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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전력투구’ IT 기업가, 숲해설가로 인생 2막 꽃 피우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IT기업 CEO 출신 이기룡씨, ‘숲해설가’로 인생 2막
“숲해설 방법엔 색다른 생각 필요 … ‘창의’ 중시하는 IT와 공통점”

입력 2017-04-03 07:00 | 신문게재 2017-04-0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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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생태문화 사무소.

 

IT 인생 35년 ‘외길’을 걷던 이가 숲해설가로 변신해 인생 2막을 꿈꾸고 있다.

IT 대기업에서 28년, 임원으로 퇴임한 후 스마트폰 부품 관련 IT 중소기업을 창업해 7년 간 CEO로 재직한 이기룡(64)씨. 최근 IT 업계를 떠난 후 숲 속을 돌아다니기 분주하다.

은퇴 2년차인 지난 2016년 2월부터 9월까지 사단법인 숲생태지도자협회에서 숲해설가 교육을 이수한 이씨. 이후 함께 수업을 듣던 교육동기생 29명과 합심해 협동조합 ‘숲생태문화’를 설립했다.

이씨는 현재 서울시에서 뽑는 숲해설가 모집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360여 명의 지원자 중 3: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오는 4월부터는 서울대공원에서 숲해설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앞뒤 안 보던 경주마, 숲에서 여유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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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숲생태문화’ 회원들.

“하려면 하고, 안 하려면 안 합니다. 그리고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전력투구’ 합니다.”


원래 등산보다는 마라톤과 골프를 좋아 하던 이씨였다. 그러나 마라톤과 골프를 너무 격하게 한 나머지 척추가 골절되는 ‘요추분리증’에 걸리고 말았다. 마라톤과 골프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병원에서는 허리 근육 강화를 위해 걷기나 가벼운 등산을 추천했다.

허리가 골절돼 두 달 동안 꼼짝없이 누워있을 당시, 부인이 책을 한 권 갖다줬다. 히말라야 여행기였다. 부인과 함께 버킷리스트를 세우고, 죽기 전에 장엄한 광경을 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재활치료에 전념한 이 씨는 완치 후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로키 등 4000~5000미터 급 해외 고산을 누비고 다녔다. 이처럼 목표한 게 있으면 온 힘을 바쳐서 도전하는 성향 덕에, 산에 다닐 때도 정상만을 바라보며 오르기 바빴다.

이런 이씨가 꽃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부인의 역할이 컸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던 부인은 등산을 하다 멈춰 서서 꽃말을 알려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씨보다 먼저 숲해설가 교육을 받은 부인은 이씨에게도 교육 이수를 추천하며 교육비 100만 원 가량을 아예 입금해 버렸다. 처음엔 관심 없던 이씨도 ‘이왕 돈도 낸 거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에 숲해설 교육을 받게 됐다.

숲해설가로 변신하게 된 이후에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속도 조절이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급한 등산보다, 주변의 나무나 꽃을 둘러보며 여유를 찾게 됐다.

이씨는 숲해설가 활동을 하며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식물의 경이로움에 대해 알아갈 때’라고 답했다. 예를 들면 철쭉꽃은 벌을 유인하기 위해 ‘허니 가이드’라는 활주로를 꽃잎에 만들어 놓고, 꽃이 작은 산수국은 주변에 큰 가짜꽃을 만들어 벌들을 모이게 한다.

이씨는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 아무리 작고 하찮은 나무도 후손을 위해 살아남으려 애쓰는 생명력이 경이로웠습니다”며 “정상만을 목표로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며 발에 걸리는 꽃이나 풀, 나무에 한번 더 눈길을 주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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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숲생태문화’에서 회의 중인 이 씨.

 

◇협동조합 설립 “배워서 남 주자”

이씨는 숲해설가 교육을 받은 동기 29명과 함께 협동조합 ‘숲생태문화’를 창립했다.

협동조합을 세운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이씨는 “나무와 꽃, 숲에 관련되는 활동에 미련이 남았기도 했고, 숲 생태 관련해 공부도 하며 만남을 지속하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며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봉사도 하고, 숲 해설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육 수료 후 서울숲과 어린이대공원에서 유치원 원아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숲해설 및 생태놀이, 광명·송파·강동지역에서 자연생태 및 전통 춤사위 교육, 초·중등학교의 식생 컨설팅 및 텃밭 경작 지도 등 숲 생태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국립수목원 열매관찰·생태놀이 연수, 경희궁 나무·곤충 연수, 도봉산 겨울눈 관찰 등 매월 1회 이상 주제별 연수도 실시 중이다.광명시에 위치한 사무소와 그 안을 채운 비품, 교육기자재, 교구, 서적 등 물품은 조합원의 기증과 기부로 마련됐으며, 일부 교구는 자체 제작했다. 이처럼 숲생태문화는 서로 이끄는 ‘협동’ 조합으로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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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연 중인 이 씨.

 

◇숲해설 ‘창의적 생각’ 중요 … IT와 공통점

“숲해설을 하기 위해선 재미 있고 차별화된 강의 방식이 중요합니다. IT기업에서 배운 ‘창의성’과도 연결이 되죠.”

숲해설은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유아, 또는 가족 단위로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고무줄과 나무를 이용해 ‘딱딱’ 소리를 내는 딱따구리, 나뭇잎을 이용한 폴라로이드 액자 등 재미 있는 놀이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이른바 ‘생태놀이’다. 해설가 자신이 창의적인 생태놀이를 창안하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이씨는 “IT 업계는 특허 싸움이었습니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내 제품이 값이 싸든가, 좋은 성능이 있다든가 하는 차별점이 있어야 했죠”라고 설명했다. 35년 다른 회사들과의 차별점을 찾아 내 온 이씨는 특허 출원이 몸에 배어 있었고, 그간 없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 창작생태놀이 방법을 여러 개 고안해 냈다.

기업에서 일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놀이에서도, 교육을 받으면서도 빛을 발했다. 이씨는 교육 기간 8개월 동안 창작 생태놀이 8건을 개발해 자료를 만들어 시연했고, 동기들에게서 창작생태놀이 전문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자연과 벗삼는 최고의 직업

“울진 금강소나무숲에 여행갔을 때, 경찰공무원을 하다 퇴직하고 숲해설가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멋있어 보였죠. 나중에 부인도 은퇴하면 함께 경치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숲해설가로 인생 2막을 장식하고 싶네요.”

숲해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씨는 “숲해설가는 벌써 몇 천명 정도로 굉장히 많은 수가 배출됐는데, 일자리는 연간 300~400명 밖에 되지 않는다”며 “돈을 벌기 위해 제2의 창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에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만 보며 달려오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주위를 둘러 보며 여유로움을 찾아야 겠다는 이씨.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란 고은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이해린 기자 le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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