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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전국을 누빈 국내 가전유통 역사의 산증인…‘용산 전자랜드’ 이끄는 김형영 점장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국내 첫 가전양판점 '전자랜드' 용산점장 김형영

입력 2017-11-20 07:00 | 신문게재 2017-11-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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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영 전자랜드 용산점장(상품팀장)이 용산 전자랜드 매장에서 브릿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전자랜드프라이스킹)

 

국내 최초 가전양판점인 전자랜드 용산본점은 국내 가전유통 산업의 메카로 불린다. 1988년 개점한 이래 29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용산전자상가의 핵심축으로 성장해왔다.

국내 가전유통업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용산 전자랜드를 이끄는 김형영(47) 점장 역시 그 성장과 현재를 몸소 겪어온 국내 가전유통 역사의 산증인이다.

김 점장은 뼛속까지 ‘전자랜드맨’으로 통한다. 199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23년간 전국 10개 도시를 돌며 오직 전자랜드에 몸 담아왔다. 24살 당찬 나이에 당시만 해도 생소한 업태였던 전자전문 양판점을 첫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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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랜드 용산점은 모든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형 매장으로 꾸몄다.(사진=전자랜드프라이스킹)

 

“사실 원래는 건축을 전공했어요. 그러나 전자 분야가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다양한 전자제품을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가전양판점이라는 혁신적인 업태를 접하고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입사를 결심했죠.”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는 개인용 컴퓨터가 개발·보급되기 시작하고 휴대전화가 급속히 대중화된 전자산업의 부흥기로 꼽힌다. 게다가 대리점 판매가 대부분이었던 국내 가전 유통시장에서 다른 업체 제품과 비교하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전자유통전문 백화점’의 탄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자랜드 구의점이 첫 근무지였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대리점도 거의 없을 때였죠. 당시엔 삼성 그린컴퓨터가 나오고 PC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우로 전환되던 시기라 컴퓨터를 찾는 고객들이 많았어요. 사무자동화(OA) 기기의 핵심인 팩시밀리도 잘 나갔죠.”

 

영업성과를 인정받아 불과 입사 3년 만에 부점장으로 승진한 그는 1998년 부산본점으로 옮긴 후 이듬해에 지점장 자리까지 꿰찼다. 매출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며 초고속 승진가도를 밞던 그에게 전환점이 된 건 2006년 여수점으로 옮겨가면서 부터다.

“여수점은 월매출이 2억원밖에 안 되는 정말 작은 매장이었어요. 그런데 직원 수는 10명이 넘어가다보니 급여는 적고 힘든 업무에 분위기도 안 좋았었죠. 저는 이전까지는 공격적인 영업에 중점을 둬왔는데, 여수점에서는 문득 관리자의 덕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김 점장은 직원들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작은 점포를 조금씩 바꿔나갔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배송과 설치도 직접 나가 지원했다. 섬이 많은 지역 특성상 상품 배송을 뱃시간에 맞추기 위해 재고관리에도 부단히 애를 썼다. 점장이 직접 발 벗고 나서자 여수점 매출은 불과 2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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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영 점장이 지난 7월 리뉴얼을 통해 대폭 확대한 건강가전존에서는 전자랜드의 PB 제품인 아낙 안마의자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전자랜드프라이스킹)

 

“한 번은 배송을 갈 수 없는 외딴 섬에서 오신 손님이 김치냉장고를 구입한 적이 있어요. 직접 배를 가지고 나오겠다고 하시길래 차가 실리는 정도의 배를 생각했는데 고기 잡는 작은 통통배를 끌고 오셨더군요. 그래도 일단 제가 직접 배에다 싣고 배송을 갔다가 제품이랑 같이 바다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아찔했던 그 때의 경험이 그 어떤 성과보다 기억에 남는다는 김 점장은 이 같은 열정이 있었기에 매장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직원들이 팔아 온 제품은 회사가 반드시 배송까지 책임져준다는 믿음을 심어준 게 영업에 자신감을 심어준 원동력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런 그에게도 용산점을 이끈다는 건 상당한 도전이었다. 전자랜드 용산본점은 국내 가전유통의 성지이자 회사 입장에서도 ‘최초·최대·최다’의 타이틀을 지닌 리딩 매장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용산점에서 아침 조회를 하는 생생한 꿈을 꿨습니다. 신기하게도 꿈꾼 지 딱 열흘 후에 정말로 용산점장으로 발령을 받게 됐죠. 그래서 부임하는 자리에서 꿈속에서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했습니다. 웃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배려를 잘하자, 그리고 큰 형님 역할을 하자고요.”

김 점장은 그룹의 태생인 용산본점이 리딩 매장이자 테스트베드 매장이 되길 바란다. 매출·고객만족·직원역량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될 수 있는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7월 용산본점은 10년만에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체험중심 프리미엄 매장으로 거듭났다. 계절가전 전문관을 통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고,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살려 모든 제품을 고객이 직접 만져보고 앉아보고 소리도 들어볼 수 있게 꾸몄다. 리뉴얼 직후 용산점은 월매출 44억원을 달성했다. 한 달 전보다 무려 180%나 늘어난 호실적이다.

“많은 돈을 들여 고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매장을 만들기는 쉽지만, 고객에게 ‘살게 많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매장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전자제품은 목적이 뚜렷한 고객이 많은 만큼, 이전까지는 우리가 팔고 싶은 상품을 진열해왔다면 이제는 고객이 찾는 상품을 먼저 제안하는 매장이 되려고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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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점장은 직원들에게 “우리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른 지점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움을 줘야한다”고 주문했다. 용산본점이 그룹의 태생인 만큼 전국 120여개 점포를 선도하는 모범 매장이 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사진=전자랜드프라이스킹)

 

마지막으로 그는 온라인 구매가 활발해진 가전시장에서 ‘체험’을 중점으로 둔 프리미엄 전략만이 오프라인 양판점이 앞설 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10만~20만원짜리 청소기는 온라인에서 쉽게 살 수 있겠지만, 100만원이 넘는 고가제품도 과연 선뜻 살 수 있을까요? 실제로 빨래 건조기와 건타입 청소기 등 프리미엄 제품의 수요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만져보고 써보고 설명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전자랜드는 고객들에게 보다 전문적인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직원들의 교육 과정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기존점 리뉴얼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전문화되고 대형화되지 않으면 가전양판점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가전양판점은 개별 가전 판매에서 벗어나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필요한 제품을 제안할 수 있는 종합 컨설턴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될 겁니다. 직원들과 끝까지 함께 하며 그런 매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네요.”

박준호 기자 ju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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