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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조로(早老)사회

입력 2022-10-13 17:00 | 신문게재 2022-10-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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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선진국이 됐다. 반신반의하겠지만, 세계기준은 한국을 선진그룹에 편입했다. 각종지표가 뒷받침한다. 물론 정의마다 좀 다르다. 월가의 글로벌 선진국지수(MSCI)에는 못 들어가나, IMF는 숫자를 줄인 10대 선진국에 한국을 포함했다. 일각에선 ‘개도국→선진국’의 막차를 탔다며 칭송한다. 상황변화로 발전한계가 뚜렷해지며 더는 한국의 뒤를 이을 국가가 없다는 이유다. 실제 한국이 압도적 발전경로를 걸어왔다는 점은 공통평가다. 양적성장부터 질적환경까지 선진국 못잖은 성적표를 이뤘다. 한국을 빼놓고 장기·압축적인 고성장모델을 언급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럼에도 체감은 희박하고 현실은 먹먹하다. 선진국답잖게 첨예한 갈등과 뒤쳐진 병폐가 공존한다. 가령 복지함정의 사각지대에 빠진 후진국형 불상사가 잇따른다. 정반대의 천박하고 비루한 자본탐욕도 건재하다. ‘더 빨리 많이 크게’의 성장신화가 빚어낸 미스매칭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품질이 보장된 안정·성숙형 선진국과는 구분된다. 뒤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려온 아이러니다. 즉 덩치만 커졌지 체력은 별로다. 구조적 부실과 복잡한 한계가 빚어낸 현실불행을 볼 때 선진국의 환상에 취해 축제를 즐길 여유는 없다. 맷집 없는 약골은 지속이 어렵다.

선진국에 걸맞잖은 한국형 불협화음의 해소는 중대한 시대의제다. 다만 쉽지않을 전망이다. 덩치에 맞는 체력을 금방 완비하기란 어렵다. 양적인 고속성장보다 힘든 게 질적인 함양이다. 상황논리도 부정론을 거든다. 너무 일찍 늙어버린 조로(早老)사회인 까닭이다. 인구압박이 상징적이다. 급하면 체하는 것처럼 일찍 늙으면 사람도 사회도 고달프고 힘들다. 뭘 하고파도 늙어버린 자원·제도로는 역부족이다. 빨리 커서 빨리 늙었으니 압축적인 스퍼트는 능해도 천천히 합을 맞추는 숨고르기는 낯설다. 자전거처럼 운전은 과속보다 저속이 더 힘든 법이다.

조로현상은 광범위하다. 일찍 늙어버린 인구구조가 상징적이다. 초고령화(고령인구/전체인구=20% 이상) 사회를 목전에 둔 것은 물론이고 중위연령(1980년 22세→2022년 45세)도 높아졌다. 대량은퇴·노후간병과 직결된 정년연장이 핫이슈로 떠오른 배경이다.

0.7명대(2022년 추정출산율) 초저출산으로 젊음공급이 막혀 버린 경제의 조로도 만만찮다. 성장감퇴 속의 투자둔화·부채경제는 불확실성을 키운다. 젊은 기세로 승기를 높였던 기업가정신과 혁신모델은 포기된다. 과거의 제조신화만 잔존한다. 가치관과 연결된 인식의 조로도 심상찮다. 미래를 위한 고통감내는 사라졌다. 도전·향상심은 눈앞의 현실만족·안전지향에 무너졌다. 늙은 청년의 ‘가늘고 길게’ 인식확대다.

한국사회는 갈길이 멀다. 멈춰설 여유보다 넘어설 숙제가 먼저다. 간신히 선진국 버스에 올랐지만, 본편은 사실 지금부터다. 체급이 올랐으니 더는 챙겨줄 베네핏이 없다. 날선 국제경쟁판에서 되레 핸디캡이 더해질까 염려된다. 올곧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진국을 완성할 때다. 그러자면 조로한계는 극복대상이다. 늙음에 맞서 젊음을 찾는 방식으로 조로현상을 분해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게 좋다. 기왕의 늙어버린 제도·관행을 재검토해 시대변화에 맞는 신질서로 재편하자는 취지다. 성장·분배 모두 포함된다.

몸과 맘 모두 선진국이 되자면 둘의 격차를 좁히는 수밖에 없다. 최대한 틈새를 줄여내는 갈등관리가 권유된다. 지금처럼 조로사회가 낳은 한정자원의 무한경쟁은 곤란하다. 전선축소와 대결자제를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2022년 한국사회는 후진국(고령층)과 개도국(중년층), 선진국(청년층)의 3세대가 공존한다. 골고루 웃는 사회일 때 반쪽 선진국의 오명은 벗겨진다. 품격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가치다. 조로사회의 속빈 강정을 충실히 채워줄 ‘넛지’(자연스러운 개입)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영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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