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클래식 즐기기 딱 좋은 계절

입력 2023-04-17 14:15 | 신문게재 2023-04-18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23031601001175500050721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변호사 신성한을 연기한 배우 조승우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한때 피아니스트였지만 특별한 사연으로 변호사가 된 그는 늦은 밤 청계천에 놓인 피아노를 마주하게 된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연주하는 주인공의 모습 너머로 회한의 유년시절이 오버랩되며 극이 전개됐다.

실제 드라마처럼 청계천에는 피아노가 놓여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달려라 피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이 피아노들은 지자체별로 관리주체가 조금씩 다르지만 사용하지 않는 중고 피아노를 기증받아 예술적 감각을 입힌 디자인으로 새롭게 정비해 거리나 공원 등의 공공장소에 설치해 누구나 피아노를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다.

잠실 석촌호수 산책로, 신촌 홍익문고 앞, DDP 광장 등에 놓여진 피아노들은 외부의 온습도를 이겨낼 내구성 높은 도료로 곱게 단장한 후 그 날의 연주자를 기다린다. 점심시간 종종 석촌호수를 산책하다 보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인근 직장인도 볼 수 있다. 장바구니를 살포시 곁에 내려놓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르신도 볼 수도 있다.

거리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전에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꽤 난이도 높은 소나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손보다 마음이 더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연주력의 차이를 막론하고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자신의 음악을 매우 편하게 즐긴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공장소에서 직접 연주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생각대로 잘 연주하지 못 했을 때의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음악 그 자체에 몰입해 연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에 있다.

거리낌 없이 음악을 즐기는 거리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을 볼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클래식 음악은 대부분 여전히 어렵다. 갖춰진 형식은 익숙해지지 않고 갖춰야 하는 격식이 때론 경직된 태도를 만들어 무언가를 편히 감상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갖게도 한다.

또한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질수록 연주를 즐기기 보다는 저마다가 가진 ‘곡의 완성도’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비평가의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클래식 공연을 앞두고 지레 겁먹거나 냉정한 기준을 견지하며 공연을 마주해 어느 쪽으로도 연주를 편히 즐기지 못하게 된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콘서트홀 뿐 아니라 공원과 광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열린다. 잘 몰라도 사람을 이끄는 선율에 잠시 귀 기울이고 박수를 보내고 어느 순간 ‘음악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는 봄의 귀한 혜택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봄바람을 타고 곳곳에 음악의 선율이 넘실댄다. 짙어가는 녹음 아래 클래식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계절, 봄이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