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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쪽 귀로나마… 노래로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아프리카TV BJ '투깝스' 이숭희

입력 2017-03-06 07:00 | 신문게재 2017-03-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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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희씨가 서울 사당동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유혜진 기자)

 

“안 들려도 괜찮아. 한쪽 청력을 잃었으나 가수 되려는 내 길을 막지 못 한다. 한쪽 청력을 잃었으나 이게 나중에 무기가 되리라.”

어렸을 적 오른쪽 청력을 상실했으나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에서 비제이(BJ·Broadcasting Jockey) ‘투깝스’로 활동하는 이숭희(30)씨 이야기다. 지난 목요일 오후 서울 사당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 “귀에서 피 나와요”

여섯 살 숭희는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맞벌이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녁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엄마가 저 멀리서 걸어오신다. 반가운 숭희, 힘차게 뛰어 내려가다 그만 놀이기구에서 떨어졌다. 오른쪽 귀에서 피가 나왔다.

“엄마, 귀에서 피 나와요.”

병원에 갔다. 피 나오니 중이염이란다. 3~4년 병원을 오가면서 같은 치료만 받았다. 차도가 없어 병원을 옮겼다. 숭희는 누가 말하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왼쪽 귀를 상대에게 가까이 댄 것이다. 이제야 알았다. 청신경이 죽었다. 못 고친단다.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하면 잘 들리지 않아요. 특히 군대 훈련소 가서 무척 혼났죠. 옆에서 누가 군가를 부르면 조교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니까요.”

어린 숭희의 엄마는 이때 자식에게 빚을 졌다. 미안한 만큼 속셈, 영어, 운동, 미술 등 또래들이 가는 학원에 다 보냈다. 그 중 숭희가 흥미를 보인 것이 음악이었다. 사물놀이, 피아노, 노래 가운데서 노래를 가장 잘 했다. 집안 형편 상 가장 만만한 것도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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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희씨가 지난해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아프리카TV BJ 대상’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아프리카TV)

◇ 가수 데뷔 실패하니 남은 건 빚


열네 살부터 7년 동안 가요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연습한 노래를 검사 받으며 가수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회 있으면 연락 주겠다’던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발라드, 알앤비(R&B) 등 주요 무기를 갈고 닦았으나 계약서를 쓰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계속 실패하니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서 떠나가니 힘이 더 빠졌고요. 세상에서 혼자가 된 느낌이었으나 생계를 꾸려가려면 슬퍼할 새도 없이 얼른 돈벌이를 구해야 했습니다.”

일단 집에 있는 물건을 다 갖다 팔았다. 돈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내놨지만 턱도 없었다. 택배 상·하차, 건설 현장 막노동, 피자 배달, 자동차 부품 배달, 편의점, PC방 등 웬만한 아르바이트를 거의 다 겪었다. 트럭에 물건을 싣고 방방곡곡 다니며 팔기도 하고, 노래연습장을 경영하는 지인을 도와 잠시 운영도 맡았다.

그러다 어머니를 도와 액세서리 가게를 열게 됐다. 상가 한 켠 얻는 데 4억원 들였다. 순전히 남의 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자리가 너무 안 좋았다. 장사도 망했다. 데뷔 실패하니 남은 건 빚이었다.


◇ 인터넷 방송으로 세상과 소통할 창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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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희씨가 인터넷 방송을 하는 화면(사진제공=본인)

 

액세서리 판매업을 홍보하고자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게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방송하는 지금의 업이 됐다. 재미 삼아 노래 한 곡씩 한 것이 노래하는 BJ로 만들었다. 수입도 짭짤하다.

“일반적인 회사원이 버는 만큼 수입이 돼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신기하죠. 제 노래 들으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씨는 매일 적게는 20곡, 많으면 40~50곡을 부른다. 노래 신청도 받아들인다. 그는 쌍방향 소통을 인터넷 방송의 묘미로 꼽는다. 데뷔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했을 때 꽉 막힌 세상에 있다고 생각한 이씨였다. 외로웠던 그가 이제는 외로운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다.

“외로워서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아요.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은데 그게 힘드니 이런 소통 창구를 찾는 거죠. 인터넷 방송에 접속한 시청자는 BJ와 대화할 수 있고, 그들끼리도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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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희씨가 팬으로부터 받은 선물(사진=유혜진 기자)

 

이씨는 인터넷 방송을 보는 이들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면서 여유를 찾았다. 그야말로 숨통이 트였다. 홀로 낙오됐던 것만 같았는데, ‘사람 사는 것 별게 아니구나’ 싶다. 학생은 학교에서 생긴 일, 직장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씨에게 한다. 그도 소소한 일상에 대해 말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팬’이 생겼다. 아프리카TV에서 우수 BJ로 인정받아 지난해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아프리카TV BJ 대상’ 시상식에도 초대됐다. 축하 무대를 장식했던 이씨는 이제 자신만의 무대를 꿈꾼다.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에게 제 노래를 들려주는 게 좋았어요. 어렸을 때에는 그저 돈 벌고 인기 많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아이돌 조상님’이라고 불리는 나이 서른을 넘기고 나니 우리네 사는 모습을 노래에 담고 싶습니다. 공감, 한쪽 귀로나마 인터넷 방송으로 소통하며 배운 거예요.”

글·사진=유혜진 기자 langchemist@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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