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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부모 말 안 듣는 시대

입력 2023-03-08 14:11 | 신문게재 2023-03-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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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부모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일컫는 대로만 하면 잘못은커녕 이익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음직한 코멘트다. 그렇다면 이 세대전승적 옛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심각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아닐 확률이 높아져서다. 부모훈수만 들어선 득 될 게 없다는 정반대의 증언·증거도 많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나 통했던 가설일뿐 더는 무의미하다는 반론이 적잖다. 최소한 예전엔 맞아도 지금은 아니라는 상황판단이 더 적절한 듯하다.


자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실수·실패는 줄이고 가급적 탄탄대로만 걸어가기를 원하는 건 부모라면 늘 공감하는 인지상정이다. 해서 더 많이 더 자주 훈계일 수밖에 없는 잔소리가 일상적이다. 물론 부모도 잘 안다. 부모훈수를 듣는다고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거니와 된다 한들 가성비가 낮거나 효용이 적다는 걸 체감한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 없으니 답답하고 먹먹하다. 쉽사리 깨기 힘든 딜레마다. 모두 시대가 급변한 탓이다. 인플레시대를 살아온 부모의 고정관념과 저성장 속 한정자원의 무한쟁탈에 내몰린 자녀의 생존방식이 같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시대변화는 신질서를 잉태한다. 구체제를 대체할 뉴노멀은 거대한 시대질서뿐 아니라 소소한 인생모델조차 재구축을 압박한다. 엘리트형의 ‘교육→취업→승진→출세’에 올라탄다고 성공·행복이 비례하진 않는 시대다. 부모 말 잘 들으며 만들어낸 내로라는 성적표가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성과로 연결되던 시대는 끝났다. 바늘구멍의 입사허들을 뚫었어도 금방 사표를 던지는 일조차 숱하게 많다. 짧게나마 겪어보니 들어왔던 부모훈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경험을 확인한 결과다. 이로써 공부만 잘하면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보장되던 루틴은 부모세대에서 종언을 맞이한 셈이다.

70년대 산업화와 80년대 민주화는 부모세대의 시대화두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경제로 풀어냈고, 인간다운 삶을 정치로 향상시켰다. 이를 통해 사회발전과 개인성장을 성공과 행복의 셈법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향상심의 발로로 현재고통이 미래보상으로 치환되는 작동체계가 먹혀들었다. 자녀세대는 사뭇 다르다. 이렇다 할 뚜렷한 시대의제가 없다. 이미 선진국에 올라섰고, 성장여력도 멈췄으며, 차기행보도 마뜩찮다. 살벌해진 초유의 인구변화가 그 산물이다. 현재의 추격을 통해 미래의 역전을 도모하던 신화가 사라진 이상 자녀세대의 방황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와중에 다양화는 그나마 자녀세대를 규정하는 신지향가치다. 다양한 인생가치를 좇아 수많은 인생모델을 택하려는 동기다. 판에 박힌 양적획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컬러로 채색되는 질적심화에 주목한다. 자기다움을 반영한 인생경로를 찾는 차원이다. 부모처럼 살 수도 없거니와 살기도 힘들기에 스스로 잘 살아내는 모델을 발굴·실험하는 형태다. 요컨대 달라진 행복모델이다. 정답 없는 인생을 강요받는 삶에 맞선 일종의 저항적 수용이다. 부모지도로 양적성공의 삶을 살아본들 인생 별 것 없다는 득도(得道)론도 한몫한다. 그렇다면 구시대적 부모훈수는 먹혀들기 어렵다. 필요한 건 시행착오가 동반될 자녀의 선택카드를 응원·지지하는 달라진 부모역할이다. 또 자녀가 살아갈 사회는 창조와 혁신의 시대다. 고정관념을 버릴수록 자녀미래가 밝아진다는 의미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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