나와 얘기하는 작곡가도 칼럼에 “표절을 비판하는 그 누구도 감히 깨끗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래서 다들 쉬쉬하면서 공론화하지 못했다. 방송국으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아서 공식적으로 방송금지를 받은 몇몇 곡들을 제외하고 표절시비는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표절을 법률적으로 판단하는 법원도 가요사 70년에 걸쳐 표절 판정을 내린 경우는 MC몽의 노래 딱 1곡이었다. 그나마 1심에서 확정됐을 뿐이고 1, 2심의 결론을 뒤집었던 박진영의 ‘썸데이’ 사건처럼 대법원까지 가서 목숨 걸고 다투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표절은 무척 점잖은 표현이다. 물건을 훔치는 절도와 다름 없다. 어쩌면 더 악질적인 범죄인지도 모른다. 부지불식 간에 교묘하게 더 많은 소비자들을 우롱하기 때문이다. 표절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표절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원저작자와 대중의 몫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변명은 다른 창작자들에 대한 예절이 없는 범죄자의 변명이다.

모든 범죄가 그러하듯 범인이 악의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면 형사적 책임을 감경받거나 심지어 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절의 경우는 작곡가와 하늘만 알고 있는 ‘의도’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의도, 과정과 관계없이 유사성, 침해라는 냉정한 결과가 발생하면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물론 작곡가들도 악의적 의도 없는 경우까지 ‘표절 작곡가’라는 멍에를 씌우는 현실은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12개의 음만으로 만드니 서로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창작의 어려움은 너무도 당연하니까.

힙합에서 사용하는 샘플링 기법에 각종 소프트웨어, 가상악기 덕분에 유사 노래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표절을 잡아내는 기술도 발전할 수 있다. 학술논문의 경우 유사도 검사를 통해 사전에 표절의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사한 메커니즘이 더 늦기 전에 음악계에도 도입돼야 한다. 그동안 아무 노력 없었던 집단적 게으름이 오늘날의 유희열을 만든 셈이다.

흔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창작자’라고 부른다. 그만큼 창작은 기약없이 고통스럽다. 그만큼 표절이라는 악마는 의식, 무의식 중에 달콤하게 인간을 유혹한다. 오마주, 레퍼런스 등 어려운 미사어구로 호도하지 말자. 우리는 잘 안다. 누가 창작자인지. 누가 예절 없는 표절자인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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