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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이 가을에 청년들은

입력 2022-08-29 08:30 | 신문게재 2022-08-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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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왕조가 오래가면 어디든지 몰락을 한다. 유럽에서 누세기를 창창하던 왕조들도, 조선왕조도 그랬다. 그 기울어지는 나라의 울타리를 허물고 일본이 무력으로 강제점령을 하는 사이에 우리 조상들은 수탈이란 수탈은 다 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 후 한국전쟁이 마지막 있던 것조차도 모두 다 앗아가고 국민적인 가난을 남겼다. 그 가난이 이제 저만치 멀어진다.

세계은행 자료로 보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2021년에 3만 5168달러로, 이제는 명실 공히 부유한 나라의 대열에 안착했다. 물론 아직 앞선 부자나라들의 평균치인 4만 달러를 완전히 넘지는 못했지만,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소득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시간이 가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2.8%의 소득성장률을 보인 반면 전체 OECD 선진국의 평균 소득성장률은 -0.2%였다. 같은 기간에 소득성장률이 우리에 근접한 나라는 미국으로 2.5%였는데, 이는 3억 명이 넘는 거대 인구로 6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 구간에서 이룬 성과로는 참 경이로운 일이기도 하다. 우린 이렇게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나라로 세계에서 6번째로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에게 침략전쟁은 민족의 재앙이고 삶의 악몽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간절히 평화를 바라고, 나라 지키는 일에 지금도 집집마다 젊은이들이 나가서 목숨을 건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마음이 가장 아픈 나라이다.

과학과 역사에서 전하는 우리의 뿌리를 보면 인류의 근원지에서 긴 세월 동쪽으로 이동해온 투지와 문명의 민족임은 틀림이 없다. 실크로드의 상인으로 알려진 소그드(sogd)상인들이 동서로 귀한 물건을 실은 대상을 이끌고 다니면서 믿는 것은 ‘돈’과 ‘믿음’이었다고 한다. 장사 길에서 위험에 처하면 이 두 가지가 해결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 하는 자신들임을 알리느라 늘 문화공연단을 동행했다고 한다.

먹고 살만 하면 공연히도 분란이 생겨나는 게 인간사이다. 가난해도 사랑이 넘치는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부유함은 사람의 마음과 마을의 사이를 부패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정기적으로 받는 급여를 뜻하는 샐러리(salary)라는 단어는 사람사이에 필수적 역할이란 의미에서 소금이 어원이란 해석도 있다. 고대시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의 일당은 계속 집 걱정하지 말고 잘 싸우라는 지속의 의미로 임금(wage)라고 부른다.

우리 청년들은 요즘 집 밖에서 할 일들이 많지 않으니 급여도 임금도 만만치가 않다.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젊은 국민들은 자기 나라와 자기 사회와 자기 지역에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고 받을게 별로 없어 보인다. 상당수는 심지어 자기 집안에서도 그렇다.

이런 가운데 정치현장에 유난히 젊은 세대들이 많아지고 있다. 소통세대다운 직접정치의 시대현상이기도 하고, 참여정치 문화의 진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도 세대적인 돈과 믿음의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걸 얻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요즘 큰 정치 이슈도 주로 MZ세대들이 만들고 청년들이 주도하며 논쟁을 가져간다. 여야 이슈의 배후에는 대체로 젊은 국민들이 포진하고 있다. 원로들의 눈에는 그들이 금도를 넘지 않은 가운데, 선배들이 잘 품어 주는 게 답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나라와 사회가 격동기에 처해서 청년들의 급여와 미래세대의 임금이 여의치 않으면 가정과 가족의 환경에서 먼저 이런 문제가 완화되어야 하지만, 그게 안 되는 가정이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부모나 자녀들이나 정치여론 조사에서 사회형편의 추이를 살핀다. 대통령도 여야정치인도 요샌 여론추이에 절절 맨다. 점점 내 문제나 가정이나 가족 문제도 인과관계의 구성이나 사태호전의 기미를 주로 집 밖에서 찾고 살핀다. 이젠 남녀의 갈등까지도 젊은 국민들 사이에서 등장해 모두를 쓰리고 당황하게 한다.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아니 영국도 독일도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고개에서 국가사회는 흔들리고 찢기고 갈라지기 일쑤였다. 모두 돈이 겉으로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용들이 돈과 무관하지도 않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코로나 직후 하루하루 살기가 어려워진 세태를 보고, 청년들에게 1인당 1억 6000만 원 정도의 기본자본을 나누어 주자고 제안한 바가 있다. 조달 재원도 그는 제안을 했다. 언젠가 우리도 논의할 개연성이 머리를 스친다.

나누어 갖는다는 말에 sharing도 있고, 몫의 배분이란 의미에는 divide도 있다. 주식을 소유하면 share holder라 부르고, 배당금을 dividend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의 경제적 정체성이 이제 산업과 과학의 총체적인 주체가 되어간다. 이전처럼 국민들의 경제력을 모아서 국가경제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경제를 일으켜서 그 과실을 국민들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대로 가면 정치투표의 주권을 국가적 경제활동의 배분주권으로 치환하자는 논쟁의 시기도 멀지 않은 듯하다.

가을이다. 누군가는 추수가 기다려지지만 우리 청년들은 유난히 허허롭다. 그들에게 적으나마 추수의 기쁨을 줄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부모에게 부치는 가정일수록 이번 가을은 총체적으로 쓸쓸하다.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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