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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과몰입에서 벗어나는 법

입력 2022-08-25 14:04 | 신문게재 2022-08-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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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겸 롯데자이언츠 마케팅자문위원

프로야구의 응원전에 뛰어들었다. 자문을 맡았으니 순리라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빠져들고 말았다. 좋은 시절엔 다 좋다. 문제는 나쁠 때다. 연패에 빠지자 부작용이 찾아들었다. 대패를 당한 날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숨이 잦아지고 우울증이 따라왔다.

4연승을 하다 7연패를 당하는 것이 야구다. 열 번 싸워 여섯 번 이기면 우승을 노리고 네 번 이기면 바닥으로 처지는 게 한 시즌 144경기를 내달리는 프로야구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온다. 구단에 계신 분도 일희일비는 소모전이라고 했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던가. 잘 던지던 투수가 난타당하고 잘 맞은 타구가 수비수 정면으로 날아가 승부가 기울었는데도 이닝을 채우기 위해 던져주는 투수와 끌려나온 타자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뒷골목에 끌려가 두들겨 맞는 아이를 손도 못쓰고 방관하는 무력감이랄까. 이런 지나친 감정이입은 광고주 영입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에 발표자로 나서 선발투수 역할을 맡아 가슴 졸이던 과거가 동병상련으로 작용했던 듯하다. ‘순간을 즐기라(win the moment!)’는 구단 홍보 영상을 맡은 사람이 승패의 스트레스에 빠졌으니 흉내만 내는 거 아니냐며 아내가 혀를 찼다. 요즘은 좋은 소식이 날아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산다. 뉴스 보듯 힐끔거리며 채널을 드나든다. 지나친 몰입에서 벗어나야 즐기게 될 것이다.

유년기의 술래잡기를 떠올려보자. 저녁상을 차려놓은 엄마의 존재를 잊을 만큼 열중했다. 온 몸이 땀에 젖어 곤한 잠에 빠졌지만 하루만 지나면 그 곳으로 다시 달려갔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쓸수록 에너지가 솟아나는 게 몰입이다. 이틀 밤을 지새웠던 광고공모전의 추억도 그랬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시간은 놀라운 성과의 원천이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독으로 변한다. 일 때문에 바빠서 쉴 수도 없고 먹지도 못한다며 오열하는 유명 여가수가 자신의 영상을 공개한 뒤 며칠이 안가 자신의 행동을 사과한 일이 있다. 스타덤의 스트레스가 현실감을 차단한 탓이다. 이게 심해지면 아예 작동 불능이 된다. 야구선수와 골퍼들의 입스(Yips)가 그렇다. 포수가 도루를 막으려 송구할 때 공이 뿌려지지 않거나 골퍼가 손목이 굳어 스윙 자체가 안되는 증상이다. 아직 오지도 않았고 어쩌면 있지도 않을 실패의 불안감 때문이다.

몰입이 인간을 향하면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김유신의 말은 주인이 술에 취하자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 주인이 늘 하던대로 길을 잡았다. 그녀는 김유신의 어미가 극구 반대한 기녀였다. 술에서 깬 김유신은 말을 베고 안장을 버려둔 채 집으로 돌아갔다. 애마의 목을 자르고 사랑을 끊어내는 냉혈한이 되고 나서야 그 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과몰입을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틈이 있어야 바람이 드나들어 습기와 부패를 막아준다. 사람도 떨어져 있을 때 상처받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라. 좋은 방법이 있다. 어디로든 걸어나가라. 다가서는 풍광과 스쳐가는 바람결이 삶의 리듬과 루틴을 되찾아 주리라.

 

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겸 롯데자이언츠 마케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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