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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형편대로 사는 지혜

입력 2022-08-24 14:03 | 신문게재 2022-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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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지인 중에 인품이 참으로 훌륭한 분이 있다. 온화하고 합리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물론 불필요한 말이나 괜한 자기 자랑도 없을뿐더러, 재미 삼아 남의 얘기를 하거나 옮기지도 않는다. 말수가 적고 우스갯소리 같은 농담도 잘 안 한다. 그러나 고민도 잘 들어주고 함께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늘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새삼 나 자신의 됨됨이와 행동을 돌아보며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겠다는 반성과 더불어 나름의 긴장감도 든다.


말수가 적은 그분이 평소 남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 하나는 ‘고맙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애썼다’는 말이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사도 고맙다고 하고, 좀 나누고 싶은 게 있어 여쭤보면 물어봐 줘 고맙다고 한다. 일이 바빠 연락이 뜸했다고 오랜만에 연락하게 되면 열심히 사느라 애쓴다고, 건강 잘 챙기라고 한다.

‘고맙다’, ‘애썼다’ 외에도 가끔 양념처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형편대로’라는 말이다. 형편(形便)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 그리고 ‘살림살이의 형세’라는 뜻이 나온다.

첫 번째 뜻으로 보면,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 어떤지 궁금하다” 등과 같이 일이 되어 가는 상태 등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고, 두 번째 뜻은 살림살이의 형세, 즉 “형편이 안 좋다”든가 “형편이 어렵다”처럼 사용을 할 수가 있다. 지인이 자주 쓰는 ‘형편대로’는 두 번째 의미로 보인다. 내 살림살이 형편대로 하자는 말일 게다. 분수에 맞지 않게 남의 눈을 의식하고 따라 하다 보면 그야말로 형편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할 수도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그저 내 형편에 맞추어 예의를 지키며 살자는 의미이겠다.

형편대로 산다면 매사에 별 무리가 없다. 어찌 보면 ‘애쓴다’라는 말과는 다소 상반된 의미일 수도 있겠다. ‘애쓴다’라는 말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쓴다는 의미이니, 노력과 수고로움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 다 맞는 것은 아니겠으나 애를 써서 될 일이 있고, 그저 형편에 맞추는 것이 오히려 나은 일이 있으니, 어찌 보면 상황마다의 판단은 본인의 몫일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내 형편을 잘 파악해야 하겠고, 상황마다 적절한 판단이 가능해야 하니, 통합적 사고가 필요해 보인다.

아무튼 이 ‘형편대로’라는 말은 어느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만능언어이다. 물가도 많이 오른데다가 월급은 늘 그 수준이다 보니 살림살이 역시 늘 고만고만하다. 코로나로 미뤄진 경조사 소식이 몰리는 달이면, 뻔한 살림에 일일이 다 챙기고 인사하며 살기가 녹녹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아주 가깝진 않아도 모르는 척하기 애매한 지인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 병을 얻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크지만,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 속상하다. 형편껏 되는대로 도움을 드리기로 했다. 매사 이렇게 형편대로 살면 힘든 시기도 그럭저럭 지혜롭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의 형편을 알고, 나아가 상대의 형편을 헤아리려 노력하다 보면, 그다지 이해 못 할 일도 많지 않고, 섭섭할 일도 적어진다. 고맙다, 애썼다는 말과 함께 늘 형편대로 살자는 지인께 감사하다. 스승은 늘 내 주변에 있다.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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